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로 나온 스파이더맨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회쯤은 영화를 이야기하지 않고,
제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요즘 잘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연인을 떠나보낸 뒤 저는 거의 3년 동안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매일이 지옥 같았다고 말하면, 그동안 저를 만나온 사람들은 조금 의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꽤 멀쩡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젤리와 놀았고, 밥을 해 먹었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친구와 가족을 만났습니다. 웃을 때는 웃었고, 농담도 했고, 해야 할 일도 적당히 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았던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괜찮아서 살아간 것이 아니라, 괜찮은 척하면서 하루씩 넘겼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릴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죽지도 못했습니다.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던 3년이었습니다. 다음 날이 기다려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오늘을 끝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별다른 이유 없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젤리의 밥을 챙기며 하루를 건넜습니다.


그러다 지난 4월,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오래전에 일본을 처음 여행했을 때 느꼈던 문화적 충격과 활기를 다시 만났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일본에서 보았던 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뭔가를 만들고 팔고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거대하고 복잡했으며,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여행에서 굉장히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5월이 되자마자 결심했습니다. 이제 더는 누워 있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쓰다가 멈춘 글들을 다시 꺼냈습니다. 몇백 페이지에 이르는 단편소설과 에세이, 철학적인 생각을 적어둔 메모, 언젠가 쓰고 싶어서 모아둔 설정과 자료들이었습니다. 파일 이름도 제각각이고, 어느 폴더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랫동안 방치해둔 글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분류하고 연결하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SNS를 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문장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문단을 쓰는 일조차 힘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던 글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에 적어둔 메모가 새로운 이야기의 뿌리가 되었고, 포기한 줄 알았던 설정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자라났습니다. 막혀 있던 문장이 풀리고, 믿기지 않을 만큼 글이 쓱쓱 써졌습니다.
마법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쌓아둔 글들이 이제야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바람도, 어머니의 바람도, 사랑했던 사람의 바람도 같았습니다.
제가 계속 글을 쓰는 것. 책을 내는 것.
그리고 언젠가 성공한 작가가 되는 것.
그 약속을 너무 오래 미뤘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소설 두 편과 에세이 한 편, 불교 철학서 한 편의 초고를 끝냈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교정과 수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또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생겨, 각각 300페이지에서 500페이지가 넘는 설정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세계의 역사와 인물, 도시와 기술, 사건과 규칙까지 하나씩 쌓아 올리는 중입니다.
돌아보면 저는 50년 가까이 별별 것들을 좋아하며 살아왔습니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소설, 디자인, 종교, 철학, 역사와 도시 이야기까지 닥치는 대로 보고 듣고 모았습니다.
그저 거대한 잡동사니 창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광맥이었습니다. 그동안 쌓아둔 덕질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안에 불이 붙을 심지를 심고 있으니까요.
제가 한동안 잘못 알고 있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50세가 넘어서야 감독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그는 서른세 살에 감독으로 데뷔했습니다. 다만 그는 나이가 든 뒤에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고, 50대 이후에도 <천국과 지옥>과 <붉은 수염>을 만들었으며 훗날 <카게무샤>와 <란>까지 완성했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50세에 첫 장편소설 <빅 슬립>을 발표했습니다. 프랭크 맥코트는 66세에 첫 책 <안젤라의 재>를 냈고, 그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망상이 아닙니다. 그들이 몇 살에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가 끝났다고 누가 결정하느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저를 응원해주었고 기다려주었습니다. 저는 늘 받기만 했습니다. 보여드린 결과는 별로 없으면서, 언젠가는 하겠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보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쓰는 글들은 남들의 눈치를 보며 쓰고 있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SNS에 글을 올리면서 팔로워의 반응을 신경 썼습니다. 청탁 원고를 쓸 때는 받은 돈의 크기에 따라 글의 길이와 품질을 계산했습니다. 출판사에 보낼 글은 왠지 제 글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계속 미루고 또 미뤘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냥 씁니다.
남들이 재미있어할지가 첫 번째 기준이 아닙니다. 우선 제가 읽고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꽤 깐깐한 사람이고, 쓸데없을 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상덕후입니다. 이제야 그것을 단점이 아니라 작업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쓰고 제가 웁니다.
제가 쓰고 제가 웃습니다.
제가 쓰고 제가 감동합니다.
제가 쓰고 제가 배웁니다.
그것이 지금 제 삶을 바꾸는 힘입니다.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은 여전히 이유 없이 무너지고, 며칠씩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도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잊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아픈 기억을 데리고도 앞으로 걸어가는 일인지 모릅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제게 바라던 삶을 하루에 몇 문장씩이라도 살아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스파이더맨 대신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다시 즐겁게 밤을 새우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던 책들을 하나씩 완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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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시간가는줄모르고밤새워글쓰고온김광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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