🌎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부부 여행가의 삶. 론리플래닛 이야기

여행을 떠나기 전, 여러분은 어떻게 계획을 세우시나요? 요즘은 인터넷과 SNS 덕분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침대에 누운 채로 세계 여행을 간접 체험할 수도 있죠. 처음 가보는 낯선 도시라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몇 초 만에 최단 경로를 찾아 걱정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여행 준비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서점에서 가이드북을 사는 것이 필수였고, 종이 지도를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인 여행 방식이었죠.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흔치 않던 그 시절, 어떻게 해외여행을 했을지 상상조차 어려운 분들도 많을 겁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연히 런던의 한 공원 벤치에서 만나 부부가 된 모린 휠러(Maureen Wheeler)와 토니 휠러(Tony Wheeler)입니다. 이들 부부는 세계 여행 중 기록한 일지를 바탕으로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을 시작했고, 이 출판사는 1억 2천만 권 이상의 책을 판매하며 세계적인 여행 출판사가 되었는데요. 오늘은 론리플래닛의 창업자 모린과 토니의 Day 0, 1970년대로 돌아가보겠습니다.

1. 꼼꼼한 기록 습관이 만들어낸 창업 아이템

1970년 10월 어느 날, 런던의 한 공원 벤치. 책을 읽으려던 모린은 잡지를 읽고 있던 토니의 옆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약 1년 후 결혼해 부부가 되죠. 결혼 후 단조로운 일상에 염증을 느낀 모린과 토니는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1년간의 여행을 계획합니다.

그들의 준비물은 단출했습니다. 65파운드로 산 중고 미니밴 한 대와 400파운드의 여행자 수표가 전부였죠. 1972년, 두 사람은 당시 유행하던 히피 트레일(Hippie Trail)*을 따라 여행을 시작합니다.

모린과 토니의 여행에는 명확한 목적도, 특별한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저 동쪽으로 가능한 멀리 가보자는 심산이었죠. 미니밴이 중간에 고장 나면 버리거나 팔아버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의 여정은 터키 국경을 넘어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까지 이어졌습니다. 때로는 차 안에서 잠을 자고, 때로는 호텔 정원에서 캠핑을 하며 여행을 계속했죠.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의 여행은 다소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국경 방향을 가리키면 누군가가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알려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만난 현지인이 호텔로 가는 길을 알려주곤 했죠. 특히 아시아의 외진 지역에서는 서양인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지만, 카불이나 헤라트 같은 대도시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여행자들과 어울리며 정보를 나누는 시간을 즐겼다고 합니다.

한편 토니는 이러한 여행 내내 꼼꼼하게 일지를 작성했습니다. 유명 관광지나 유적지보다는 그들이 머물렀던 숙소, 비용, 그날 차로 이동한 거리 등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실질적인 정보들을 기록했죠. 토니는 평소에도 모든 것을 기록하고 문서화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습관 덕분에 남긴 여행 일지가 나중에 두 사람이 세상에 내놓을 책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는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유럽과 아시아를 횡단한 모린과 토니는 최종 목적지로 호주를 정했습니다. 호주에서 한동안 일을 하며 돈을 모은 후 런던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웠죠.

두 사람은 여행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3등석 기차부터 히치하이킹, 배, 요트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을 활용했습니다. 방콕에서 싱가포르까지는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한 뒤, 배를 타고 자카르타로 건너가 버스를 타고 발리까지 갔죠. 그들은 발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갈 계획이었지만, 구매한 항공권의 항공사가 운영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지는데요. 다행히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뉴질랜드인의 요트를 얻어탈 수 있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시드니에 도착하게 됩니다.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주머니에는 단 25센트만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 가장 비쌌던 카메라를 전당포에 맡기고 25달러를 받았고, 가까스로 당장 묵을 수 있는 숙소를 구했죠.

처음에는 1년 정도의 여행을 계획했지만, 시드니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이 계획은 자연스럽게 연장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함께 일하며 끼니를 해결했고, 이후 토니는 제약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모린은 와인 회사에서 비서 일을 시작하며 1년이었던 여행은 3년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시기에 토니는 모린에게 “우리 책을 만들어보자!”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1973년, 모린과 토니는 당시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타자기, 절단기, 대형 스테이플러를 빌려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주방을 작업실 삼아 아시아 국가들의 정보를 담은 96페이지 분량의 ‘Across Asia on the Cheap’이라는 책을 완성했죠. 이 책에는 여행지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부터 대마초나 가짜 신분증을 구하는 내용까지도 담겨 있었다고 하네요.

그들은 아파트 지하실의 인쇄소에서 책을 인쇄하고, 인쇄된 종이를 직접 접어 스테이플러로 묶고 절단기로 가장자리를 다듬어 책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책은 동네 서점에서 처음으로 50부를 사들였고, 한 권당 1달러 80센트에 판매되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부수가 팔리며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죠.

2. 좋아하는 일에 대한 꾸준한 열정. 성장은 따라온다.

론리플래닛이 출판한 첫 번째 가이드북 ‘Across Asia on the Cheap’은 꽤 잘 팔리기는 했지만, 그리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판매 수익은 처음에는 인쇄비를 충당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 서점 주인의 지인을 통해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론리플래닛은 조금씩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호주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유럽으로 돌아가려 생각하던 즈음, 일주일 만에 1,500부가 판매되며 그들의 예상보다 책이 훨씬 잘 팔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죠.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모린과 토니는 또 다른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은 두 번째 여행 책으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선정했는데, 당시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던 시기라 동남아시아는 여행지보다는 전쟁 지역 부근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었죠. 하지만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 이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두 사람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최고의 동남아시아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미니밴 대신 야마하 트레일 바이크를 타고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1975년 두 번째 가이드북 ‘Southeast Asia on a Shoestring’이 탄생했죠.

책이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 토니는 샘플 책을 들고 싱가포르의 한 대형 서점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서점에서 최소 10부, 운이 좋으면 50부 정도 살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서점 담당자는 책에 대한 토니의 설명을 듣더니 무려 1,000부를 주문했습니다. 이에 감격한 토니는 호텔로 달려가 모린에게 “우리 책의 20%를 한 서점에 다 팔았어!”라고 환호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고 하네요.

한편 그때까지만 해도 모린과 토니는 여전히 작은 임대 주택에서 생활하며 출판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집 안 곳곳에 책과 택배 박스를 쌓아 두고 직접 책을 포장해서 우체국에 가져가는, 마치 가내 수공업 같은 느낌이었죠. 당시에는 그 누구도 론리플래닛이 세계적인 여행 출판사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판매해서 번 돈으로 출판 작업을 계속하던 두 사람에게 어느 순간 점차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론리플래닛의 책을 유용하게 사용했다며 다른 지역에 대한 책을 쓸 수 있을지 제안하는 사람들이었죠.

이렇게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며 그들은 다양한 지역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말에는 약 20권의 책이 출판되었죠. 토니는 마치 언덕 아래로 굴러가며 점점 커지는 눈덩이처럼, 그들의 사업이 아주 천천히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점점 빠른 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습니다.

1980년, 모린과 토니는 인도에 대한 가이드북을 제작하기 위해 처음으로 팀을 꾸렸습니다. 남부, 북부, 중부로 나뉜 세 팀이 약 다섯 달 동안 인도를 여행하며 정보를 수집했는데요. 출발 일주일 전 모린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임신한 몸으로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출발할 때 거의 비어 있던 배낭은 다섯 달 동안 모은 팸플릿, 시간표, 지도 등으로 가득 채워져 돌아왔죠.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인도 가이드북이 탄생했습니다. 3~4달러에 판매한 이전 책들보다 서너 배 비싼 12~14달러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덕분에 론리플래닛은 급격히 성장하게 되었고, 이후 더 많은 작가를 고용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980년대에는 본격적인 출판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3. 꿈 같았던 젊은 날. 그리고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는 결심

론리플래닛은 모린과 토니의 첫 아시아 여행을 바탕으로 한 가이드북에서 출발해, 이제는 그 반대편인 유럽의 가이드북까지 제작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 누구와 경쟁해도 자신 있다고 할 만큼, 두 사람과 직원들은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론리플래닛은 11개 언어로 1억 2천만 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며 세계적인 여행 출판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모린과 토니는 사람들이 여행 중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항상 뿌듯했다고 합니다. 특히 뉴욕에서 독일어판이나 중국어판 가이드북을 손에 든 여행자를 만났을 때는 더욱 짜릿한 감동을 느꼈죠. 물론 이러한 성공을 이루기까지 잠 못 이루는 날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급격한 성장은 결국 한계를 마주하기 마련이죠. 2000년대 들어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론리플래닛은 종이책뿐 아니라 TV와 디지털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여전히 잘 팔렸지만, 사업 확장과 동시에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로 인해 사람들이 여행을 멈추게 되면서 사업에 위기가 닥친 순간도 있었는데요.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론리플래닛은 일부 직원을 해고하고 해외 오피스와 출판하는 책의 수를 줄여야 할 정도로 경영 악화를 겪었다고 합니다. 이후 몇 년간 회사를 축소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사업을 안정화했지만, 세상은 점점 디지털화되고 있었고 이에 맞춰 론리플래닛 또한 디지털 기반의 회사로 변해가기 시작했죠. 모린은 이 시기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종이책을 더 사랑했던 모린과 토니는 이제 회사를 떠나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2007년 두 사람은 론리플래닛을 BBC에 매각하기로 결정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자식을 떠나보내는 듯한 큰 슬픔과 걱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모린과 토니는 자신들이 론리플래닛을 운영하며 ‘꿈같은 삶을 살았다’고 여전히 회상하고 있습니다.

작은 임대 주택에서 시작해, 전 세계 여행자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 ‘여행자들의 바이블’을 만들어낸 모린과 토니. 이들은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열심히 일하면 운이 따라온다”고 답했습니다. 여행을 사랑하는 열정,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능력, 그리고 여기에 베이비붐 세대의 여행 수요 증가라는 시대적 흐름이 결합하여, 그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여행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죠.

회사를 매각한 후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여행을 즐기며 책을 집필하는 등 여행가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또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1,000만 파운드를 기부하여, 개발도상국 문제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 리더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연히 공원 벤치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된 부부가, 인생의 절반을 함께 여행에 바쳐 만들어낸 론리플래닛. 론리플래닛의 재정적인 성과를 넘어, 자신들의 젊은 날을 ‘꿈 같았다’고 회상할 수 있는 노부부의 모습은 누구나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 일이 우리 인생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죠.” - 모린 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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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한석훈 / 김세현 에디터

글  김계령 에디터

편집  주희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