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다람쥐 | 39년만에 컴백한 ABBA가 한계를 뛰어넘은 법

🐿️DJ 다람쥐 | 증권 애널리스트 출신 버츄얼 업계 종사자로 이제 막 시작되는 ‘버츄얼 산업’의 국내외 사례를 비즈니스 관점으로 분석합니다. 

안녕하세요, 버츄얼_액츄얼리(Virtual_Actually) 코너를 운영하게 된 증권 분석가 출신 버츄얼 산업 종사자 다람쥐입니다. 구독자님 짐작대로 버츄얼 액츄얼리라는 이름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따온 것으로, '사랑'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버츄얼 산업’에 대한 사례를 분석해보는 코너입니다. 버츄얼 산업에서의 제 업력이 길지 않다 보니 코너명을 너무 거창하게 지은 게 아닌가 고민도 있습니다만, 전직 산업 분석 애널리스트이자 새내기 현업자로서의 제 고민이 음악 산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관심을 가진 분들께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용감하게 코너를 개시하게 되었습니다. 댓글을 통한 질문과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버츄얼 콘서트가 뭘까요?

버츄얼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 중 가장 먼저 살펴볼 영역은 버츄얼 콘서트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콘서트의 부재 속에서 다양한 사례들이 나왔는데요. 접근성이 좋을 뿐 아니라 애플이 '비전 프로' 출시와 함께 선포한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된다면 급격한 성장이 예상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이후 공연 산업의 변화를 관심있게 지켜봐 온 분이라면 케이팝 아티스트의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이나 트래비스 스캇과 같은 팝 아티스트들의 포트나이트 공연, 혹은 매디슨 비어의 언리얼 엔진 기반 버츄얼 콘서트 등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봅시다. 온라인으로 송출된 가수의 콘서트라는 점 외에 이 공연들의 구성 요소는 얼마나 유사한가요? 이 공연들을 동일한 버츄얼 콘서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오프라인에서 송출되었음에도 버츄얼 콘서트로 분류되는 예시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버츄얼 콘서트라는 말은 더욱 아리송하게 들립니다.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오프라인 솔로 공연 [Shout in Crisis] | 2023.01.28

故휘트니 휴스턴을 홀로그램으로 재현한 공연, ABBA의 젊은 시절을 디지털 아바타로 재현한 Voyage 공연, Vtuber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오프라인 공연까지도 모두 버츄얼 콘서트라고 지칭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호함이 발생하는 이유는 '공연의 구성 요소' 중 하나라도 가상이 되기만 해도 버츄얼 콘서트(Virtual Concert)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버츄얼 콘서트 자체가 코로나19 이후에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영역이다 보니 모호한 게 자연스럽긴 하지만, 버츄얼 산업에 대해 고민하는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개별 공연을 하나씩 뜯어보며 접근하는 방식이 가장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Ep#1. 39년만에 컴백한 ABBA가 라이브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

사실, 첫 에피소드로 구독자님에게 (아마도) 가장 익숙할 K-POP의 온라인 콘서트를 다룰까 고민했는데요. 하지만, 우진님이 팬덤 연구소 콘텐츠(“온라인 콘서트를 '팬 경험'의 관점으로 보기”, 21.03.29)에서 이미 자세히 다뤄서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라이브 음악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는 ABBA의 [Voyage 투어]를 살펴봅니다.

ABBA의 컴백에 대해서는 이미 멤버십 콘텐츠(“40년 만에 아바가 돌아왔다, 가장 혁신적인 방식으로”, 21.09.04)에서 언급되긴 했는데요. 오늘은 2022년 5월 27일에 실제로 공연을 개시해 이미 티켓만 1백만장 이상 판매한 [ABBA Voyage] 투어의 콘텐츠 제작부터 성공 요인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콘텐츠 제작: ABBA-tars와 ABBA Arena

ABBA Voyage 투어를 버츄얼 콘서트라고 칭하는 이유는 무대에 선 가수가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주 7회, 회당 90분 동안 휴식시간 없이 진행되고 있는 ABBA Voyage 콘서트의 실연자는 현실의 ABBA 멤버들이 아닌 ABBA-tars와 라이브 밴드입니다.

ABBA의 전성기인 1979년의 젊은 모습으로 구현한 디지털 아바타 ABBA-tars는 최고의 인력과 막대한 자금 투자의 결과물입니다. 글로벌 최고의 VFX 회사인 조지 루카스의 ILM(Industrial Light & Magic)이 160대의 모션캡쳐 카메라로 6개월 이상 70대의 ABBA 멤버들을 모셥 캡쳐 한 뒤 140명의 애니메이터가 투입해 젊은 시절의 ABBA의 모습을 복원한 ABBA-tars를 탄생시켰습니다.

또한 런던에 있는 전용관 ABBA Arena는 ABBA Voyage 투어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3천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분해해서 이동해 월드투어를 진행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내부 역시 특별합니다. 대형 LED 스크린(6,500만화소)이 전면 감싸는 동시에 객석(현실)의 조명과 스크린(가상)의 조명이 연결되게 연출해 마치 실제인 것 같은 공간감을 구현했으며, 객석에는 일반적인 공연장 좌석 외에도 춤을 출 수 있는 댄스 플로어를 설치해 공연의 체험감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이처럼 특별한 기술과 시설로 구성된 ABBA Voyage 투어에는 총 ￡1.4억(현재 환율 기준 한화 2,364억원)가 투입되었으며, 완성까지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2) 성과와 성공 요인

UMG에 따르면 ABBA Voyage 투어는 2022년 5월부터 2023년 3월까지 100만장 이상의 티켓 판매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1장 당 ￡55에서 ￡180(한화 9만원에서 30만원) 사이로 형성된 티켓 가격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입니다. 참고로, 글로벌로 140만명이 관람한 BTS의 PTD 서울 공연의 극장 라이브 스트리밍 티켓 가격은 한국 기준 4.9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판매량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바로 기존의 버츄얼 콘서트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긍정적 관람평입니다.

대표적인 여행 정보 공유 플랫폼인 Trip Advisor의 ABBA Voyage 공연 후기를 살펴보면 호평으로 가득합니다. ABBA가 실제로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아님에도 잘 구현된 기술 덕에 엄청난 몰입감을 느껴 1979년의 ABBA를 보는 것 같다는 평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분위기가 좋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룹니다. 2020년 2월 휘트니 휴스턴의 홀로그램 공연이 "소리도 좋고, 생동감도 있지만, 여전히 소름 끼친다(sounds great, looks lifelike and is still super creepy)”는 평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 ABBA Voyage 공연 후기

이런 후기로 미루어 볼 때 전술한 공연장에서의 연출 전략과 댄스 플로어를 통해 체험감을 극대화한 것이 차별점을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휘트니 휴스턴의 공연과 ABBA Voyage 공연의 가장 큰 차이는 아티스트가 생존해서 공연제작에 개입할 수 있었는가 여부일 것입니다. 가수의 참여 여부는 팬들의 수용 강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가수의 생존 여부가 확보 가능한 자료의 양과 질을 결정하므로 최종적으로 완성도 차이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3) 라이브 음악 시장에 주는 가능성

현재 런던에 위치한 ABBA Voyage 공연의 공식적인 예약 가능 일정은 2024년 5월까지입니만, 언론에 따르면 ABBA Voyage 투어는 3백만명이 관람해야 비로소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이론상 매일 만석(3천석)을 채워도 1,000일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약 3년간 운영해야 비로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내년 5월까지만 예약이 된다면 적자 상태로 마무리하는 걸까요?

ABBA Voyage 투자한 사람들이 결코 그런 판단을 내릴 리 없겠죠. 3백만명 이상이 관람한 후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보기 시작하는 시점일 테니 말입니다. ABBA Arena가 ‘분해 가능하게’ 설계되었다는 점, 그리고 ABBA 멤버들이 직접 밝힌 월드투어 계획(아시아, 호주, 북미)을 고려할 때 ABBA Voyage는 정말 ‘투어’로서 기능할 예정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7월 10일자 NME 기사에 따르면 멜버른과 시드니가 동시에 ABBA Voyage 투어의 다음 개최지로 지원했으며, 비딩 가격은 $5,000만에서 $8,000만(660억원~1,00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제 상상일 뿐이지만) 이렇게 인기가 높다면 어쩌면 공연장을 하나 더 제작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ABBA Voyage 투어는 가상을 끌고 들어와 시공간의 제약을 물리치고 라이브 음악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습니다. 현실의 인간은 매일매일 공연을 하기에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리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늙어가기 때문에 전성기의 모습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당연히,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같은 퀄리티로 공연할 수도 없습니다. 39년만의 컴백에서 ABBA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라이브의 한계에 대한 도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ABBA급의 글로벌 슈퍼 IP가 아니고서는 이런 형태의 공연을 위해 수천 억원을 투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ABBA처럼 대규모 글로벌 성공을 거둔 IP에게는 벤치마크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아직 이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제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3D 모델링의 가격이 저렴해지고 애플의 비전 프로 같은 VR 기기들이 상용화된다면, 천억원 대의 거금을 투자하지 않고도 ABBA Voyage와 같은 강력한 몰입감을 제공하는 가상 콘서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때가 온다면 콘텐츠 산업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구독자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 DJ 다람쥐

👋 구독자님, 생각을 공유하고 DJ들과 대화해보세요. 큰 힘이 됩니다. ^^

📻 ABBA - Little Things

ABBA는 의외로 크리스마스 송을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Voyage 앨범에 수록된 "Little Things"는 ABBA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 송입니다. 당연히 가상 콘서트에서도 불려집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아이들이 ABBA-tars와 가상 콘서트를 재현하는데요, 메이킹 필름과 섞은 스토리텔링과 이 자체로 앨범, 공연, 아바-타의 마케팅이 되는 곡입니다.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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