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 일주일은 잘 보내셨나요?
이번엔 뉴스레터가 좀 늦었죠? 며칠간 밖에 나갔다가 더위먹고 오늘은 누워있었습니다....
나이 50 넘으면 40도 넘는 날, 밖에 나가면 안되겠어요.
오늘은 최근 제가 재밌게 놀고 있는 스레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레드라는 이상한 동네에 적응 중입니다
스레드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베타 테스트 때 초대돼서 시작했다가 뭔가 적응이 안돼서
때려 치고 지난 주말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 좀 이상합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처음에는 그냥 텍스트 중심 SNS라서 그렇게 느끼나 했는데, 조금 지내보니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도 다르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속도도 다릅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굉장히 빨리 드러납니다.

다들 자기를 너무 잘 압니다
스레드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 하나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과는 안 맞는다.”
“나는 이런 관계를 추구한다.”
“내가 사람을 보는 기준은 이렇다.”
자신에 대해 굉장히 잘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게 조금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거든요.
어릴 때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고, 그다음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습니다.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려고 디자인과에 갔는데 웹디자인과 플래시 게임으로 돈을 벌었고, 어쩌다 보니 타이포그래피를 20년 넘게 했습니다. 캐릭터 사업도 해봤다가 말아먹고, 노숙도 하고, 대리운전도 뛰고, 시장에서 좌판도 깔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디자인을 하고 글을 씁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해보고도 아직 제가 뭘 잘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책을 읽고, 자료를 찾고, 분석하고, 글을 쓰고, 반성하고, 선배나 후배에게 묻습니다.
“저 어떤 사람 같아요?”
“저 뭐 하면 될까요?”
누가 뭘 해보라고 하면 일단 해봅니다. 똥이 되든 된장이 되든. 둘 다 싫지만요. 그런데 스레드에는 인생을 몇 줄 읽었는데 벌써 자기 사용설명서가 완성된 분들이 꽤 많습니다.
신기합니다.
저는 아직도 작성 중인데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론가가 되는 곳
또 하나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스레드에서는 사람들이 굉장히 빨리 평가합니다.
디자인을 보고 감도를 이야기하고, 브랜드를 보고 미감을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글을 보고 수준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저도 디자인을 업으로 오래 했고 평생 남의 것을 보고 판단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가끔 평가와 감상이 뒤집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것을 발견하는 능력보다 결함을 찾아내는 능력을 더 높은 안목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는 현실적이야.”
“나는 냉정하게 보는 편이야.”
“나는 감도가 높아서 이런 게 보여.”
그런데 이상합니다. 좋은 건 잘 안 보이고 나쁜 것만 그렇게 잘 보입니다. 그게 정말 안목인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저는 좋은 것을 발견하는 능력도 꽤 중요한 안목이라고 배웠거든요.

정체를 조금 숨기고 살아보는 중입니다
저는 스레드에서 제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일부러 전부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생깁니다. 가끔 1-2년 차 현업 디자이너나 아직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제 디자인 생각에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자신 있게 가르쳐주기도 하고, 제가 틀렸다고 꽤 세게 이야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의외로 즐겁습니다.
제가 경력을 먼저 걸어놓고 이야기했다면 아마 나오지 않았을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제 나이나 경력이나 과거 작업을 알고 있었다면 한 번쯤 문장을 고쳤을 것이고, 말을 삼켰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게 없습니다. 그래서 날것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으면 가끔 제 과거가 보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세상을 훨씬 빨리 판단했고, 제가 알고 있는 것이 꽤 많은 줄 알았고, 기성세대가 답답해 보였습니다. 지금 보면 얼굴이 좀 뜨거운 장면도 많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분노에 차서 세상을 단정하는 글을 봐도 꼭 그 사람만 보지는 않습니다.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를 같이 봅니다.
취업, 돈, 계층, 경쟁, 세대, 기회, 불공정, 불안.
한 사람의 거친 문장 안에 지금 사회가 그 사람에게 보여준 가장 어두운 풍경이 같이 들어 있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래서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도 제게는 나름 흥미로운 관찰 대상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읽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물리면 저도 물어 뜯습니다.
맞으면 저도 빳따 들구요.

전문가가 아주 저렴합니다
그리고 스레드에서 또 놀란 것이 있습니다.
전문가의 시간과 경험이 굉장히 저렴합니다. 가끔은 무료입니다.
최근에는 연구논문을 쓰는데 업계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글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꽤 좋은 취지인 줄 알았습니다. 읽어보니 조금 달랐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의 노하우가 필요하고, 자기가 모르는 최신 정보가 필요하고, 그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을 받아 논문을 쓰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보답은 커피 쿠폰이었습니다. 순간 제가 커피 가격을 검색해볼 뻔했습니다.
메가커피 아메리카노가 1,500원 정도 합니다. 전문가가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쌓은 경험을 제공하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메리카노 한두 잔이라니, 전문지식의 디플레이션이 상당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샷추는 3,500원입니다.
저는 일단 아샷추보다 비싼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엄청나게 빨리 모입니다
그럼 스레드가 싫으냐.
그건 또 아닙니다. 이게 또 이상한 점입니다.
요즘 하루에 거의 100명씩 팔로워가 늘고 있습니다. 솔직히 조금 무섭습니다. 이 속도라면 1년이면 3만 6천500명이 늘어납니다. 지금 있는 분들까지 합치면 대략 3만 8천 명이 됩니다.
3만 8천 명.
굉장한 숫자입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1원씩만 줘도 3만 8천 원입니다. 우리 동네 중국집에서는 그 돈이면 요리 2개에 짜장면 1그릇 세트를 먹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군만두랑 짬뽕 국물도 줍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농담을 빼고 생각해보면 이 속도가 스레드의 중요한 특징인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관계가 먼저 생기고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사진이나 작업물이 먼저 사람을 연결했습니다.
스레드는 조금 다릅니다. 말을 먼저 던집니다. 그리고 그 말 하나 때문에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들어옵니다. 동의하고, 반박하고, 웃고, 자기 이야기를 붙입니다. 관계보다 대화가 먼저 생깁니다.
그래서 연결도 빠르고 충돌도 빠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속도도 빠르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속도도 빠릅니다.
저는 그게 재밌고 요즘의 방식을 제 방식으로 흡수중입니다.

스레드는 사람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요즘 제가 스레드를 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입니다.
짧은 글 안에서 생각을 보여줘야 하니 단정적인 문장이 유리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쓰는 사람이,
“제가 살아보니 지금까지는 대략 이런 것 같은데 앞으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라고 쓰는 사람보다 훨씬 눈에 잘 들어옵니다. 당연합니다. 후자는 제목만 읽다가 골로 갑니다. 그러니 더 짧게 말하고, 더 확실하게 말하고, 더 강하게 말하게 됩니다. 반응이 오면 그 방식은 강화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기 생각을 대표하게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세상을 대표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SNS의 문제라기보다 매체의 문법일 수도 있습니다. 짧고 빠른 공간에서는 확신이 신중함보다 잘 보입니다. 분노는 평온보다 빨리 퍼지고, 비판은 유보보다 반응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유머도 빨리 퍼지고, 좋은 정보도 순식간에 공유되고, 전혀 만나지 못했을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기도 쉽습니다. 이상한 것만 빠른 게 아닙니다. 좋은 것도 빠릅니다.
그래서 더 이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적응 중입니다
처음에는 스레드에 와서 이상한 사람들을 보면 일일이 반응했습니다. 요즘은 조금씩 이 동네의 문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떤 글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어떤 글은 그냥 웃고 지나가고, 어떤 사람과는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멀리서 구경합니다. 가끔은 저도 한마디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후회하기도 합니다.
아직 적응 중이니까요.
스레드가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런 식으로 나눌 수 있는 곳도 아닐 겁니다. 다만 굉장히 빠르고, 시끄럽고, 솔직하고, 허세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도 많고, 가끔 믿기 어려울 만큼 좋은 정보가 굴러다니고, 그 옆에서는 누군가 전문가의 20년 노하우를 커피 쿠폰과 교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제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아주 솔직하게 저를 가르쳐줍니다.
저는 그것도 꽤 재미있습니다.
아직은 이 모든 게 흥미롭습니다.
조금 이, 이상한 마을에 더 살아보려고 합니다. ㅋ
일단 팔로워가 3만 8천 명이 될 때까지는요.
중국집 세트가 걸려 있으니까요.
끝.
'구독자' 님은 폭염에 어떻게 지내시나요.
휴가 계획은 세우셨나요?
휴가 때, 제 스레드에 한 번 와보시면 어떨까요?
부처 모드가 된 페북과 달리 페북 초기의
광전사 아라한 모습의 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원래'오딧세이'보고영화글쓰려고했는데자다가못본김광혁이었습니다
다음주는'오딧세이'로돌아오겠습니다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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