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습니다.
첫 문장부터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영화를 안보셨다면 주의 바랍니다.

기대감은 저 바닥에
《옵세션》을 봤습니다. 늦은 저녁이었고 영화관에는 사람이 몇 없었습니다. 저 역시 별 기대 없이 들어갔어요. 처음 보는 감독이었고, 줄거리를 대충 읽어보니 소심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소원을 빌었다가 일이 끔찍하게 꼬이는 이야기였습니다.

뭐야? 톰 행크스가 나왔던 《BIG》의 호러 버전인가?
《BIG》에서는 꼬마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빌었다가 진짜 어른이 되어버립니다. 이쪽은 여자가 자기를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가 정말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고요. 설정만 보면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대감은 거의 영화관 바닥에 내려놓고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제가 처음 충격받은 건 소원도 아니고, 여자 주인공 니키도 아니었습니다.
고양이였습니다. 🐈
주인공 베어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키우던 고양이 샌디가 꽤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미 조금 놀랐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베어의 반응입니다. 저렇게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는데 슬퍼하는 기색이 별로 없습니다. 제대로 애도하지도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니키에게로 넘어갑니다.
저는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새끼 사이코패스인가?
아니, 고양이가 저렇게 죽어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그런데 영화를 좀 더 보다 보니 사이코패스까지 갈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여미새였습니다.
그것도 상여미새요. ㅋㅋ

베어의 머릿속에서는 죽은 고양이보다 니키와 어떻게든 잘돼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사람으로 보면 꽤 한심하고,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면 시작부터 별로 정이 가지 않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처음에는 그냥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고 지나갔던 이 장면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화가 이상하게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작년과 올해에 걸쳐 본 영화 가운데 이렇게 신선하고 재기발랄하면서, 동시에 공포라는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영화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흥분했던 공포영화라곤 '겟 아웃', '유전', '서브스턴스' 정도밖에 없었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연출의 변칙적인 리듬에서는 초창기 제임스 완과 리 워넬이 생각났고, 사람이 있는 곳보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공간이 더 불길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구로사와 기요시가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의 욕망 때문에 주변이 점점 망가지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끌려가는 구조는 아리 애스터가 생각났고, 분위기를 잔뜩 조여놓은 뒤 뜬금없이 이상한 농담을 툭 던지는 순간에는 조던 필도 떠올랐습니다.
한 영화를 보는데 저 사람들이 다 생각난다는 것부터 좀 이상합니다.
정말 괴물 같은 영화였어요.
출발부터 다른 백룸과 옵세션

얼마 전에 봤던 《백룸》도 굉장히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백룸》은 케인 파슨스가 이미 몇 년 동안 인터넷에서 자기 세계관을 쌓아왔고, 그 가능성을 본 할리우드가 본격적으로 돈을 투자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제작비도 천만 달러 정도이고, 영화 전체의 공간감과 미장센에는 스탠리 큐브릭과 《샤이닝》의 냄새가 꽤 진하게 납니다. 그래서 저는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호. 신인인데 꽤 고전주의 메이저 냄새가 나네?
《옵세션》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제작비가 70만 달러 안팎, 우리 돈으로 대략 10억 원 정도입니다. 《백룸》과 비교하면 약 13배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할리우드가 “야, 이거 된다!” 하고 거액을 집어넣은 프로젝트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이 작은 영화가 전 세계 극장에서 5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제작비와 극장 매출을 단순 비교하면 600배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물론 극장 몫도 있고 마케팅 비용도 있으니 그 숫자를 그대로 순이익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친 숫자인 건 똑같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감독 커리 바커는 유튜브에서 코미디와 저예산 공포영화를 만들던 20대 감독입니다. 《Milk & Serial》 같은 작품으로 이미 공포를 여러 번 만져봤지만, 할리우드 대자본의 보호 아래 영화를 만들던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촬영감독 테일러 클레몬스 쪽으로 가면 이야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그 유명한 아리 애스터를 잘 몰랐고, 《유전》도 안 봤고 《미드소마》도 안 봤습니다. 결국 바커가 자기 집으로 불러서 두 영화를 같이 보여줬다고 합니다. 공포영화 찍으러 왔다가 감독 집에서 공포영화 과외부터 받은 셈입니다.

니키를 연기한 인디 나바레티도 이 영화 이후 대중의 관심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TV에서는 이미 활동하던 배우였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옵세션》 이후 영화계에서 단숨에 주목받는 배우로 급부상합니다. 이제는 차기 《X-Men》의 로그까지 맡게 됐습니다. 캬! 제가 말입니다. X-Men 시리즈를 만화책부터, 애니, 극장에 나온 외전까지 다 봤지만 기가 막힌 캐스팅입니다.

감독 뜨고,
촬영 뜨고,
배우 뜨고,
영화는 돈을 쓸어담았습니다.
보고 있으면 옛날에 봤던 《이블 데드》 같은 영화가 생각납니다. 거의 저의 첫 번째 공포영화 명작이었던 《이블 데드 》를 보고 감독과 배우와 영화의 뒷 이야기를 찾아봤던 지난 옛날이 기억났습니다. 저는 그때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뭐지 이 사람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멘헤라와 얀데레
영화의 시작은 정말 단순합니다.
주인공 베어는 니키를 좋아하고,
그러다 우연히 소원을 들어주는 물건을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원을 빕니다.
“니키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게 해주세요.”
결과는 대성공입니다.
너무 잘 이루어졌습니다.
니키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갑자기 생긴 감정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워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어에게 완전히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거짓말까지 해서 그의 집에 머물고, 직장을 그만두고, 친구도 필요 없어지고, 자기 생활도 없어집니다. 이제 세상에는 베어 한 명밖에 없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멘헤라'이고,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 분이라면 아주 익숙한 '얀데레'입니다. 사실 이런 캐릭터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아니. 굳이 픽션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현실에서도 연인의 휴대전화를 뒤지고, 다른 사람을 못 만나게 하고, 헤어지자고 하면 협박하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생각보다 불편할 겁니다.
귀신이나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처음에는 멀쩡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게 더 무섭습니다. 제가 아는 무속인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신도 귀신도, 악령도 아니고 인간이라고요.

베어가 빌었던 소원을 다시 보면 꽤 고약합니다.
“니키와 사귀게 해주세요”가 아닙니다.
“니키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게 해주세요”입니다.
이 ‘가장’이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가족보다 베어,
친구보다 베어,
직장보다 베어,
자기 인생보다 베어...
심지어 자기 자신보다 베어가 먼저입니다. 소원은 그 문장을 놀랍도록 충실하게 실행합니다. 베어는 사랑을 원했는데 결과적으로 니키의 인생 전체에서 자기 우선순위를 1번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마법의 소원은 이 얼토당토한 베어의 말을 더럽게 잘 들어줍니다. 요즘 저의 일상을 비유해서 말하자면 AI한테 프롬프트 잘못 써놓고 결과가 왜 이러냐고 화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 : 야! 이건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닌데?
AI : 네? 시키신 대로 했는데요?
젠장할 소원, 젠장할 AI...
심슨 가족과 원숭이 손
소원을 빌자 비극이 따라왔다.
이런 이야기는 아주 오래됐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W. W.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입니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기는 하는데, 문제는 늘 이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는 얻지만 그 과정과 대가는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릅니다.

커리 바커가 《옵세션》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과정에 그 '원숭이 손'이 있었습니다. 그는 집착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고, 그러다 《심슨 가족》의 핼러윈 에피소드에 나온 원숭이 손 이야기를 보고 두 아이디어를 이어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1902년에 쓰인 영국의 공포 단편이 1991년 《심슨 가족》을 거쳐 2026년 20대 유튜버의 공포영화로 들어온 겁니다.
문화라는 게 가끔 이렇게 이상한 길로 돌아 다니다가 접촉사고를 내고 그게 엄청난 아이디어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여러분! 애들한테 만화 그만 보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절대 몰라요. (제 어머니도 제가 이렇게 영화평으로 돈을 벌 줄 모르셨답니다) ㅋㅋㅋ
니키👩🏻와 샌디🐱
그런데 저는 이런 소원이나 얀데레 이야기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계속 다른 게 생각났습니다.
샌디.
영화 시작하자마자 죽어버린 베어의 고양이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저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베어를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양이가 그렇게 죽어 있는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요. 야! 이 자식아? 안 슬퍼? 애도도 안 해? 이런 느낌이었죠.
그런데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 그냥 여자 생각밖에 없는 찌질한 인간이었습니다. 문제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어느 순간 처음의 샌디가 계속 다시 생각난다는 겁니다. 샌디는 베어의 부주의 때문에 죽습니다. 제대로 된 장례도 없습니다. 종이봉투에 들어가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집니다. 자기를 좋아하고 기다려주던 생명 하나가 죽었는데 그렇게 끝? 이 개자식...
얼마 지나지 않아 베어는 소원을 빕니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줄 사람이 생기게 해달라고. 이게 저는 꽤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이미 자신을 좋아해주던 존재는 쓰레기통에 버려놓고, 곧바로 더 큰 사랑을 달라고 빈 겁니다. 하... 그런데 그 소원의 대상인 니키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니키의 행동을 잘 보면 그냥 집착하는 여자친구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합니다.
- 물을 두려워하고
- 고양이 사료를 먹고 이상하게 토해내고
- 밤이면 베어가 자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빛내며 숨어서 지켜보기도 하고
- 베어가 자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거나 무례하게 굴면 거실에 소변을 봅니다.
-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을 먹이처럼 잡아서 베어에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 공격해야 할 대상이 생기면 소리 없이 접근해 갑자기 덮칩니다.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고양이를 키워본 분이라면 똑같은 생각이 들 겁니다.
어라? 이거 고양이잖아.

심지어 니키는 영화 초반에 뜬금없이 자기 고양이가 죽었다는 말을 하고, 샌디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영화 곳곳에는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도 계속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관객들 사이에서도 니키 안에 샌디가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이 해석도 재미있지만,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어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누구였을까요.
샌디였을 겁니다.
밥을 주면 기다리고, 집에 돌아오면 반기고, 밤이면 옆에 와서 눕고, 주인이 무슨 인간이든 그냥 주인을 좋아해주는 존재 말입니다. 그렇다면 소원이 베어가 생각하던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모습을 그대로 니키에게 덮어씌운 것은 아닐까요.
중간에 전화를 했던 악마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습니다. 베어의 소원보단 샌디의 소원이 더 먼저 아니었을까요? "주인님 곁에 남고 싶어요" 이런 소원 말이죠. 제가 악마라면 그 소원부터 들어줬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니키는 베어의 이상형이 된 게 아니라,
베어의 고양이가 된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영화가 훨씬 더 괴상해집니다.
어라? 이거 한국영화에도 비슷한...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뜬금없이 이용민 감독의 1965년작 《살인마》가 생각났습니다. 왜 2026년 미국 저예산 공포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60년 전 한국영화가 떠오르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ㅋㅋ
제 글을 계속 보셨다면 이제 적응하셔야 합니다.
제 머리가 원래 좀 엉뚱하게 돌아갑니다.
《살인마》에는 억울하게 죽은 여성의 원혼과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원혼과 고양이가 뒤섞이고, 사람의 몸에 고양이 같은 행동이 나타나면서 기괴하고 처참한 복수가 이어집니다.



나라와 시대가 전혀 다른데 이상하게 이미지가 겹칩니다. 죽은 존재, 고양이, 인간의 몸, 집착, 복수. 공포영화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게,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어도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어떤 오래된 이미지들은 계속 살아남습니다.
사람이 억울하게 죽으면 귀신이 됩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억울하게 죽으면 왠지 좀 더 골치 아픕니다. 사람이나 한국 귀신들은 최소한 말을 하지만 고양이는 아무 설명도 안 합니다.
그냥 쳐다봅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미지의 공포니까요.

죽음의 수미상관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샌디 이야기가 비로소 완성됩니다.
영화 초반 샌디는 먹으면 안 되는 약을 먹고 입에 거품을 문 채 죽습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베어 역시 약을 먹고 거품을 토하며 죽습니다. 처음에는 베어의 부주의 때문에 샌디가 죽었고, 마지막에는 베어가 샌디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죽습니다.
이 장면 때문에 저는 영화의 첫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베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버렸던 존재가 있습니다. 자기를 좋아하고, 기다리고, 조건 없이 사랑해주던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떠나보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놓은 사람이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요구합니다. 사랑을 받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멍청이 너드가 성욕에 미쳐서 더 큰 존재에게 사랑을 다시 받길 바란거죠.
소원은 정말 이루어집니다.
니키는 세상 누구보다 베어를 사랑합니다.
너무 사랑해서 자기 삶도 망가뜨리고,
주변 사람들도 망가뜨리고,
결국 베어까지 망가뜨립니다.
사랑받고 싶었던 남자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죽습니다. 처음에 자신을 사랑하던 존재를 쓰레기통에 버렸던 대가치고는 꽤 지독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잘 죽었다 이 새끼야.
넌 천벌받아 마땅해.
후후. 감독님 최고.. 나이스.
아주 좋아. 너무 좋아. 😈

공포의 제 1법칙 - 밀당
《옵세션》에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건 영화 앞부분과 뒷부분의 공포 방식이 꽤 다르다는 점입니다.
초반에는 거의 심리극처럼 갑니다. 니키가 조금 이상하고, 조금 더 이상해지고, 때로는 웃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웃고 난 뒤 기분이 묘합니다. 사람 사이의 불편함을 계속 쌓으면서 관객에게 “이거 진짜 공포영화 맞나?” 싶은 시간을 꽤 오래 줍니다.
그러다 후반으로 가면 갑자기 공포영화가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무기들을 꺼냅니다. 점프스케어가 들어오고, 음향이 확 튀고, 카메라는 관객이 보고 싶지 않은 곳을 자꾸 보게 만듭니다.
아~ 이거 극장용 영화 처음 만든 감독 맞나요?
영화와 극장과 관객이라는 상관관계를 아주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공포영화를 많이 본 관객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제 패턴을 파악합니다. 이걸 영화의 리듬감이라고 합니다. "쿵쿵따!", "쿵쿵따!" 계속 하다보면 관객도 어느 순간 "쿵쿵따!"를 외칩니다. 카메라가 빈 복도를 오래 보여주면 저기서 뭐가 나오겠구나 싶고, 음악이 갑자기 사라지면 이제 튀어나오겠구나 합니다. 문이 천천히 열리면 그 뒤에 뭔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한국 관객이요? 한국 관객은 세계가 인정한 리듬의 민족, 게임의 민족, 음악의 민족입니다. 눈치도 빠르고, 개연성에 집착하는 미친 존재들입니다. 공포영화는 그래서 어렵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관객과 수싸움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요즘 공포영화에서 점프스케어 하나 제대로 먹이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옵세션》의 감독은 그걸 꽤 잘 압니다. 처음부터 계속 때리는 게 아니라 관객이 이 영화를 심리극처럼 받아들이고 긴장을 조금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반에 갑자기 공포영화로 변합니다. 제가 처음 제임스 완과 리 워넬을 생각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쏘우와 컨저링을 보며 감탄한 지점이 바로 이 리듬감이었거든요.

공포는 무서운 것을 보여주는 기술이라기보다 언제 보여줄지를 아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제임스 완은 관객이 긴장을 놓는 순간을 잘 알고, 구로사와 기요시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오래 바라보게 만들어 그 자체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아리 애스터는 이미 비극이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영화 전체에 깔아놓고 천천히 사람을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가고, 조던 필은 관객이 웃는 순간에도 뒤끝처럼 찜찜한 감정을 남깁니다.
커리 바커의 《옵세션》에서는 이상하게 이런 감각들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를 그대로 따라 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릴 때 봤던 영화, 코미디, 유튜브, 《심슨 가족》, 몇 편의 공포영화와 자신이 좋아했던 이상한 것들을 그냥 자기 방식대로 씹어먹고 소화했다가 영화로 다시 뱉어낸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꽤 익숙한데 영화는 이상하게 새롭게 다가왔던 겁니다. 익숙한데 새롭다? 이게 정말 어렵거든요.
커리 바커는 아직 20대입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지 꽤 궁금합니다. 공포영화계에 아주 이상한 놈 하나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이런 이상한 사람들을 정말 사랑합니다. 다음엔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지 너무 기대됩니다.
모든 개와 고양이는 천국으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젤리를 한참 쓰다듬고, 츄르 두 개와 씹어먹는 캣쿠키 한 봉지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고양이 모래를 새로 갈아주고, 그릇에 밥과 물을 가득 채워줬어요.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에게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손수 생선을 발라주고, 비 오거나 눈 내리는 추운 밤이면 군불을 땐 뜨끈한 아랫목에서 개나 고양이를 재우셨어요. 주변 사람들은 그걸 보며 뭐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동물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이렇게라도 해줘야지. 집에 들어온 동물은 원래 오래된 조상들이 자손들 보호하려고 돌아오는 거야" 라고 하셨어요. 네, 맞습니다. 할머니는 무속을 믿으셨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지혜롭고 자애로운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
각자 자신이 키우는 동물에게 잘 합시다.
아니 안키워도 잘합시다.
그게 개든 고양이든, 도마뱀이든 달팽이든 말이에요.
가끔 그 반려동물들은 관심 없는 척 딴 데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다 보고 있을 겁니다. 누구보다 당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의 에너지로 오늘 하루를 당신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보다 먼저 간 동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더 잘해 줍시다. 더 사랑해 줍시다. 자기를 사랑한 인간은 더 오래 기억할지도 모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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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또는 이른 아침,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옵세션에흥분해길게쓴김광혁이었습니다.
다음글도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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