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동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얼마 전 김용준 선생님의 책 <근원일기>를 읽으면서 고민했다. 조선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성북동을 좋아하는 나도 응당! 성북동 아름다움의 뿌리가 무엇일까 고민해야지 않을까’ 하는 사명감이 생긴 것이다. (다리 찢어질 뱁새 등장)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성북동 문학 산책기 첫 글에 썼던 곡선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곡선이 왜 아름다운지까지 고민할 수 있다면 성북동 주민으로서 더할 나위가 없겠다.
성북동의 아름다움의 근원을 곡선으로 정한 데에 대의가 있지는 않다. 그냥 내가 격자로 닦인 길보다는 굽이진 길을 좋아한다. 깔끔하고도 단순한 직선의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둥그스름한 곡선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있다. 산책도 굽이진 길이 더 좋다. 성북동 전에는 후암동에 살았는데 종종 후암동에서 해방촌 오거리를 넘어 소월길까지 걸어가곤 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후암동 역시 성북동처럼 높이 변화가 심하고 곡선이 많았던 것이다. 한강 너머까지 보이는 트인 풍경에 더해 구불구불한 길을 비추는 할로겐 등이 아주 낭만적이었다.

자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곡선은 당최 왜 아름다운가? 곡선은 성북동의 아름다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이 질문을 되뇌다 생각난 장면이 있었다. 집 앞 정거장으로 버스가 들어오는 장면이다. 성북동 길은 구불구불한 탓에 정거장 직전 코너를 돌아야 비로소 버스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와서야 보이는 것. 그 우람한 풍채를 자랑하며 등장하는 버스는 오매불망 기다린 이에게 호젓한 기분을 선사한다. 영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관상>의 이정재 등장씬처럼. 생각해보면 영화에서도 이정재는 계단으로 올라왔다. 그전까지는 잘 보이지 않다가 계단을 오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평지에서 걸어왔다면? 이런 극적인 효과는 없었겠지.
여기서 곡선이 주는 시각적인 효과를 유추할 수 있다. 공간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퉁이 너머는 가보기전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침내 도착하고 몸을 틀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이유로 성북동에서는 여러 풍경을 볼 수 있다.. 전화를 끝까지 붙잡게 해주는 컬러링처럼 걸으면서 보이는 다채로운 풍경은 산책할 맛을 더한다. 심지어 노래는 취향에 따라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만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경치는 호불호를 논할 수 없다. 일단 오시라. 오시면 알게 된다.

굽이진 길이 가지는 또 다른 시각적 효과는 도로 밖 풍경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직선도로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도로가 중심이다. 길녘*은 주변으로 펼쳐진다. 그렇다면 굽이진 길에서는? 길녘이 중심이다. 성북동 길 위에서 사진을 찍으면 도로는 모퉁이를 감싸며 사라지고 길을 따라 자리 잡은 가게, 지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성북동 길엔 깃들어 있다. 게다가 성북동은 언덕도 많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층층이 쌓인 장관이 연출된다.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정리해보자, 성북동 정취는 굽이진 길에서 나온다. 이 길을 걷는 행위는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걷는 일이다. 그 여정 동안 사람 사는 길녘을 바라보는 일. 그러다 모퉁이를 지났을 때 마주하는 풍경에 감탄하는 일이다. 마치 흐릿한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인생을 닮지 않았는가. 허벅지는 뻐근하지만 그것까지 삶의 모습인걸. 성북동 곡선이 아름다운 이유다.
*길의 옆이나 부근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글쓴이. 고운
사진. 고운, 돌고돌아 성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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