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점사이 12. 두 세계 사이에는 낙차가 있다

세점사이의 12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2023.03.27 | 조회 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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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점사이

말줄임표 사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열두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뉴스레터를 보내드렸었는데, 즐겁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난번 뉴스레터를 마무리하고 나서 조금 지쳐서 한동안 긴 호흡의 글을 거의 쓰지 않았어요. 물론 긴 글 자체를 아예 안 썼다면 각종 SNS에서 저를 지켜보는 친구들이 코웃음을 칠 테지만, 분명 뉴스레터를 통해 보내드리는 글은 SNS에 게시하는 글과 성격이 또 다르니까요.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몸이 안 풀린 티가 많이 나면 어쩌지, 하구요. 그래도 잘 읽어주셨다는 분들이 종종 연락을 주셔서 다행스러웠습니다.

 

요며칠 길거리에 꽃이 피기 시작했더라구요. 혹시 보셨나요? 저는 오늘 출근하면서 매화가 가득 핀 나무를 봤는데, 이런 자연의 채도를 너무 오랜만에 보니까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생경하더라구요. 매년 겪는 것인데도 매번 그렇습니다. 청계천 버드나무 잎사귀도 연녹색으로 돋아나기 시작하던데, 참 반가웠어요. 뜬금없지만 저는 4월 중순에서 5월 사이를 가장 좋아합니다. 풍성한 연녹색이 가득한 계절이잖아요. 라일락, 이팝나무의 계절. 그리고 곧 장미와 버드나무!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그 계절의 사진들을 모아 보내드릴게요.

파란 하늘과 완연한 이팝나무! 빛이 퍼지는 걸 붙잡아 둔 것 같은 모양이라서 좋아해요.
파란 하늘과 완연한 이팝나무! 빛이 퍼지는 걸 붙잡아 둔 것 같은 모양이라서 좋아해요.
라일락의 보라색은 청명함을 더해주는 느낌이라 더욱 좋구요.
라일락의 보라색은 청명함을 더해주는 느낌이라 더욱 좋구요.
월드컵공원의 하늘이에요. 봄-여름 시즌에 나무가 우거지면 월드컵 공원의 하늘은 정말 예쁩니다.
월드컵공원의 하늘이에요. 봄-여름 시즌에 나무가 우거지면 월드컵 공원의 하늘은 정말 예쁩니다.
푸른 단풍잎도 정말 예쁘죠.
푸른 단풍잎도 정말 예쁘죠.
그리고 부쩍 쨍해지는 햇볕.
그리고 부쩍 쨍해지는 햇볕.

다음주가 되면 봄꽃들도 완벽하게 개화를 하겠네요.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번 주의 글은 서로 다른 단어들을 놓고 생각해본 글이에요.


두 세계 사이에는 낙차가 있다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모양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선 조금 긴 문장들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이렇다. 속 깊은 갑갑함을 느끼면 척수 가득 걸쭉한 액체가 가득차는 듯한 불쾌감이 밀려온다. 뻐근한 뒤통수, 경직되는 감정. 차라리 시원하게 폭발하지 못하고 척추 가득 고여 부푸는 회백색의 액체. 이 길다란 독백을 어느 다섯 글자 영어단어는 단순하게 설명한다. Upset. 내 삶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이 감정을 딱 떨어지게 정리하는 이 단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만일 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어단어가 있느냐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 다섯 글자를 언급할 것이라 다짐했다. (물론 대체 세상 어디 사는 누가 그런 걸 질문하겠냐마는.) 

왜 한국말에는 이런 감정을 적절하게 지칭할 낱말이 없을까? ‘갑갑함’이나 ‘답답함’은 너무 정적이고, ‘빡침’은 너무 사납다. ‘울분’이나 ‘울화’ 역시 소리를 지르며 풀어야 할 종류의 감정인 것만 같다. 내가 사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니고 세계 유일 홧병의 나라라는 점에서 더 이상하다. 하지만 Sorry의 언어인 영어에 ‘섭섭하다’는 단어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완벽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 확실한 건 저 종류의 감정을 말할 때에는 저 단어를 알고 있는 이들이 더 충실한 이해를 가질 것이라는 점 정도겠다.

 

이중 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아이는 단일 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또래에 비해 언어 발달 속도가 느리다고 알려져 있다. (말투가 꼭 Chat GPT로 말하는 것 같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다. 한 번에 한 개의 언어를 배우는 것만 해도 사무치게 어려운데, 두 개의 언어를 익히며 성장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어려움은 분명한 결실을 가져온다. 천천히 성장하는 이중 언어 구사자는 결과적으로 단일 언어 구사자 대비 두 배의 어휘를 익힌 어른이 된다. 마흔 개의 어휘를 익히면 결과적으로 제1언어 40, 제2언어 40, 도합 80의 어휘를 익힌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upset도 화병도 sorry도 섭섭함도 모두 이해할 줄 아는 어른이 된다는 것. 평생을 경계 위에서 사는 사람들. 양쪽을 바라보며.

어쩌면 그들은 다양한 맥락을 가진 감정의 결을 보통 사람들보다 더 풍성하고 섬세하게 감각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핑계를 대야 한다면 아마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들 것 같다. 그리고 독일어만큼 이걸 잘 하는 언어도 또 드물지. 잘 모르지만, 왠지 독일어에는 그런 단어가 있을 것 같으니까.

인터뷰 사진을 찍으며 만난 사람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결이 서로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서 인터뷰 이후에도 따로 한 번 약속을 잡고 만났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대화를 할 때 정확, 적확, 적절이라는 단어를 맥락에 맞게 엄밀히 구분해 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표현에 부연설명을 자주 요구했다는 것도. 정확한 이해를 위해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적절한 예시를 드는 것. 그 대화는 아주 느렸고 더없이 명쾌했다. 난 그게 참 좋았다. 두 번의 만남 끝에 서로의 결이 완벽히 같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공통점이라면 MBTI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두 번째 만남에서는 바뀌어 있었다. 물론 첫 만남에 서로의 글을 읽어볼 만큼이라면 정말 잘 맞는 사람이겠지만. 일하는 분야나 생각하는 방향성은 정작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편안했다. 어쨌든 우리는 길고 느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독일어처럼 단어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뜻을 좁혀가는 것도 즐겼다.

 

나는 왠지 첫 번째 만남보다 두 번째 만남이 더 어렵다. 사람 만나고 관계맺는 걸 끔찍하게 버거워하면서도 어쩌다 보니 늘 사람 만나는 일을 해왔는데,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첫 만남만은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을 만나면 적당한 만큼의 농담이나 멀끔한 정도의 인사치레가 머릿속을 거치지 않고 와르르 쏟아진다. 혹자에겐 굉장한 외향인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마저 가끔 들으니 이건 제법 성공적이다. 

그러나 간혹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되는 사람이 생긴다. 그럼 나는 큰 곤경에 빠지는데 사회적으로 적당한 멘트들을 첫 만남에서 모두 소진해버린 뒤이기 때문이다. 청산유수같았던 말들은 지리멸렬해지고 눈과 눈 사이에 정적이 흐르기 시작한다. 갑자기 내려앉은 침묵에 당황하거나 나와 결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렇다 보니 보통 나와의 친구관계는 그 시점에 결정된다. 첫 만남처럼 영영 살 수 있었다면 사는 게 조금은 더 수월했을까?

사실 달변가인 나와 눌변하는 나 중에 내가 좋아하는 쪽을 굳이 고르라면, 음, 눌변 쪽이다. 그런 순간에는 문장들이 생존을 위한 즉문즉답의 형태가 아니라 머리를 거쳐 천천히 흘러나오는 물줄기의 형태로 구성된다. 판단의 시간동안 정적이 흐르고, 나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른다. 그 순간, 그 맥락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나는 온 우주를 떠돈다. 그건 꽤 아름다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는 일. 세상 그 어디에도 최적의 단일 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러니까 더 아름다운 일이겠지. 아무래도 느리고 갑갑한 두 번째 만남을 좋아해주는(혹은 기다려주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더 뺏기는 편이다.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싫어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재미있다는 말이 나왔다. 편견에 가득찬 두루뭉술한 말로 ‘아무튼 싫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이 자신과 맞지 않는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  이것은 단순히 싫은 이유들을 길게 말해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 그 지점들을 생각하다 보면 맘 놓고 미워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미운 건 많았지만, 그럼 거기엔 이유가 있었겠지. 어쨌든 구체적으로 말하다 보면 그 대상과 우리의 세계는 꽤 달랐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내가 싫어하는 그와 나 사이에서는 각자가 신중하게 고른 최적의 단어 역시 달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그가 싫었던 최종의 이유가 될지도 모르지.

 

이중 언어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독일어를 배우는데조차 실패한 사람임에도 자주 그런 소망을 가진다. 단순히 어학적 측면의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천천한 발달 과정을 보내고 싶다. 마흔 개의 한국어 단어와 마흔 개의 독일어 단어를 아는 사람. 천천히 크게 자라서, 둘 사이의 뉘앙스 차이를 고민하며 낙차를 줄일 수로를 고안하는 사람. 어쨌든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이므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세계가 지칭하는 결핍은 당신의 세계가 지칭하는 결핍과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므로. 그러므로 당신의 유감이 어느 모양의 유감인지를 알고 싶다는 말이다. 유진이라는 이름이 어느 나라 사람의 이름인지 곰곰 생각해본다.

나는 꽤 자주, ‘경계’를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해왔다. 위태로운 모퉁이에서 충돌하는 두 세계를 그리고 그 위에서 촉발되는 정서를 상상하는 게 많은 경우 나의 창작의 동력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주제가 왜 항상 경계와 충돌이었을까, 생각해왔고 내가 바란 충돌 이후의 경과조차 무엇일까 늘 모호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싶어서 미묘한 차이 사이에 맥락과 어긋나는 물건들을 가져다 놓았을까?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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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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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1 year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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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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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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