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님.
소식들으셨나요?
저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기분이 묘했습니다. 극장 하나 문 닫는 일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야 다른 극장에서 보면 되고 요즘은 조금만 기다리면 OTT에도 올라옵니다.
그런데 저는 극장이 사라지는 일을 꽤 많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극장이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영화가 아니라 제 인생의 한 시절이 같이 철거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간 어둠
아마 제 기억 속 가장 오래된 극장은 송림동에 있던 현대극장일 겁니다. 다섯 살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갔는데 제목은 이제 기억나지 않습니다. 백상? 흰 코끼리가 나오는 영화였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거의 못 봤습니다. 깜깜한 극장이 너무 무서워서 울었고 결국 중간에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무척 아쉬워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웃깁니다. 나중에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게 될 놈이 인생 첫 극장에서는 무서워서 울다가 뛰쳐나왔으니까요.

초등학생이 된 뒤에는 인천 희망백화점에 있던 희망극장에 갔습니다. 외삼촌이 영화를 보여준다며 두 개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구니스〉와 〈우뢰매〉.
당연히 〈우뢰매〉였습니다.
외삼촌은 〈구니스〉가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극장에 도착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영화를 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체 그게 무슨 관람 환경인가 싶지만 당시에는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사람 많으면 그냥 그렇게 봤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우뢰매〉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습니다. 그걸 봐야 다음 날 학교에서 대화에 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당시 유행의 선두주자, 초등학생 힙스터가 되기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교양과목 같은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 극장은 어린아이가 혼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나 삼촌 같은 어른이 데려가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삼촌을 만나면 늘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극장 가면 나도 데려가.”
동인천의 오성극장도 그렇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삼촌은 그곳에서 성룡 영화를 보여줬습니다. 오성극장은 어린 제 눈에는 굉장히 화려한 극장이었습니다. 로비 어딘가에 금색으로 된 용 같은 것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커 보였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별것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공간은 원래 그렇습니다. 극장이 작아진 게 아니라 제가 커진 거였겠지요.
친구의 구라보다 더 쌘 영화
중학교 3학년 때는 친구 한 놈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액체로 된 로봇이 나오는데 총을 맞아도 다시 붙고, 몸이 칼로 변하고, 사람으로도 변신한다는 겁니다. 영화를 보지도 않은 놈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신나게 구라를 치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동생 손을 잡고 애관극장에 〈터미네이터 2〉를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친구의 구라가 부족했습니다.
영화가 훨씬 더 엄청났습니다.
〈터미네이터 2〉는 결국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됐습니다. 극장에서는 당시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보고 또 봤습니다. DVD로 보고, TV에서 하면 또 보고, 재개봉하면 극장에 가고, 블루레이로 사고, OTT에 올라오면 또 봤습니다. 대체 몇 번을 봤는지 이제는 세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제가 다녔던 제물포고등학교 주변에는 당시 크고 작은 영화관이 네 군데나 있었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다가 몰래 빠져나와 영화를 봤고, 점심시간 뒤에 체육시간이 붙어 있으면 친구 대신 당번을 해주고 슬쩍 학교를 빠져나가 극장으로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를 참 창의적으로 안 했습니다.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그랑블루〉입니다. 아마 오성극장이 문을 닫기 전에 그곳에서 본 마지막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야자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 몸이 너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서 나와 오성극장으로 갔습니다. 관객은 저 혼자였습니다.
영화 중간에 주인공의 꿈속에서 방 안으로 물이 차오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텅 빈 극장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정말 제가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랑블루〉는 이후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많이 본 영화가 됐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또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첫사랑과 영화를 봤습니다.
부평극장에서 〈토이스토리〉를 봤는데 영화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두근거려서 영화를 제대로 못 봤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중에 비디오를 빌려보고 나서야 〈토이스토리〉가 무슨 내용인지 알았습니다.
선영아, 잘 살고 있지?
그 부평극장도 이제 없습니다. 주성치 영화를 보여주던 금성극장도 사라졌고, 오성극장도 사라졌고, 희망극장도 사라졌습니다.

왕가위와 키노와, 영화광들
대학생이 되면서 제 영화 취향은 홍콩영화에서 유럽 예술영화까지 정신없이 넓어졌습니다.
왕가위 영화도 빠질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비디오로 〈열혈남아〉를 봤고 이후 왕가위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찾아다녔습니다. 특히 〈동사서독〉은 정말 기대했던 영화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협지를 좋아했던 제게는 제가 그렇게 좋아했던 영웅문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습니다. 게다가 소설에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를 왕가위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 몇 권 읽고 '왕가위' 영화 정도는 이야기할 줄 알아야 어디 가서 문화 좀 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도 열심히 아는 척했습니다.
20대가 되면서는 아예 영화관 도장 깨기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 가면 그 지역의 극장을 찾아갔습니다. 부산의 극장들까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아마 오늘 하루가 아니라 며칠이 더 필요할 겁니다. 남들이 잘 모르는 마이너한 영화를 보고 와서 아는 척 꺼드럭대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피곤하게 살았습니다.
영화잡지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필름2.0》, 《씨네21》, 《스크린》, 《로드쇼》, 《키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소설책과 함께 제 가방이나 손에는 언제나 영화잡지가 들려 있었고 PC통신에 영화 리뷰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피카디리극장이 리뉴얼하고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밀레니엄 영화클럽 멤버가 됐습니다. 덕분에 1년 동안 국내에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예술영화와 개봉 전 영화, 당시 유행하던 컬트영화들을 미친 듯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그리운 건 그때 본 영화 제목들이 아닙니다. 거기서 저처럼 영화에 미쳐 있던 사람들을 만난 일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호프집으로 몰려가 밤새 영화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군가는 감독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촬영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방금 본 영화가 걸작이라고 우겼고 옆에서는 쓰레기라고 싸웠습니다.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매트릭스〉가 개봉했을 때는 부평 대한극장에서 이틀 동안 네 번을 봤습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받고 나오던 날이었는데 집에 가기전 영화관부터 들렀습니다. 하루에 같은 영화를 두 번씩 본 겁니다. 3일 휴가중 2일을 매트릭스 보느라 시간을 쓴게 미친 것 같지만 당시에는 아주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를 안보고 어떻게 버텨요.
적어도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한극장은 이제 역사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죽기 전에 본 영화 한 편
그렇게 하나둘 제가 사랑했던 극장들이 없어졌지만, 그중에서도 메가박스 신촌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곳은 저를 살린 극장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삶이 너무 힘들어서 죽는 것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그래도 그렇게 좋아했던 영화 한 편은 보고 죽자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찾아간 곳이 메가박스 신촌이었습니다.
왜 하필 거기였을까요. 더 좋은 영화관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비교적 많지 않았고 당시의 제 눈에는 그런 몹쓸생각을 실행하기 쉬운 장소처럼 보였던 것도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냥 그곳이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볼 영화를 골랐습니다.
그 영화가 무엇이었을 것 같습니까?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였습니다. ㅋㅋㅋㅋ.
세상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굳이 걸작이라고 말해줄 사람을 찾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하필 인생 마지막 영화로 그걸 골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웃음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외계인이 침공했고 지구는 종말 직전입니다. 지구인들이 가진 무기로는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상황은 완전히 개판인데 그 개판난 영화 속에서 개판난 지구를 어떻게든 구해보겠다고 사람들이 죽도록 뛰고 있었습니다. 싸우고 실패하고 다시 방법을 찾고 또 싸웠습니다.
그걸 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저 개판난 지구도 살려보겠다고 저렇게 애쓰는데 나는 뭘 했다고 목숨을 끊지?’
누군가 제게 인생을 바꾼 영화를 물었을 때 〈시네마 천국〉이나 〈쇼생크 탈출〉 같은 영화를 이야기하면 얼마나 그럴듯합니까. 그런데 제 목숨을 살린 영화는 〈인디펜던스 데이 2〉입니다.
명작도 아니고 평단의 찬사를 받은 영화도 아닙니다. 그래도 그날의 저에게는 그 영화가 필요했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무렵에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우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서 후다닥 극장을 빠져나와 제 차로 갔고, 거기서 또 한참을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감정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저는 메가박스 신촌에서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한 달 뒤, 찾아온 떡상
그런데 이 이야기가 더 웃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의 저는 불과 한 달 뒤 제 인생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앞서 저는 같은 메가박스 신촌에서 〈곡성〉을 봤습니다. 당시 신촌 메가박스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꽤 돌았는데 하필 그곳에서 〈곡성〉을 마지막 회차 심야 상영으로 봤습니다. 관객은 저를 포함해 겨우 세 명이었습니다.
영화에 집중하기에는 아주 훌륭한 환경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 같이 본 지인이 미장센이나 메타포에 대한 해석 글을 하나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브런치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 글의 반응이 그렇게 좋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영화 한 편 보고 쓴 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인디펜던스 데이 2〉를 보러 메가박스 신촌에 들어가던 날에도 저는 제 인생이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별다른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그때 이미 제가 써놓은 〈곡성〉 글 하나가 제 인생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끌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글이 여기저기 공유되기 시작하더니 2주 만에 조회수 50만을 넘었고 한 달쯤 지나자 70만을 넘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 일을 계기로 영화에 관한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됐습니다. 영화평론 활동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한 달 뒤 제 인생은 갑자기 떡상했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것도 모르고 한 달 전쯤 죽겠다고 영화관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
웃기는 인생입니다.
그날의 저는 앞으로 올 한 달도 모르면서 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더 살아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요. 사람은 자기 인생의 다음 장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지금 읽고 있는 페이지가 마지막 장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나는 이제 볼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페이지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그 두 일이 모두 같은 극장에서 시작됐다는 겁니다. 메가박스 신촌에서 본 한 영화는 제가 다시 살게 만들었고, 또 한 영화는 제가 다시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한쪽은 〈곡성〉이었고 다른 한쪽은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였습니다.
두 영화를 나란히 놓으니 더 웃깁니다.
영화의 완성도와 한 사람의 인생에 남기는 흔적은 꼭 비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극장이 사라지면, 우리의 시간은 어디로 갈까
그래서 저에게 메가박스 신촌은 그냥 영화관 하나가 아닙니다. 제가 죽으러 갔다가 살아서 나온 곳이고, 별 생각 없이 영화 리뷰 하나를 썼다가 뜻밖에 영화평론이라는 새로운 길까지 만나게 된 곳입니다.
어쩌면 제가 젊었던 시절이 극장의 황금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대에는 나오는 영화잡지를 거의 다 챙겨봤고 지방에 가면 극장부터 찾아다녔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일부러 먼 곳까지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리워하는 건 큰 스크린이나 좋은 음향만은 아닙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갔다가 무서워 울면서 나온 극장이 있었고, 〈구니스〉를 보고 싶었던 외삼촌을 끌고 〈우뢰매〉를 보러 간 극장이 있었습니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영화를 봤고, 삼촌과 성룡 영화를 봤고, 친구의 허풍을 확인하려 동생 손을 잡고 애관극장에 갔습니다.
첫사랑 옆에 앉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영화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던 부평극장이 있었고, 야자를 땡땡이치고 혼자 〈그랑블루〉를 봤던 오성극장이 있었습니다. 피카디리에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밤새 떠들었고, 직장인이 된 뒤에는 대한극장에서 일주일에 몇 번씩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메가박스 신촌에서는 죽으러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왔습니다.

극장은 늘 영화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상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와 그때 함께 있던 사람들, 그 시절의 도시까지 같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극장이 없어지는 일이 아쉽습니다.
영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터미네이터 2〉는 지금도 볼 수 있고 〈그랑블루〉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곡성〉도 볼 수 있고 원한다면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도 OTT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것은 굳이 권하지 않겠습니다. ㅋㅋㅋ)
영화를 보는 일 자체는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쉬워진 만큼 극장에 가는 일은 특별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릴 때 저는 삼촌에게 부탁해야 극장에 갈 수 있었고, 학생 때는 학교에서 몰래 빠져나왔고, 대학생 때는 서울 곳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움직여야 했고 그 이동과 기다림, 사람과 장소까지 전부 영화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메가박스 신촌도 문을 닫습니다.
또 하나의 극장이 사라집니다.
물론 새로운 영화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우리는 계속 영화를 볼 겁니다. 하지만 극장이 계속 사라지는 지금, 영화관 업계가 정말 고민해야 하는 건 사람들이 왜 극장에 오지 않느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다시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는가.
그 질문이 먼저 아닐까요.
OTT보다 먼저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집보다 화면이 커서도 아니라, 그곳에 가야만 만들 수 있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영화를 본 뒤 누군가와 몇 시간씩 이야기하고,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연애를 하고, 울고 웃고, 어느 날의 기억 하나가 그 장소에 영원히 달라붙는 곳.
저에게 극장은 원래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외삼촌과 동생과 친구와 첫사랑과 연인, 그리고 이름도 이제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영화광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영화 속 가짜 인물들이 현실의 저를 다시 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극장이 사라지면 영화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곳에서 살았던 우리의 시간도 함께 사라집니다.
메가박스 신촌이 문을 닫으면 건물은 다른 용도로 쓰일 것이고 사람들은 또 다른 극장으로 갈 겁니다. 그래도 저에게 그곳은 오래도록 영화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죽으려고 들어갔다가
영화를 한 편 보고 다시 살아서 나온 곳.
그리고 그날의 저는 전혀 몰랐지만,
제 인생의 떡상이 시작되고 있던 곳으로 말이죠.
'구독자'님은 영화관을 좋아하시나요?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요? 나만의 인생영화는요?
댓글을 남겨주시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사라지는영화관이아쉬운김광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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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r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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