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레터 | 고양이 같은 미래

고양이와 살고 있습니다. 10년이 넘었네요. 이름은 봉수에요. 여느 고양이, 그러니까 SNS나 블로그에서 보던 고양이들처럼 예쁘고 얌전하고 귀여운 맛이라고는 없는 못난이라서 데려왔는데 이제는 엄연히 인근 동물병원을 통틀어 가장 덩치큰 고양이로 자랐습니다. (10kg.....)

봉수 (11살, 난리법석 전문)

이 친구와 10년을 함께 살고 있는데도 종종 이 친구가 뭘 원하는지, 뭐가 불만인지 모를 때가 많아요. 오늘 아침에도 그랬죠. 새벽부터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는 거에요.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좋아하는 음악(고양이들은 대체로 하프 연주곡을 좋아한다고 해요)도 틀어주고, 야단도 치고 얼르기도 하고 그랬는데도 난리법석이 멈추지 않더라고요.

어디가 아픈가, 싶어서 여기저기 들여다보면 또 그것도 아니에요. 제 옆에서, 화장실 앞에서, 거실에서, 주방에서 몇 걸음 움직이다가 목 놓아 울다 말다를 반복하는데 와 정말, 저도 모르게 '너 꼭 내 인생 같네'라고 말해버렸어요.

'내 인생 같네'. 돌아보면, 지난 10년 동안 저는 미래에 대해 큰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딱히 계획도 없이, 다만 불안했을 뿐입니다. 다음 달에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불현듯 회사를 그만두고, 단골 술집 사장님의 집에 얹혀 살게 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월세 보증금을 깎아 먹으면서도 이게 다 무슨 일이람, 싶었네요. 저는 직장도 없었고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사실은 이것이 직업인지 아닌지 애매한 일이고, 모아둔 자산도 없이 삼십대 중후반을 지나고 있었거든요.

고양이와 함께 살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나름의 대응방법이 있기는 해요. 고양이 카페에서 배운 것도 있고, 몸으로 직접 겪은 것도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고양이가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요? 라는 질문이 수두룩하죠. 일종의 데이터 기반의 대응법입니다. 말이 안 통하니까 별 수 없죠. 겪어보니, 살아보니, 공부해보니 고양이들은 대체로 이렇다 저렇다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 수밖에요.

이것도 인생과 닮았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데이터를 가지고 상황을 판단합니다. 첫인상이 좋았는데 겪어보니 쉣이네, 라는 사람도 있죠. 친구인줄 알았는데 통수를 씨게 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냥저냥 알고 지내던 친구가 오랫동안 지지고 볶는 인생의 친구가 되기도 해요. 너무 좋은 직장에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취업 사기였던 때도 있고요. 첫 직장의 사수와 10년, 20년 의견을 나누는 동료가 되기도 합니다.

(의무 교육을 기준으로) 재학 시절과 졸업 이후를 나눈다면 그 시기에 맞는 데이터가 또 새롭게 필요해집니다. 고양이도 갓 태어났을 때, 3년 정도 지났을 때, 7살이 지났을 때가 모두 달라요. 맙소사, 고양이야 너 진짜 내 인생 같네.

2022년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습니다. 꼭 2022년만이 아니라 2021년도 그랬고, 2020년도 그랬어요. 최근 몇 년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아요. 변수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변수는 상수다. 예측불가능성이야말로 예측가능한 일이다. 이런 것들. 이게 말장난 같지만, 아닙니다.

저는 2022년에 저한테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몰라요. 계획을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요. 2023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2022년을 모르는데 2023년은 어떻게 알겠어요. 2030년도 마찬가지죠. 저는 도대체 알 수 없는 시간 속에 던져진 셈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고, 변종 바이러스가 득세할 수도 있겠죠.

한국 경제가 어려워질 수도 있고, 의외로 호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후 위기가 급속도로 나빠져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고요.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도착해 트윗을 날릴 수도 있죠.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시간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셈입니다.

10살이 넘은 고양이가 아침부터 온종일 울고 불며 돌아다니는 이유를 저는 모릅니다. 배운 적도 없어요. 매뉴얼을 익혔다고 해도 그게 이 친구에게 적합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양이 일반의 데이터도 한계가 있어요. 이 친구에게는 이 친구의 데이터가 있으니까요. 이제 11년 차에 접어든 봉수와 저는, 서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시간대로 진입했습니다. 말이라도 통하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죠.

그래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어르고 달래고 토닥토닥해보고 마침내 내버려둡니다. 울든 말든 모른 척 하죠. 물론 하프 연주곡은 큰 소리로 틀어두고요. 책상에 앉아 원고 독촉 이메일에 답장을 쓰면서도 온 신경을 저 작고 하얗고 시끄러운 네 발 달린 존재에게 집중합니다. 어휴... 당연히 집중이 안되죠.

야, 너 진짜 왜 이렇게 시끄럽고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가 없는 거야.

결국 저는 이 친구를 끌어안고 온 몸을 어루만집니다. 빗을 꺼내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털을 빗겨줍니다. 보듬고 쓰다듬으며 끌어안습니다. 맙소사 이것도 인생과 닮았네. 미래가 불안하든 말든, 그저 이 알수없음을 힘껏 끌어안을 수밖에요.

고양이는 잠깐이나마 진정하고, 저도 제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춥니다. 2022년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내버려두고, 혹은 신경쓰지 않고, 그럼에도 어딘지 미심쩍은 하프 음악은 (손해볼 것 없으니) 크게 틀어두고, 미래 계획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기획하기로 합니다.

미래는 고양이 같고, 고양이는 미래 같습니다. 이 말은 메모로 남겨둘래요.

구독자님, 2022년에 저는 무슨 일들과 만날까요. 우리의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도대체 알 수 없음. 10년을 함께 산 고양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거나말거나, 어쨌든.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