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글이 좀 깁니다....
미리 사과드립니다. ^^;

제가 영화해설가가 된 계기는 생각보다 별것 없었습니다.
한참 아팠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서 누워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고,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영화를 보는 것 정도였습니다. 하루에 두세 편씩 봤습니다. 신작, 구작, 흑백영화, 옛날 드라마, 장르를 따질 형편도 아니어서 그냥 닥치는 대로 봤습니다.
그렇게 석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얼마 전에 본 영화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제목은 기억나는데 내용이 안 떠오르고, 분명 재미있게 본 것 같은데 뭐가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고, 등장인물 얼굴이 머릿속에서 서로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좀 별로다 싶었습니다.
내가 지금 영화를 보는 건가, 아니면 눈앞으로 영상 파일이 통과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많이 봐놓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냥 시간을 멋지게 흘려보내는 것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결국,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리뷰라고 부를 것도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무엇이 좋았는지,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지, 보고 나서 기분이 어땠는지를 짧게 적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 “그래, 내가 이 영화를 이렇게 봤었지” 정도는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용 메모이자 일기였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더 지나자 글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니까 남들과 똑같은 감상을 반복해서 써봐야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불쌍했고, 연기가 좋았고, 영상미가 아름다웠고, 결말이 충격적이었다. 이것도 한두 번이지 수십 편을 쓰다 보면 저도 지겹고 읽는 사람도 지겹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읽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사실 저만 지겨웠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의 시점으로 보고, 감독의 시점으로 보고, 종교인의 시점으로도 봤습니다. 영화에 몇 초 등장하고 사라지는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시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저 사람은 주인공이 자기 가게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나간 뒤 보험 처리는 했을까. 깨진 유리창은 누가 물어줬을까. 저 사람에게 이 영화는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자영업자 재난영화가 아닐까. 이런 식입니다. 하하.
그 관점으로 짧은 단편소설까지 쓰기 시작하자 글의 길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감상 몇 줄 적겠다고 시작한 사람이 영화 속 엑스트라의 퇴근 이후까지 걱정하고 있었으니, 이미 정상적인 리뷰의 영역은 조금 벗어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안 봤습니다. 조회수도 별로 없었고, 글을 올려도 조용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썼습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제가 본 영화를 제가 기억하기 위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리뷰가 일흔 편쯤 쌓였을 때였나. 갑자기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명이 읽고, 두 명이 읽고, 어느 순간부터 글이 퍼졌습니다.
그러다 브런치 담당자가 제 글을 봤고,
어렵지 않게 작가 등록을 한 뒤 브런치에서 영화 리뷰를 연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곡성’ 리뷰가 터졌습니다.
터졌다고요! 여러분~
글 하나를 거의 전 국민이 읽는 것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글을 기반으로 기사도 나오고, 다른 리뷰도 재창조됐고, 해외에서 ‘곡성’을 본 사람들은 글을 번역해서 읽었습니다. 한 달 만에 70만 뷰 정도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브런치에서도 그 정도로 읽히는 글은 드물었습니다. ‘곡성’ 리뷰를 계기로 중앙일보에서 연락이 왔고, 영화 칼럼을 쓰게 됐습니다.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꿈이 직업이 되면 출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때 별걸 다 썼습니다.
흥행작을 다루는 건 재미가 없어서 마이너한 애니메이션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드라마, 사람들이 놓친 숨은 명작을 찾아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중앙일보의 의뢰로 ‘기생충’에 관한 글을 쓰게 됐고, 그것도 다시 크게 터져버렸습니다. 헤헷~
그때부터 사람들이 저를 영화평론가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평론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고, 평론가라는 세 글자가 주는 무게도 부담스러웠습니다. 평론가는 아닌 것 같고, 해설가 정도는 된다고 했습니다. 영화 속 상징을 풀어주고, 복잡한 작품을 조금 쉽게 설명하고, 사람들이 놓친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
‘영화해설가’라는 말은 제가 만들어냈습니다.
어때요 멋지죠? ㅋ
지금은 흔히 쓰이는 표현이 됐지만, 당시에는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리뷰어도 아닌 제 위치를 설명할 말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만들었습니다. 직함이 없으면 만드는 편입니다. 디자이너라 그런지 없는 건 만들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게 영화해설가로 살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해설하고, 가끔 평론 칼럼을 쓰고, 영화 속 상징을 암호처럼 해독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영화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기다렸고, 영화를 본 다음 제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폼도 났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기다리고, 제가 쓴 해석을 읽고 “이제야 영화를 이해했다”고 말해주는 경험이 싫을 리 없습니다. 사람은 관심을 먹고 살지는 못해도 관심에 꽤 쉽게 취합니다. 박수는 통장에 찍히지 않지만 중독성은 삼성이나 하이닉스 주식보다 강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영화가 재미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래 영화관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관의 모든 쓸데없는 절차까지 좋아합니다.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영화사 로고가 뜨면서 음악이 두근두근 빰빠밤 하고 나오는 순간이 좋습니다. 아이맥스 상영 전에 3, 2, 1 숫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지나가는 것도 좋고, 돌비시네마에서 조명이 반짝이고 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옆에서 위로 쏟아지는 것도 좋아합니다.
집에서도 영화를 많이 보지만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의 몇 초, 아직 아무 이야기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미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시간 말입니다. 저는 그냥 영화관 덕후고 영화 덕후입니다. 영화관과 영화가 좋아서 미치겠는 부류입니다.
그런데 평론가, 해설가, 해석가 같은 이름이 붙고 사람들이 제 글을 기다리기 시작하자, 저는 영화를 영화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영화가 직업으로 바뀌자 가슴으로 보는 대신 머리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장면이 나와도 머릿속에서는 자동 채집 로봇이 돌아갔습니다.
이 장면은 글에 써야겠다.
이 대사는 제목으로 좋겠다.
저 소품은 무슨 상징이지?
감독은 왜 저 색을 썼을까?
지금 복선이 나왔나?
자..잠깐, 기억해둬야 하는데.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슬퍼야 할 때 문장을 수집했고, 무서워야 할 때 촬영 의도를 분석했습니다. 모두가 웃는 장면에서 저는 이 장면이 서사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이 죽고 있는데 제 머릿속에서는 목차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현타가 왔습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영화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해부대 위에 누운 서사 구조만 남았습니다.
시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습니다.

한동안 사전 시사회에도 자주 초대받았습니다. 시사회는 매력적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영화를 먼저 보고, SNS에 “오늘은 이 작품을 먼저 만나고 왔습니다” 같은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폼나죠.
그런데 가만히 계산해보니까 조금 이상했습니다.
1만 원 정도면 볼 수 있는 영화를 공짜로 보겠다고 잠실에 가고, 홍대에 가고, 용산에 갔습니다. 때로는 지방까지 내려갔습니다. 차비로 1만 원 넘게 쓰고, 배고프니까 밥 먹고, 시간이 애매하니까 차 한잔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가 거의 끝났습니다.
그냥 동네 영화관에서 제 돈 내고 보는 게 더 싸고 편했습니다. 1만 원 아끼겠다고 5만 원 쓰고 하루를 날린 겁니다. 이걸 문화생활이라고 해야 할지 원정 구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갔습니다. 왜 갔을까요.
남들보다 먼저 봤다는 기분,
초대받았다는 기분,
제가 영화계 안쪽에 조금 들어와 있다는
그 기분 때문이었겠지요.
말하자면 ‘뽐냄비’였습니다.
실속은 없는데 폼내는 것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태.
그러다 어느 시사회에서 본 영화가 정말 별로였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SNS에 욕을 한 바가지 썼습니다. 얼마 뒤 그 영화를 수입한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기껏 시사회에 초대해 무료로 보여줬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글을 내리지 않으면 소송을 걸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순간 어이가 없었습니다. 영화 한 편 공짜로 보여준 게 무슨 1억 원짜리 은혜인가. 내가 그지인가. 지들이 후진 영화를 수입해놓고 왜 내 감상문을 관리하려 드는 건가. 초대받았으니 좋은 말을 써야 한다면 그건 시사회가 아니라 홍보 외주입니다. 홍보 외주면 원고료를 줘야지요. 영화티켓 한 장이랑기념품 하나 꼴랑 쥐여주고 양심까지 대여한 줄 알았나 봅니다.
그날 때려치웠습니다.
영화평론가도, 영화해설가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아깝다고 말렸고, 글을 의뢰하던 미디어들도 계속 활동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럴 만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쌓아온 위치였고, 계속했다면 더 많은 기회가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싫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볼 때마다 글을 써야 하고, 초대받았으니 적당히 예의를 차려야 하고, 사람들이 기다리니 이전보다 더 대단한 해석을 내놓아야 하는 삶이 지겨웠습니다.
다시 영화를 좋아하는 동네 덕후 아저씨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가끔 말합니다.
“'곡성' 리뷰 같은 글을 다시 써주세요.”
“'기생충' 리뷰 같은 글은 이제 안 쓰세요?”
안 씁니다. 정확히 말하면 별로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글 하나를 쓰려면 거의 일주일 동안 생업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료를 찾고, 영화를 다시 보고, 장면을 확인하고, 논리를 세우고, 문장을 다듬어야 합니다.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뜯기 시작하면 그 영화와 거의 동거해야 합니다. 감독보다 오래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감독은 이미 다음 작품 준비 중인데 저만 지난 영화의 커튼 색깔을 붙잡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노동에
천 원 한 장 쓰는 것도 아까워합니다.
천.원.한.장 그깟... 천 원 ㅠㅠ
무료로 읽고, 재미있었다고 하고, 다음 글을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고맙죠.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고마움이 전기요금을 내주지는 않습니다. 제가 디자인 일을 많이 하면 일주일에 많게는 200만 원에서 300만 원도 법니다. 그런데 “와, 영화 리뷰 잘 쓰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그 일주일을 통째로 포기해야 하나.
그게 무슨 부귀영화가 된다고.
조회수가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칭찬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삼겹살처럼 구워 먹을 수도 없습니다. 박수는 좋지만 박수만 먹고 살면 영양실조가 옵니다. 물론 돈으로 모든 노동의 가치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도 있고, 누군가에게 닿는 기쁨도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그 기쁨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해서 남의 노동이 공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그 ‘좋아서’가 사라진 뒤라면 더 그렇습니다.
리뷰를 그만두고 2년쯤 지나자 변화가 생겼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해석할 거리나 평론할 문장이 먼저 떠오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하. 그게 정말 좋았습니다.
슬픈 장면에서는 그냥 슬펐습니다. 무서운 장면에서는 무서웠고, 웃긴 장면에서는 웃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나와도 곧바로 의미를 찾아 뜯지 않았습니다. 감독의 인터뷰를 검색하지 않았고, 결말 해석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몰라도 됐습니다. 결말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괜찮았고, 상징을 놓쳐도 상관없었습니다. 영화가 남긴 감정을 설명으로 바꾸지 않고, 그냥 몸 안에 놓아둘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해석하는 순간 감동이 아니라 논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해석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좋은 해석은 영화를 더 깊고 넓게 만듭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좋은 글을 읽고 전혀 다른 영화를 만난 적이 많습니다.
문제는 해석이 감상보다 먼저 도착할 때입니다.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정답을 찾고, 별점을 매기고, 감독의 의도를 심문하고, 남의 감상이 틀렸다고 판결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본 뒤 모두가 임시 재판관이 됩니다.
저도 그 짓을 오래 했으니 압니다. 영화를 제대로 해석하고 나면 사람이 잠깐 감독보다 똑똑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가 숨겨진 비밀을 찾아냈고, 다른 사람은 못 본 것을 봤고, 영화 제작자조차 몰랐던 의미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거요. 잠깐입니다. 아주 잠깐.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 그냥 주차 정산부터 해야 합니다.

요즘은 모두가 리뷰를 씁니다.
누구나 평점을 매기고, 해석을 하고, 추천과 비추천을 결정합니다. 자신의 취향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건 좋은 일입니다. 과거처럼 몇 명의 평론가가 문화의 입구를 지키던 시대보다 훨씬 재미있고 다양합니다. 다만 가끔 이상한 우월감이 보입니다.
나는 이 영화를 이해했는데 너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수준이 낮다.
이 장면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
감독은 뭘 모르고 내가 더 잘 안다. 공식이 뭘알아!
영화 한 편 보고 너무 많은 계급이 생깁니다.
근데, 그게 무슨 훈장이라고 그렇게 자존감을 뽐내나 싶습니다. 영화의 구조를 잘 뜯는다고 인격까지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도 아니고, 상징 하나 더 발견했다고 냉장고에 삼겹살이 자동 생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영화가 좋고, 영화를 구조적으로 그렇게 잘 본다면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제작자가 되고, 감독이 되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상을 찍어보면 됩니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 작품에 후원을 좀 해도 됩니다. 물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도 영화를 안 만들면서 오랫동안 말만 했으니까요.
다만 만드는 사람의 실패를 너무 쉽게 조롱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영화 한 편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돈과 시간과 노동이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를 칭찬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후진 건 후진 겁니다. 저도 후진 영화에는 욕합니다. 내 돈 내고 두 시간 갇혀 있었는데 욕 정도는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제 취향과 해석이 절대적인 정답이라는 착각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는 시험지가 아니고 관객은 답안지를 제출하러 극장에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잘 모르겠다는 상태로 영화를 사랑해도 됩니다. 왜 좋았는지 설명하지 못하지만 좋았다고 해도 되고, 왜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울었다고 해도 됩니다. 오늘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십 년 뒤 문득 알게 될 수도 있고, 평생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감동을 콘텐츠로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생각을 글로 만들 필요도 없고, 모든 영화를 해석해서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그냥 집에 가도 됩니다. 생각이 나면 며칠 품고 있어도 되고, 잊어버리면 또 어떻습니까. 영화가 기억되지 않는 게 싫어서 리뷰를 시작했던 사람이 이제는 영화를 잊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금 웃기지요.
하지만 기억하려고 너무 세게 붙잡으면 오히려 영화는 장면과 상징과 논리로 분해됩니다. 가끔은 잊어버리는 동안 남는 것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사라지고 감정만 남고, 대사는 잊혔는데 어떤 빛이나 표정은 오래 남습니다.
아마 영화는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부 이해하고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각이 몸 안에 박혀 있다가 뜻밖의 날 다시 떠오르는 것.
그래서 저는 모두가 리뷰를 쓰는 시대에 리뷰를 포기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리뷰를 영원히 쓰지 않겠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이렇게 긴 글을 써놓고 “나는 글을 포기했다”고 말하면 또 앞뒤가 안 맞습니다. 인간은 원래 모순적이고, 저는 그중에서도 비교적 음흉하고 성실한 편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어떤 영화에 관해 미친 듯이 쓰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쓰겠지요.
다만 사람들이 기다리기 때문에 쓰지는 않을 겁니다. 영화해설가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쓰지도 않을 것이고, 예전의 성공을 재현하기 위해 '곡성'이나 '기생충' 같은 글을 다시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을 겁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을 때만 쓸 생각입니다.
그전까지는 그냥 영화를 보겠습니다.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로고가 떠오르고, 빰빠밤 음악이 울리고, 아이맥스의 거대한 숫자가 3, 2, 1 하고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리겠습니다. 소리가 뒤에서 달려와 머리 위를 지나고,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내가 누구였는지 잠깐 잊어버리는 그 시간을 즐기겠습니다.
그 순간 저는 평론가도 아니고,
해설가도 아니고, 해석가도 아닙니다.
그냥 영화를 좋아해서 미치겠는 동네 아저씨입니다.
아무것도 분석하지 않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문장을 수집하지 않은 채
두 시간 동안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
햐~~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
안 그래요 ???
‘ 구독자’님은 영화를 본 뒤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나요.
결말 해석을 찾아보시나요, 누군가의 평점을 확인하시나요,
아니면 영화가 남긴 기분을 그냥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시나요.
댓글로 알려주시면 같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분량조절에실패한된김광혁이었습니다
다음글도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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