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점사이의 서른네 번째 레터를 보내드리며 인사드립니다. 지난주에 이야기했던 전시는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체력적으로 고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또 좋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이번에는 전시장에 있으면서 했던 생각들을 조금 담아 보았습니다. 바로 글 보내 드릴게요.
말 많은 동네에 잠깐 간 말 많은 사람
경기도 북쪽에서 살다 보니 연남동 쪽은 사실 잘 갈 일이 없는데, 경의중앙선을 타고 가야 하는 연남동의 끄트머리 쪽은 더더욱 생소한 동네였다. 있는지도 잘 모르고 지내다가 요며칠 다른 작가분들과 함께 진행한 사진전의 전시회장이 그쪽에 있어 예기치않게 매일 다니게 됐다. 집에서 한 시간 사십 분쯤 걸리는 동네라 오고가기 참 지긋지긋한데도 며칠 연달아 종일 머물렀다고 제법 또 정이 들락말락 한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다시 오라면 조금 고민을 해보겠지만. 경의중앙선을 탈 바에는 환승을 한 번 더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동네다. 전시에 들러준 한 친구는 주변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계속 한눈을 팔다가 늦어 버렸다고 했더랬지. 전시 첫날 잠깐 전시장에서 나와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혼자서 잠깐 동네를 돌아다녔다. 예쁜 카페가 참 많았지만 카페에 앉아 있을 만큼 여유롭고 그렇지는 않았지. 그렇다고 곧장 다시 내려가기에는 동네가 아까워서 고민을 하다가 독립서점 하나가 눈에 밟혀 들어갔다.
별 사정이 없으면 독립 서점에 갈 때마다 책 한 권씩은 웬만하면 사서 나오는 편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큐레이션으로 좋은 책들을 보여주신 것에 대한 사례, 공간에 짧지 않게 머무르는 것에 대한 값, 그냥 서점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 자영업 비슷한 걸 하는 사람으로 가진 공감, 그냥 그 책이 갖고싶어서, 내가 그냥 연쇄 책구매마라서.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금전적 하이파이브이기도 하고. 사실 잘 구성된 책장을 만나면 그냥 통째로 우리집에 가져다 놓고 싶지만, 그럴 만큼의 공간도 돈도 교통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 하이파이브에는 아주 오랜 고민이 수반된다.
이 멋진 책장에서 단 한 권을 골라 가져간다면 어떤 걸 가져가야 한단 말인가? 이 책장에서 새롭게 마주친 특별한 한 권을 챙기고 싶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좋은 책을 챙기고 싶기도 하고, 지금 당장 그냥 끌리는 책을 챙기고 싶기도 하고, 평소에 사고 싶었던 책을 챙기고 싶기도 하다. 이 날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마지막 선택지의 손을 들어줬다. ‘난다’ 출판사의 ‘시의적절’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황인찬의 7월)’을 구매해서 나왔다. 사실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책 사기’는 독립서점에서 취하기에 가장 애매한 행동 같지만, 이 책을 사는 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일단 하나의 달이라는 한정성을 가진 책이었고, 하물며 이 책이 다루는 ‘7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었다. 요즘 새삼스럽게 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고, 생각지 못하게 이 시인의 산문은 아주 내 취향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데려오는 건 오래된 계획인 동시에 새로운 발견이었다. 7월에 이미 교보문고에서 사려고 담아 두었다가 너무 바빠 잠시 잊었던 책인데 (그동안 이미 동대문 교보문고 평대에서는 내려가 있었다.) 다시 만나다니 이건 운명이지. (향이 마음에 들었던 향수가 내 인스타그램 닉네임과 비슷해서 왠지 남사스러운 기분에 구매하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를 했더니 향수를 좋아하는 친구가 어떻게 그런 운명을 저버릴 수 있느냐고 말했었다. 그걸 웃어넘긴 나는 정작 나는 생일이 있는 달을 다룬 책이라고 운명 타령을 한다.)
계산대에 책을 들고 갔더니 사장님께서 반색을 하시며 책에 묶여 있는 사은품들을 꺼내어 오셨다. 그리고는 이 출판사가 얼마나 굿즈를 잘 만드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것들을 가지고 싶어서 이 출판사의 책을 사기도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해주셨다. 그리고는 결제를 하시고 적립 멤버쉽을 만들 거냐고 물어보셨지. 한순간 훅 쏟아지는 정보량. 시간만 따지자면 우리집에서 대전 가는 것이나 대충 비슷하게 먼 이 동네에 다시 올지에 대해서 확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한순간 쏟아진 이야기에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책 좋아 하이파이브를 거절하는 것. 그런 걸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책을 사모으지도 않았겠지. 사람의 이름이 태어날 때 정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인류가 나이 먹은 뒤의 행실에 대한 사후평가로 이름이 지어지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책많이사고햄버거많이먹기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개미핥기야 미안해!
온갖 말실수를 하며 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회적인 행동이 말 안 하고 살기임을 20대 중반쯤 깨달았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의식이 언제나 완벽하진 못하다. 아직도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사실에 매일밤 땅을 치고 후회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할 필요 없는 말은 하지 말자는 주의임에도, 몇몇 주제가 나오면 고삐가 풀린 듯 주절거리게 되어 버린다. 오타쿠의 특징이 ‘별안간 벅차오름’이랬나? 카메라 얘기라든가, 사진 이야기, 혹은 소설이나 책에 관한 이야기, 뭐 그런 이야기가 고개만 내밀어도 나는 눈치없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어 버린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 평소에는 머뭇거리는 것이 대화의 70퍼센트 정도인데도, 그런 주제만 나왔다 하면 아주 지긋지긋할 정도로 말을 한다. 쏟아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다.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그러고서 딱 오 분쯤 있다가 아 그러지 말고 입을 닫고 있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를 해버리는 거다. 바보인가? 너무 꼴불견이지는 않을까 싶어 괜히 눈치를 본다. 할 만큼 구구절절을 했으면 당당하기나 하든가. 대체로 상대방은 참 친절하게도 그 이야기를 다 들어 준다. 이럴 때면 내가 나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글러먹은 긍정이 올라오지만, 오타쿠와 잘 놀아주는 착한 사람인가보다 생각하기로 결정하고 긍정적 사고회로는 상대방의 인품에 돌리기로 한다.
아무튼, 구구절절 보여주는 것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대충 그런 걸 하는 직업까지 가지게 되어 버렸다. 통장을 보고 있으면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건 아닐까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나마 생업을 하며 기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싶다. 내가 찍은 사진과 내가 쓴 글이 걸린 전시장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자의식 과잉일까? 어쨌든 뭐라고 구구절절을 하는가 싶어 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지.
전시에는 편히 뭘 먹기가 어려울 만큼 사람들이 오갔다. 작은 전시인 만큼 관람객의 비중은 서로의 지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는 했지만, 바깥에서 전시 입간판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아주 친구인 사람도 생판 처음인 사람도 아닌, 그냥 적당히 알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들어보고 싶어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사진들을 찬찬히 보고 글을 꼼꼼히 읽고 가서 많이 놀랐다.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구나. 전시를 보던 사람들은 가끔 사진에 대해서 더 설명해달라며 묻기도 했고, 촬영에 사용된 기법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나는 그럼 또 참지 못하고 구구절절 쏟아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런 순간이면 감동해버리고 만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당장 내가 듣는 사람인걸.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전시였다면 도록을 사서 두고두고 꺼내보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 혹은 기록이 담긴 책을 사서 두고두고 읽고, 소장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잡지에서 인터뷰를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읽고, 일을 하면서도 팟캐스트를 듣고,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도 듣는 역할을 자처한다. 나는 사실 좋아하면 듣고만 싶어. 어쨌든 나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나 같은 사람들 읽으라고 책도 나오고 누가 썰도 풀고 팟캐스트도 하고 할 테다.
그리고 나도 나 같은 사람들을 상상하며 구구절절 뭔가를 만들고 또 벌여 놓는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사진도 나오고 글도 나오고 이번처럼 전시도 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과도하게 말할 거리 없이 돌아가는 세상은 좀 지루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삭막한 안물안궁의 세상에서, 처음 보는 동네에서 서점을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뻐하며 뭔가를 사들고 나오고야 마는 사람을 보며 사장님은 기쁘셨을까? 그래서 많이 말하셨을까? 내가 전시에 온 사람들에게 유독 살갑게 굴게 되었던 것처럼, 설명이 필요하다는 말에 아주 많은 말을 하게 되어버린 것처럼.
전시장 옆에는 최근 마셔본 것중에 가장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었다. 며칠 내내 거기 커피를 마셨는데 그래도 질리지 않았다. 다른 날은 전부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온 커피를 마시다가 하루는 내가 직접 사러 카페를 방문했다. 생각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예쁜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네. 콜드브루가 정말 맛있었어서 핸드드립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핸드드립을 주문하니 어떤 원두가 좋으신지 고르라고 물어봐 주셨는데, 사실 나는 알아서 말아주는 것을 마실 줄만 알고, 맛있고 맛이 없고를 생각만 할 줄 알지 테이스팅 노트를 토대로 맛을 역산해내거나 원두별 특성을 이름을 듣고 알거나 하는 능력은 전혀 없다. 어물거렸다는 소리다. 어제 마신 콜드브루가 너무 맛있었어요. 그래서 드립은 어떨까 궁금해서 왔어요. 사장님은 그 말을 듣고 반색을 하시면서 각각의 원두의 맛을 천천히 설명해 주셨고, 그 기세에 솔직히 조금 쫄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취향에 맞는 맛있는 커피를 사마실 수 있었다. 다음날도 거기 커피를 마셨다. 그 카페 사장님은 일상에서 커피 이야기가 나올 때 어떤 말을 하실까? 내가 카메라 이야기나 책 이야기를 하듯이 많은 이야기를 하실까?
그런 서점과 그런 카페가 있는 동네에서 그런 전시를 하면서 나흘간 종일 있으면서, 말할 게 많고 들을 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네. 지긋지긋하게 멀었지만, 그래도 다시 와야겠다. 다음에는 카메라 하나만 든 한가로운 방문객이 되어 봐야지.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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