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음악 에이전트의 시대 / 박승순 뉴튠 CCO

한 달 전, 오스틴의 [SXSW 2025] 행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버뱅크로 이동해 [MUSEXPO 2025]에 참석했습니다. 보통 '음악 산업의 UN'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전 세계 A&R 전문가들이 모이는 이벤트인데, 여기서 저는 최신 AI 기술과 음악 비즈니스 생태계의 연결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뉴미디어 아티스트로 시작해 현재 뮤직 테크 기업 '뉴튠'에서 일하고 있는 저는 AI의 창의적 잠재력과 아티스트 성장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AI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즐겁고 건강한 방식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승순 CCO | 링크드인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실리콘밸리의 혁신 속도가 한국보다 대략 반 년쯤 빠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술과 사람이 매일같이 뒤섞이는 최전선과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는, 분명 체감 속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음악 산업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오가는 담론이 제때 바깥으로 전해지지 않으면, 그 격차는 금세 새 흐름을 놓치는 간극이 되곤 합니다.

지난 3월,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도시인 LA 버뱅크에서는 ‘음악 산업의 UN’이라 불리는 [뮤즈엑스포 2025 MUSEXPO 2025]가 열렸습니다. 국내에서는 다소 낯설지만, 이 행사는 매년 전 세계 A&R, AI 음악 기술, 카탈로그 투자, 싱크 라이선싱 분야의 핵심 인사들이 모여 생태계의 ‘다음 장’을 토론하는 자리입니다.

실제로 과거 [MUSEXPO 2025]의 쇼케이스를 거쳐 세계 시장에 안착한 이름들—Katy Perry, Jessie J, The Temper Trap, Passenger, Frank Turner, LMFAO, Lime Cordiale, Sheppard, Gavin James 등—만 봐도 [MUSEXPO]가 가진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었죠.

LA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버뱅크 캐스터웨이 호텔 언덕 위에서 사흘 간 펼쳐진 이 행사엔 Recording Academy, CAA, Kobalt, Concord, NBCUniversal 등 글로벌 음악산업 리더들이 총집결했습니다. 패널 토론과 네트워킹을 관통한 핵심 세 가지 키워드는 AI, 글로벌화, IP 였습니다. A&R 임원, AI 스타트업 창업자, 퍼블리싱 대표, 공연 에이전트, 영화·광고 음악 감독까지, 말 그대로 '음악 산업의 UN'다운 폭넓은 스펙트럼이 한 무대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논의를 다섯 개 아젠다로 정리해 소개합니다.

🚀 [MUSEEXPO 2025] 음악 산업 5대 아젠다

1) AI, 대체가 아니라 증폭기다
2) 글로벌 확장, “전쟁만 아니면 못 갈 곳이 없다”
3) 저작권은 ‘유동적 부동산’
4) 데이터와 직관의 공존
5) 정밀 큐레이션, 브랜드·방송이 여는 새 수익

1️⃣ AI, 대체가 아니라 ‘증폭기’

첫 번째 주제는 AI 윤리와 활용입니다.

레코딩 아카데미(Recording Academy)의 회장 파노스 파나이(Panos A. Panay)는 “AI는 창작자를 대체하기보다 확장(Amplify)하는 도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그래미 어워즈가 ‘인간 창작’ 규정을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Panay 회장은 “AI가 개입됐다면, 그 사실이 투명하게 기록돼야 한다”고 말하며, 창작 과정에서 AI의 관여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설명했습니다. 데이터 분석 플랫폼 차트매트릭(Chartmetric)의 CEO 안드레아 카삼바스(Andreas Katsambas) 또한 “AI 추천 엔진이 하루 10만 곡을 걸러내지만, 마지막 선택은 사람의 귀가 맡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AI가 방대한 음악을 걸러주는 ‘필터 역할’을 하지만, 최종적인 큐레이션과 결정은 인간의 판단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다른 세션에서 리드 스미스(Reed Smith)의 파트너 스티브 세사(Steve Sessa)는 AI 기술의 윤리적·법적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Sessa는 “학습 데이터의 출처가 불투명하면 산업 신뢰 자체가 흔들린다”고 경고하며, AI 개발에 사용되는 데이터의 출처와 저작권 준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패널 전원은 AI가 프로덕션 기간 단축과 마케팅 자동화를 ‘기본 기능’으로 만들어 음악 산업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작권 보호와 공정한 보상 체계가 함께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는 점에도 공감했습니다.

2️⃣ 글로벌 확장, “전쟁만 아니면 못 갈 곳이 없다”

두 번째 주제는 글로벌 확장 전략입니다.

글로벌 투어 및 플랫폼 전략 세션에서는 신흥 음악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CAA의 슈퍼에이전트 엠마 뱅크스(Emma Banks)는 “요즘엔 전쟁 중인 지역만 아니라면, 투어를 못 갈 나라가 거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이 말은 중동, 남미, 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까지도 이제는 전 세계 투어의 무대로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콩코드(Concord)의 부사장 킴 프랑키비츠(Kim Frankiewicz)는 해당 지역들의 스트리밍 및 라이브 시장 성장률을 “가장 가파른 곡선”으로 지목하며, 현지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신흥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지화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코발트(Kobalt)의 CEO 로렌 허버트(Laurent Hubert)는 스트리밍과 소셜 미디어의 데이터를 도시 단위로 분석해 “투어 동선을 데이터로 설계한다”는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노린다면, 다국어 버전 출시, 로컬 크리에이터와의 협업, 현지 가격 정책과 같은 ‘현지화 세트(패키지)’를 사전에 철저히 설계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패널들은 한 목소리로 “No One-Size-Fits-All” 전략, 즉 지역별 문화와 경제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3️⃣ 저작권은 ‘유동적 부동산’

세 번째 주제는 음악 IP의 자산화입니다.

카탈로그 및 저작권 세션에서는 음악 IP가 이제 완전한 투자 자산으로 정착했다는 분석이 이어졌습니다. NBC Universal 음악·퍼블리싱 사장 마이크 노블록(Mike Knobloch)는 “대형 스튜디오에 카탈로그는 콘텐츠 공장의 연료”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대형 콘텐츠 제작사들이 기존의 음악 카탈로그를 원료 삼아 영화, 드라마 등의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사모펀드가 지난 15년간 음악을 새로운 자산 클래스로 만들었다”고 짚었습니다. 즉, 대규모 자본이 음악 저작권을 투자 포트폴리오의 하나로 편입시켜 왔으며, 그 결과 음악 카탈로그가 부동산처럼 거래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투자자들은 카탈로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메타데이터 정합성과 AI 리마스터링, 스템(Stem) 분리 판매와 같은 ‘가치 증폭 옵션’을 가격 모델 수립에 반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레이블들도 전용 펀드를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카탈로그 매입에 나서는 중입니다.

패널들은 하나의 메시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투명한 권리 정보와 다양한 활용 시나리오를 갖춘 카탈로그만이 시장에서 프리미엄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음악 저작권의 세부 정보가 명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화할 청사진이 제시된 IP만이 투자자와 기업으로부터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었죠.

4️⃣ 데이터와 직관의 공존, “데이터는 노래를, 직관은 커리어를 찾는다”

네 번째 주제는 A&R 전략의 진화입니다.

A&R 세션에서 포지션 뮤직(Position Music) 총괄 마크 치펠로(Mark Chipello)는 “데이터는 노래를, 직관은 커리어를 찾는다”는 통찰을 내놓았습니다. 이 말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히트 가능성이 있는 곡을 발굴할 수는 있지만, 그 아티스트의 장기적인 커리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결국 A&R 담당자의 직관과 경험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100 매니지먼트(100 Management)의 창립자 루크 미츠먼(Luke Mitzman)은 “틱톡 바이럴 후 3~5년 장기 투자가 진짜 승부처”라며 단발성 히트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틱톡과 같은 SNS 바이럴로 뜨는 히트곡이 많아졌지만, 그 열기가 식은 후 3~5년간의 꾸준한 투자와 육성이 진정한 성공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머쉬룸 그룹(Mushroom Group)의 A&R 책임자 데이브 월러스(Dave Wallace)는 “맞춤 지원 인디 모델이 메이저의 공백을 메운다”며 인디·메이저 하이브리드 성장 구조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대형 레이블(메이저)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세밀한 지원을 인디펜던트 레이블이나 매니지먼트가 맞춤형으로 제공하며, 이를 통해 아티스트의 성장을 돕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패널들의 공통된 견해는 하나였습니다. AI와 데이터로 가능성을 좁혀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최종 판단과 예술적 통찰은 인간이 책임져야만 아티스트의 장기 커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5️⃣ 정밀 큐레이션, 브랜드·방송이 여는 새 수익

다섯 번째 주제는 싱크 및 정밀 큐레이션 기반의 수익모델입니다.

싱크·브랜드 협업 토론에서 그래미 수상 음악감독 젠 말론(Jen Malone)은 “잘 고른 한 곡이 30초 광고보다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영화나 광고의 짧은 장면에 삽입된 음악 한 곡이 때로는 영상 광고보다도 더 큰 감정적·문화적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APM 뮤직의 CEO 아담 테일러(Adam Taylor)는 AI와 메타데이터 매칭 기술을 활용해 음악 사용 승인을 비즈니스화한 사례를 공유했습니다. 이는 방대한 음악 라이브러리에서 필요한 곡을 빠르게 찾아내고 저작권을 즉시 클리어하여, 광고나 방송에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또한 광고 에이전시 어노멀리(Anomaly)의 파트너 벤 도렌펠트(Ben Dorenfeld)는 “브랜드팀은 음악을 캠페인의 핵심 자산으로 본다. 그래서 철저한 사전 조사와 맥락 설명이 담긴 제안이 아니면 단번에 탈락시킨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발언을 계기로 패널들은 ‘Less is More’ 큐레이션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3~5곡 안팎의 곡을 정밀하게 선별해 분위기·권리 상태·활용 시나리오를 명확히 제시하고, 동시에 복잡한 권리문제 등을 완벽히 해결한 파트너가 시장에서 선택받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결국 매우 정교한 추천 리스트와 빠른 실행력이 브랜드 광고·OTT·게임 트레일러 시장에서 새로운 수익 창구를 열고 있으며, 음악 큐레이터와 감독이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AI 에이전트의 시대를 준비하기

[MUSEXPO 2025]에서 포착된 다섯 가지 주요 흐름을 종합하면, 저는 'AI 음악 에이전트(AI Music Agent)'라는 키워드가 가장 강렬하게 떠오릅니다.

AI 음악 에이전트는 최신의 AI 도구를 활용하여 아티스트의 창작과 업무 전반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글로벌 음악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아티스트에게 최적의 활동 지역을 추천하거나, 보유한 음악 IP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투자 전략과 활용 기회를 제시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제가 함께하는 뉴튠(주)의 MixAudio 또한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더욱 고도화된 '음악 창작에 특화된 AI 에이전트'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직접 참관하며 저는 AI 음악 에이전트와 같은 기술적 혁신이 결국 인간의 창의성, 통찰력과 결합될 때 진정한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AI 시대의 음악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기술이 어떻게 사람의 역량을 증대시키고 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버뱅크의 높은 언덕에서 조용하지만 뜨겁게 전 세계 음악산업의 미래를 논의했던 그 현장에 있었던 만큼, 음악산업 및 엔터테크 종사자 여러분과 하루라도 빨리 이 소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