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버린 자들과 (음악) 미디어의 내일을 논하다

🔁전망과 전략 몰아보기 

힙합LE는 2010년에 만들어진 힙합 커뮤니티이자 미디어입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웹 트래픽을 기반으로 리복, 필라, 에이블톤, 피치스, 마운틴듀, 레드불, 짐빔, 바카디 등의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고, 네이버 NOW, 바이브, 멜론, 지니뮤직 등과 음악 콘텐츠를 제작했고, 2017년부터는 힙합플레이야와 함께 [한국 힙합 어워즈]를 주최하고 있습니다. (👉회사소개)

3월 19일부터 힙합LE는 공식적으로 '힙합'을 떼고 '엘이맥'이 되었습니다. 이 소식은 최근 피치포크 미디어가 GQ와 합병된다는 소식과 함께 의미심장한 순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힙합LE, 아니 엘이맥의 최성웅 대표와 이인성 디렉터를 초대해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마침 TMI.FM의 슬로건도 "Tomorrow of the Music Industry"로 확정되었기에 변화, 고민, 내일이라는 3개의 큰 주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미디어 비즈니스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참석: 차우진(TMI.FM 대표), 최성웅(엘이맥 대표), 이인성(엘이맥 디렉터) 
날짜: 2024년 3월 22일
장소: 성수동 TMI.FM 홈오피스

1. 변화

1) 피치포크 미디어의 몰락(?)에 대하여

차우진: 일단 ‘변화’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눠볼 건데요. 최근 피치포크 미디어의 변화에 대해 업계 사람들이 여러 의견을 내놨어요. 음악 미디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네요.

최성웅: 어려운 주제예요. 사실 피치포크가 이 영역에서 오랫동안 상징적인 미디어라서 화제가 되는 거라고 봐요. 사실 최근 수년간 세계적으로 많은 음악 미디어들이 문을 닫거나 변했거든요.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저는 미디어 지형의 변화 혹은 경제 상황의 악화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입장에 대입해보면, 여러 원인들이 겹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운영의 측면에서 피치포크 미디어처럼 상징적인 곳이 단순히 경영적인 이유로 변화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계속 유지하는 게 미래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려니 짐작합니다.

이인성: 저도 비슷한데요. 제가 20대 때는 피치포크를 많이 봤거든요. 근데 지금 20대 초중반 친구들은 피치포크를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소비자 입장에선, 피치포크가 현시대의 20대를 타겟으로 하는데 실패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저는 일종의 ‘세대의 종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차우진: 피치포크는 1995년에 시작됐는데, 아마존이 1994년에 시작했으니 피치포크도 완전 인터넷 초창기 미디어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2000년 이후에 마니아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던 것 같아요. 그 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때가 닷컴 버블과 한국의 새로운 세대가 만난 시점이란 생각 때문인데요. 한국에서 다음은 1997년, 네이버는 1999년, 벅스는 2000년, 멜론은 2004년에 오픈했죠. 대략 1997년부터 2004년 사이는 냅스터, 소리바다, 오디오갤럭시 같은 것들이 흥행하던, 인터넷의 무법지대 같은 시기였어요. 2004년 이전에는 인터넷 결제가 불가능했으니까요.
피치포크는 롤링스톤 매거진 같은 걸 구리다고 생각하고, 인터넷에 익숙한 어린 독자들을 사로잡으면서 성공했다고 봐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등장한 미디어니까 주류에서 다루지 않는 음악, 로컬 씬에 등장한 새로운 사운드나 무브먼트에 집중하면서 인기를 끌었고요. 그렇게 20년이 지나는 동안 인터넷은 구조부터 역할까지 많은 게 바뀌었고 사용하는 세대도 달라졌으니까 피치포크가 어떤 식으로 변하든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사업이 어려워진 것도 마찬가지고요.

최성웅: 하나 더 부연하면, 저는 피치포크가 그때 가장 힙했다고 생각해요. 힙스터 혹은 힙스터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다뤘기 때문에 영향력이 커졌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워낙 개개인의 취향도 다양해졌고, 매체도 너무 많아지면서 힙이라는 영역이 거의 안 남은 것 같기도 하고요.

이인성: 저는 오히려 지금은 힙의 카테고리가 늘어났다고 봐요. 예전에는 음식에서 힙을 바라진 않았는데 이제는 음식 뿐 아니라 가구나 인테리어까지 모든 게 힙해야 되는 거 같아요. 제 생각에 힙이라는 게 과거에는 예술적인 영역에 많이 맞춰졌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일상에서도 힙해야 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힙한 예술에 향하던 어떤 시선이 이젠 일상으로 많이 퍼진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술의 힙이 되게 옅어진 게 아닐까…

차우진: 힙이라는 게 사실은 정의하기 어려운 것, 그냥 문화적인 코드나 서브 컬처 같은 거였는데 말이죠. 힙합도 그렇잖아요. 커뮤니티 안에서만 쓰이던 은어가 대중성을 얻으면서 일상적인 용어가 됐죠.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제가 볼 때 지금은 많은 것들이 엉망진창인 것 같아요. 그리고 바로 그게 '팝 컬쳐'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가 생기면서 새로 정리되는 시간일지도 몰라요. 물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쨌든 대중적이지 않은 어떤 변화, 작은 변화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맥락으로 엘이맥의 고민을 듣고 싶어요. 힙합엘이에서 ’힙합’을 빼고 ‘엘이맥’이 된 이유요.

2) 엘이맥(LE Mag)은 왜 '힙합'을 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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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당연히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일단 피치포크 사례처럼 전 세계적으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그 어느 때보다 채널도 많고 콘텐츠도 넘치는 시대에 저희가 ‘힙합’만 고집하는 게 제약이 많다는 생각을 오래 했어요. 우리는 계속 힙합만 해야 될 것 같은 그런 고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쌓였거든요. 더해서 지난 5~10년 간 세계적으로 힙합이 거의 모든 음악의 기반이 되거나 영향을 미쳤어요. 근데 우리는 다른 장르라는 이유 만으로 그런 변화를 못 다루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 영역을 넓히고 우리가 그런 변화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두 번째로는, 새롭게 생긴 미디어들 중에 음악이나 아티스트를 진지하게, 음악적인 얘기를 주로 다루는 경우가 여전히 많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해왔으니 다른 장르에서도 더 재밌는 걸 많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겹쳐진 것 같아요.

차우진: 이인성 님은 처음부터 엘이맥과 함께 했는데, 그런 입장에서 이런 고민은 어땠어요? 최성웅 대표는 대표니까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고민이 컸을 것 같은데, 콘텐츠를 총괄하는 입장에선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이인성: 저는 오히려 직관적으로 우리가 ‘힙합’을 떼기로 했다는 걸 더 크게 알리자고 했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콘텐츠에 있어서는, 되게 오만한 생각일 수 있지만, 저희가 약 10년 동안 은근히 많은 걸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더 할 수 있는 게 고갈됐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외국 미디어를 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디테일이나 퀄리티의 차이는 당연히 있지만, 매번 비슷한 콘텐츠, 비슷한 형식의 내용이 나오는 걸 보면서 우리가 이제 뭘 더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커졌죠. 그러다가 가장 직관적으로, 힙합을 떼고 엘이맥으로 한번 해보자… 이렇게 된 거 같아요.

3) TMI는 왜 'Tomorrow of the Music Industry'인가?

최성웅: TMI.FM은 최근에 그 투마로우… 이름이 길게 바뀐 것 같던데요?

차우진: 바꾼 건 아니고 슬로건을 다듬었어요. ㅎㅎㅎ 원래 T가 테크였거든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런데 M은 계속 고민이었어요. 뮤직이 좋을까, 미디어가 나을까… 음악만 다루는 게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데… 네, 사실 아무도 모르고 심지어 물어보지도 않지만 이런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T를 'Tomorrow'로 정한 거예요. 깔끔해졌죠.

최성웅: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차우진: 저는 주로 해외의 음악 뿐 아니라 테크, 경제, 예술 분야 미디어를 봐요. 그런데 공통적으로 어떤 바이브가 느껴지더라고요. 바이브라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데… 일단 지금은 테크의 시대라서 저도 뮤직 테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생각을 좀 바꿨어요. 한국에서 인공지능을 다룬다면, 일자리에 대한 위협, 아니면 미래 먹거리 사업… 에만 초점이 맞춰지는데 해외 미디어는 그 잠재성을 깊이 파면서 미래의 여러 이슈들을 다룬다는 인상을 받아요. 그렇게 보니까 테크가 너무 작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투모로우’가 떠오른 거죠.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이니까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ㅎㅎ 내일이라는 테마로 앞으로 벌어질 것들과 내가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것들도 다룰 수 있겠다.

최성웅: 저희도 같아요. 앞으로는 장르 자체가 그렇게 중요해질 것 같지 않아요. 물론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장르를 구분하지만, 막상 들어보면 딱 하나의 장르로 나누기 어렵거든요. 그리고 특히 요즘에는 장르를 구분하기 보단 전반적으로 좋은 음악을 듣는 것 같아요. 스포티파이나 유튜브도 마찬가지고. 이런 미래가 이미 와있는데, 그래서 저희도 변화를 하려는 거고, 그래서 TMI의 변화도 이해가 많이 되네요.

차우진: 맞아요. 모든 게 다 섞이고 경계도 사라지고 있죠. 라이프스타일도 패션이 되고, 음악도 장르 팬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케이팝 듣다가 재즈 듣고 60년대 소울 클래식으로 넘어가고. 그걸 연결해주는 게 바로 아티스트인 것 같고요. 그래서 미디어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계속 되죠. 

이인성: 저는 힙합을 떼겠다고 선언하는 충격 같은 것도 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과는 모르겠지만 일단 계기는 필요하니까요. 저도 요즘엔 힙합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듣는데요. 그러다 보니 세상에 정말 좋은 노래가 많고, 사람들에게 반강제적으로라도 그걸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요.

2. 고민

차우진: 엘이맥은 힙합 미디어에서 음악 미디어로 변하고 있는 셈이죠. 그러면 어떤 고민이 해소되거나 새로 생길지 궁금한데요. 콘텐츠 기획과 미디어 운영, 이렇게 나눠서 얘기해볼게요.

이인성: 콘텐츠로 봤을 때는 노멀해지겠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피치포크도 되게 취향이 강했는데, 그게 피치포크 만의 색으로 뭔가를 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힙합을 떼고 엘이맥이 되어도 힙합 베이스의 취향이 많이 반영될 거라 봐요. 아마 음악을 넓게 다루지만 힙합 취향이 많이 가미된 곳이 되지 않을까요? 컴플렉스(COMPLEX)도 그렇고 하입비스트(Hypebeast)도 그렇고 저는 다 힙합 베이스의 미디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엘이맥은 패션 미디어와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있죠. 그걸 위해 우리가 어떤 콘텐츠를 할지, 사업적으로 뭘 할 건지 이런 고민이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최성웅: 저희가 조금 특수한 케이스라고 보거든요. 저희는 미디어로서 콘텐츠도 만들지만 커뮤니티와 웹사이트도 활성화되어 있어요. 제가 찾아봤을 땐 이런 구조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 둘을 다 잘 할 수 있을까, 혹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음악적인 부분을 어떻게 더 많이 보여줄까, 그런 고민이 있어요. 커뮤니티와 미디어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음악적인 부분에도 집중하고 싶다, 그런 고민이죠. 사실 음악이든 아니든 미디어의 고민은 비슷한 것 같아요.

이인성: 회사를 만든 지 약 10년이 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숫자적으로 계속 뭘 늘린 건 아니었어요. 제 느낌에는 힙합을 좋아하는 10대, 20대가 계속 유입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3~40대가 되어도 힙합을 좋아하면 좋겠다는 약간의 희망 같은 게 있었는데 요즘엔 이게 정말 어렵구나란 걸 깨달아요. 어떻게 3~40대까지 독자를 넓힐 수 있을까, 그게 제일 큰 고민이죠.

1) 10년 이상 음악 미디어를 운영하는 일

차우진: 엘이맥은 2010년에 오픈했는데 2024년까지 오면서 몸으로 느끼는 변화들이 있잖아요. 방금 얘기한 것처럼 독자들은 여전히 어리다거나, 세대가 달라졌다거나. 아니면 MAU가 높았는데 점점 줄어드는 게 보인다거나, 그래서 광고 제휴 같은 비즈니스도 변했다… 뭐 이런 미디어 변화들을 훨씬 더 깊이 체감할 것 같아요. 

최성웅: 일단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소셜 미디어라고 봐요. 기존 미디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엘이맥도 전형적인 웹 매거진이라 텍스트 콘텐츠가 많았는데 점점 영상으로 포맷이 변했거든요. 저희가 영상을 하고 싶어서 변한 게 아니라, 실제로 텍스트 관련 데이터가 줄어드는 게 보이니까 그런 선택을 한 거였어요. 물론 같은 걸 계속 하기 싫어하는 성향이 반영되긴 했지만, 텍스트 콘텐츠만 계속 붙잡고 있는 건 좋지 않겠다라는 판단도 있었거든요.

차우진: 영상으로 넘어간 시점은 언제였어요?

이인성: 5~6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완전히 영상으로 넘어간 건 아니에요. 우리는 커뮤니티와 미디어가 함께 있다 보니 커뮤니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도 동시에 운영하거든요. 그래도 저희는 영상 콘텐츠에 뮤직비디오나 다큐멘터리처럼 너무 힘을 주는 타입은 아니에요. 지금은 텍스트보다 영상이 좀 더 편해졌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영상 인터뷰로만 치면 하루에 4~5편도 찍을 수 있고, 이틀 만에 퍼블리싱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영상도 점점 끝을 향해간다는 인상도 있어요. 그다음은 뭘까… 이게 고민이죠. 예전엔 그런 걸 좀 따라갈 수 있었는데, 요즘은 진짜 잘 모르겠어요.

최성웅: 한마디 더 보태자면, 형태나 포맷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건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까요. 조금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지난 5년 정도 사이에 세계적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잖아요. 팬데믹, 전쟁, 코인, 경제위기 등등. 그런 걸 보면 뭔가를 예측 한다는 게 가능한가 싶죠. 그래서 그때 그때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맞는 걸 찾는 거에 가까워요. 그래서 빠르게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차우진: 지난 10년 동안 디바이스도 네트워크도 변했고, 그 과정에서 태도나 삶의 가치,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도 변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그래서 전 오히려 과거에서 힌트를 찾으려고 해요.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의 사람들은 라디오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금 우리가 숏폼을 보는 거랑 비슷하지 않았을까? 충격과 공포 속에서 엄청난 사업 기회도 있었을 거고요.
그래서 이런 변화가 찰나같기도 해요. 틱톡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역사에는 몇 줄로 요약될 지도 모르죠. “틱톡의 전성기는 2020~2028년이었다” 뭐 이런 식으로요. ㅎㅎ 그래서 예측은 불가능한데, 다만 이게 실제로 내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문제로 인식할 수밖에 없고, 깊이 들여다봐야만 하는 거죠. 그래도 조금 넓은 관점으로 보고 싶어요. 지난 10년 동안 제가 스타트업에 다니고, 뉴스레터도 하고, 책도 쓰면서 배운 건 정말 그거 하나인 것 같아요.

최성웅: 제가 질문하자면, TMI.FM이 다루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현재 국내에서는 비교적 소수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비즈니스에 있어선 어때요?

차우진: 저는 2~30대에 소셜 미디어도 그렇지만 IPTV나 스트리밍, 심지어 인터넷이 대중화될 때를 직접 겪었어요. 언제나 그런 변화들의 초기에는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은 모두 소수였지만, 한 5~6년 지나면 모두가 인터넷, IPTV, 소셜 미디어에 대해 고민을 하더란 거죠. 
저는 이런 변화의 핵심은 네트워크고, 미디어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발달할수록 점점 더 상호작용이 중요해진다고 봐요. 어떤 형태든 참여가 점점 중요해지겠죠. 네트워크의 비용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거기에 올라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미디어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지금 ‘내일’을 얘기하는 게 아무리 관심이 적더라도 유리하다고 봐요. 몇 년만 지나도 금방 일반화될 거니까요. 
그 시점에서 제가 기대하는 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오랫동안 내 관점과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들이 거기서 보람이든 이득이든 가치를 발견하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수익과 비전을 찾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앞으로 이런 변화가 지속될 건데, 그때 '이건 누구 의견을 들어야해?'라고 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오르면 좋겠다…
그러니까 결국 지금의 미디어는 그런 포지션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네트워크 고도화는 산업의 중간 역할을 날려버리니까 무섭거든요. 그게 혁신이기도 하지만, 결국 유통도 날리고 미디어도 날리고 에이전시도 날리고…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어중간하면 안되는 것 같아요. 그런 시대가 됐어요. 그래서 뭐가 됐든 소위 ‘엣지’가 있는 곳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이인성: 저는 다루는 주제에 대해 우진님이 얼마나 흥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만약 퍼센티지로 따지면 어느 정도일까요? 비즈니스도 결국 관심사와 연관이 되니까요.

차우진: 요즘에 새삼 깨닫고 있는데... 저는 지금 제 일에 대한 흥미가 거의 90%예요. 재밌어요. 정말 재밌어요. 이 재미가 뭘까, 생각해보곤 하는데요. 좀 엉뚱할지 몰라도, 저는 약간 잘난 척하고 싶은 것 같아요. ㅎㅎ 사실 예전에는 미디어, 네트워크, 음악… 이런 곳이 다 너무 빨라서 정신 없고 싫다는 생각도 했는데, 30대 후반이 지나면서 확실히 깨달았어요. 아, 나 빠른 거 좋아하네. 미디어의 최전방 좋아하네. 후천적으로 중독된 건지 모르지만 이 쪼이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뭘 본 다음에, ‘여러분! 세상이 바뀌고 있어요!’라고 소리치면 사람들이 ’네? 뭔 소리야?’ 막 이러는 느낌.

최성웅: 90%는 좀 충격적인데요. 특히 연차가 좀 된 분들 중에서는 더 찾기 어렵고요. 본업에서 90%라니… 이거는 좀 대단하네요.

2) 포맷이 아니면 뭐가 중요할까?

차우진: 아까 얘기를 다시 이어가죠. 포맷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뭐가 중요할까요? 엘이맥은 인터뷰가 좋기로도 유명하잖아요? 그럼 내용의 깊이만 있다면 결국 독자에게 잘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이인성: 정확히 말해서, 포맷에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응하는 속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새로운 포맷을 만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지금은 그럴 만한 능력은 없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중적인 포맷을 잘 따라가는 대응력이 중요하다는 쪽이죠.

최성웅: 저도 아무 포맷이나 해도 된다는 게 아니고, 포맷에 목 매지 말자는 생각이에요. 예를 들면 저희는 숏폼을 메인으로 안 하거든요.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 했을 때, 인터뷰의 깊이 같은 게 중요할 수는 있어요. 사실 이건 미디어의 기본이기도 한데, 오랫동안 신뢰가 쌓일 때 그 위에 여러 관계들과 좋은 이미지도 생기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걸 위해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고요. 포맷이나 기획보다 중요한 건 신뢰라고 봐요. 신뢰가 기반이 되면 어떤 포맷이나 기획도 시도해 볼 수 있으니까요.

차우진: 그렇죠. 미디어는 일단 신뢰를 쌓는데 시간을 써야 하는 것 같아요. 이건 어쩔 수 없다.

최성웅: 그래서 진짜 어려운 업인 것 같아요. 미디어는 아이디어나 기술력이 좋다고 무조건 잘 되는 건 아니잖아요.

차우진: 그렇죠. 저도 왜 동영상 안 하냐, 왜 유튜브 안 하냐, 이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텍스트 다루는 게 사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편해서 텍스트가 효율이 좋아요. 그래서 포맷은 진짜 중요하지 않다. 그럼 핵심이 뭘까?
흐름상 앞으로는 인터렉티브가 너무 중요해질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서 콘텐츠에서 이런 인터렉션을 어떻게 만들지? 이런 고민이 있죠. 제 입장에서는 뉴스레터의 인터랙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챌린지가 있어요. 초기에는 시도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좀 어렵더라고요. 심야 라디오 방송 스타일로 사연도 받고, 서로 조언도 하는 커뮤니티도 만들려고 했는데, 계속 하기가 어렵긴 했어요. 물론 의외로 잘 됐어요.

이인성: 저는 그런 인터랙션에 경제적인 가치가 엮이면 좋겠어요. 소비자들한테 이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저희도 늘 콘텐츠로 접근하면서 좋은 콘텐츠에는 좋은 피드백이 달릴 거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만약에 제가 이걸 혼자 한다면 차라리 독자들의 리액션에 돈을 지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 같아요. 
되게 힙합적인 생각인 것 같기도 한데, 감성적으로 시작하면 늘 한계가 있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도 3개월, 6개월 지나면 모두 지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콘텐츠에 감성이 먼저지만 그걸 뒷받침할 구조도 잘 생각하고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차우진: 그러면 엘이맥은 유료화에 대한 고민은 안 해봤어요? 제가 구독하는 해외 매체들은 90%가 유료 미디어거든요. 개인이든 기업이든 다 유료예요. 작게는 월 5천 원도 있고, 2만원, 5만원도 있는데... 이걸 보면 서양에서는 유료 구독이 완전히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최성웅: 당연히 고민을 했어요. 하지만 저희가 안 했던 이유는 일단 한국의 미디어 지형에서 유료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야 유료 뉴스레터 같은 게 눈에 좀 보이지만 엔터 영역은 대부분 무료죠. 유료화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어요. 음악, 그러니까 예술 영역은 의식주 같은 필수적인 영역과는 거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만약에 유료화 한다면, 공급자 입장에서는 모든 콘텐츠가 전문가 수준이 되어야 유료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일을 하는 이유도 그렇고, 힙합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고, 소위 엄청난 전문가가 되어서 깊이 파고 들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 영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인성: 엔터 기반 미디어가 유료화되기 어려운 건, 조금만 노력하면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라고 봐요. 저도 매일 아침 경제 분야 뉴스레터를 보는데, 유료 구독이에요. 하지만 엔터 뉴스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만 들어가도 보이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이 업계는 거의 무료라서 경쟁자도 많은데, 현재 엘이맥은 거기서 유료화할 만큼 뾰족한 걸 만들어낼 능력이 부족한 거겠죠.

3. 내일

차우진: 그러면 이제 ‘내일’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미디어의 지속 가능성, 그러니까 결국에는 돈을 어떻게 벌 거냐 아니면 어떻게 순환 구조를 만들 거냐의 문제인데요. 이 고민은 진짜 치열할 것 같아요. 어때요?

최성웅: 치열하죠. 제 생각에 미디어가 어려운 이유는, 미디어는 순수 IP를 자체 소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나 미디어 환경 같은 외부 지형이 바뀌면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요. 게다가 신뢰 구축을 위해 오랜 기간 생존해있어야 하고, 그 생존을 위해서는 돈도 벌어야 하니까요. 미디어가 회사의 비즈니스로 오랫동안 생존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차우진: 옛날에는 영향력만 생겨도 비즈니스는 그럭저럭 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이인성: 네, 맞아요. 영향력이 있으면 그런 걱정이 없겠죠.

1) 미디어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

차우진: 사실 제게 미디어는 전형적인 광고 사업이거든요. 애초에 시작도 광고였고 전성기도 광고였고요. 그걸 위해 영향력이 필요했던 건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도 그렇고, 피치포크도 그렇고, 결국 패션이나 음악 같은 취향 기반의 미디어는 이제 막 뜨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성공시키면서 영향력을 얻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젠 그런 시대도 끝났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해요. 이런 상황에서 엘이맥은 어떻게 먹고 살 거예요?

최성웅: 저희는 지금 오리지널 영상 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있어서, 이 부분은 OTT나 방송국 개념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 오리지널을 통해 브랜드나 기업들과 협업하면서 수익이 생기는 구조가 있고요. 이건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것 같고, 그 외에는 사실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해봐야 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커뮤니티 쪽으로도 어떤 시도를 해봐야겠다, 이런 생각도 있어요. 그리고 해외 쪽으로, 한국에서 했던 비즈니스 방식을 해외에서 적용해볼 수도 있겠다, 이런 계획들을 가지고 있어요.

차우진: 그럼 스튜디오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이인성: 그렇죠. 물론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긴 해요.

최성웅: 현재 저희 수익 모델은 영상 콘텐츠로 인한 수익과 광고 수익, 콘텐츠 협업 등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고민은 여기에 어떤 파생 상품을 더 만들어 볼 수 있을까인데, 미디어의 장점은 결국 플랫폼을 갖고 있으니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2) 우리의 타겟은 누구일까?

차우진: 엘이맥의 핵심 타겟은 누굴까요? 제 경우엔, 뉴스레터 구독자들을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숫자도 있고, 결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그들이 누군지는 저도 몰라요. 그들이 누군지 알아야 저도 그들의 니즈에 맞출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동시에 과연 그게 필요할까? 이런 고민도 있고요. 저는 콘텐츠를 쓸 때는 가상의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놓고 쓰거든요. 임원이다, 투자자다, 실무자다, 이렇게요. 근데 엘이맥은 저와는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최성웅: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일단 저희는 비즈니스, 그러니까 브랜드 파트너 이런 쪽은 명확하고요. 그중에 메인으로 가장 크게 진행하는 건 장기적으로 음악이나 문화적인 코드를 브랜딩에 녹이고 싶어 하는 곳들이에요. 저희도 그런 경우를 선호하기도 하고요.
그중에는 네이버, 지니뮤직, 멜론 같은 음악 플랫폼도 있고, 레이블이나 기획사 같은 엔터테인먼트 회사, 패션이나 주류 브랜드, 음악 장비 기업 등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더 다양한 기업이나 분야와 콘텐츠적으로 혹은 사업적으로 협업을 하는 게 지금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인성: 콘텐츠적으로 보면 엘이맥의 타깃은 15세에서 25세의 젊은 남성이 제일 많아요. 이건 그동안 다뤘던 힙합의 특징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희 고민은 25세 남성이 나이를 먹어 35살이 되면 음악을 많이 찾아 듣지 않는다는 데 있어요. 이제는 음악을 좋아하는 15~25세 남성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5~ 25세, 35세 이상을 주요 타깃으로 잡고 싶어요.
과거에는 막연하게 타깃을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름 디테일하게 구분해요. 힙합을 즐기는 사람, 음악을 즐기는 사람, 음악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 이런 단계로 구분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첫 단계인 힙합이 키워드였죠. 하지만 이젠 음악을 즐기는 사람까지 가고 싶은 것 같아요. 음악을 즐기는 30대 중반까지 타깃을 넓히면 좋겠다. 20~25세에서 멈춰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으로 타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차우진: 이 영역은 정말 스터디가 필요해요. 어떤 책에서는 타겟을 촘촘하게 정하라 하고, 어떤 책은 대중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고 하고, 어떤 책을 보면 더 뾰족하게 만들어서 단 한 명을 만족시켜라고 하거든요. 저한테는 레퍼런스가 필요해요. 잘 되거나 오래 하는 사례들을 보고 싶기도 하고요.

최성웅: 그래서 데이터를 보더라도 조금 다른 맥락이 필요한 거 같아요. 이 영역은 여전히 감각이나 추측도 유효하니까요.

차우진: 저는 음악 업계라는 특수성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보편성과 특수성으로 나눠서 현상을 보려고 하는데, 그걸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소비자 데이터는 되게 제한적인 것 같고요. 그걸 따라가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되겠죠. 그래서 뭐랄까, 여기서는 자기 멋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래야 좀 멋있어지니까. 사실 이 판에서 뭘 좀 하려면 멋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멋있어지려고 애쓰다 보면 멋진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영역이 넓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보편적인 건... 알다시피 TMI.FM이 있는 곳은 사실 큰 시장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음악 산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만 음악 산업이라는 특수성에 보편적인 이야기들; 커리어나 지속가능성, 비즈니스 모델 같은 내용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풀어볼 수는 있다고 봐요. 제 입장에서는 타깃을 설정하기보다는 일단 찾는 게 먼저에요. 혹은 만들 수도 있고요. 독자는 발견이 아니라 발명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인성: 저희도 근데 똑같은 것 같아요.

차우진: 그렇죠. 근데 이걸 풀려면 반드시 글로벌에 접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한국의 1만 명이 글로벌의 10만 명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영어로 콘텐츠를 만들고,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예요. 그걸 전제로 하면 생각의 방향이나 고민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일단 지금은 글로벌에 접속하는 게 매우 좋아졌잖아요. 사실상 장벽이 없어졌으니까. 언어의 장벽은 정말로 거의 없어졌어요. 저는 거기에서 어떤 가능성을 엿보는 것 같아요.

최성웅: 저는 꽤 오래전부터 이런 얘길 했어요. 엔터나 예술 영역에서는 천운이 따르거나 천부적인 능력이 있지 않는 한, 밸류체인에 여러 가지를 넣든가 아니면 영역을 확 넓히는 것밖에는 한국에서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할 방법이 없다. 비즈니스를 유지하려면 그런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 글로벌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고 있어요.

차우진: 엘이맥은 앞으로 어떤 비즈니스를 더 해보고 싶어요?

최성웅: 앞서 얘기한 것처럼 글로벌 쪽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작년에는 일본, 태국 등의 아시아 힙합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그걸 넘어 힙합이 아닌 아시아 음악, 힙합이 아닌 서양 음악가들과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겠죠. 단순히 콘텐츠를 넘어 공연을 기획할 수도 있고, 음원 제작 같은 IP 사업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엘이맥 만의 색깔을 어떻게 녹일지 고민하고 있죠.
또 국내에서는 여러 기업들과 협업 지점을 늘려가려고 해요. 그동안 큰 기업들과도 협업했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는 노하우나 우리만의 장점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영상 협업, 브랜드 PPL, 제작 대행까지 여러 형태의 프로젝트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함께 할 수 있는 곳들이 더 늘어나면 대표 입장에서는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나 비즈니스를 만들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인터뷰를 보고 계신 다양한 기업이나 브랜드들도 엘이맥에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좋은 자리를 만들어볼게요. 메일(master@lemag.co.kr)이나 메신저로 언제든 편하게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이건 잠시 광고였고요. ㅎㅎ

이인성: 국내에서도 음악의 파이가 넓어진 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해 보려고 해요. 아마 이 인터뷰가 나올 때 쯤에는 케이팝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프로그램도 공개될 것 같은데, 실제로 저희는 알앤비, 밴드 음악, 포크, 전자 음악 아티스트들과의 콘텐츠도 만들고 있어요. 

물론, 이런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기존 독자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이해하는 부분이고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에는 미안하다는 생각도 있어요. 다만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엘이맥의 콘텐츠를 바라봐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원래 우리가 다루던 ‘힙합 아티스트’들과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가치관이나 태도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렇기 때문에 힙합 아티스트를 좋아하던 팬들이 타 장르 뮤지션에게도 깊게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엘이맥이 그 기점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고요. 결과적으로 독자들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음악과 아티스트를 바라봐준다면 엘이맥이 초대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범위도 훨씬 넓어질 것 같아요.

3) 우리의 '코어'는 무엇일까?

차우진: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우리의 코어는 뭘까요? 시장도 넓어지고 가능성도 생겼고, 달리 말하면 해볼 수 있는 게 늘어난 건 사실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우리의 동력이랄까, 본질적인 부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니까 한 번 얘기해보고 싶어요.

최성웅: 요거는 먼저 들어보고 싶어요. TMI.FM의 코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차우진: 음... 저는 TMI.FM의 코어를 '리서치'라고 정의해요. 사실 매우 많은 곳들이 핵심 가치를 추상적인 언어로 정의하곤 하는데, 저는 그걸 좀 벗어나고 싶거든요. 그래서 지금 내가 뉴스레터를 계속하고, 정말 90%가 즐겁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일의 본질이 리서치이기 때문이다, 라고 정의해요. 
이 리서치가 바로 내가 만든 콘텐츠의 가치를 만든다, 이걸 기반으로 관계도 생기고, 신뢰도 생기고, 수익도 생긴다고요. 보통 관점, 안목, 태도 뭐 이런 것들을 콘텐츠의 핵심으로 지목하는데 저는 그것들도 결국 리서치를 얼마나 깊이하느냐란 질문으로 수렴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콘텐츠에서는 리서치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최성웅: 되게 흥미롭네요. ‘리서치’라는 명확한 단어가 나오니까… 저는 성실함이나 꾸준함, 이런 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인성: 저는 ‘대충’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음악 미디어 비즈니스는 엄청 큰 세계가 아니라 작은 규모들의 집합이거든요. 물론 엄청 큰 규모의 기업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비즈니스가 더 많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작은 곳들은 대충 대충 해야, 빨리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충이란 표현이 좀 그렇지만… 예를 들면 인터뷰를 만들 때, 너무 열심히 준비하면 인터뷰하는 사람이 더 돋보이는 느낌이 들거든요. 내가 아티스트의 의도를 맞췄다는 걸 뽐내고 싶은 느낌이랄까? 그런 게 은근히 드러나요. 하지만 인터뷰어의 얘기가 더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같이 일하는 에디터 분들에게도 대충하라고 하죠. 그래야 그들이 더 많은 얘기를 하게 되니까. 쉽지는 않죠. 대충 말고 다른 단어를 쓰면 더 쉽게 설득될 것 같은데 다른 단어가 떠오르진 않네요.

차우진: 대충이란 건 일종의 태도겠죠. 저는 그 태도가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말로 바꿀 수 있을까요? 유연함? 물렁함? 물렁물렁해서 잘 휘는 태도랄까.

최성웅: 여전히 엔터라는 영역은 하나하나 숫자를 분석해서 뭘 찾을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거든요. 게다가 결과도 전혀 예측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도 ‘그냥 한다’에 가까운 태도를 가지고 일을 해요. 재미있을 거 같으면 그냥 한다 같은 거요. 물론 비즈니스를 할 때는 좀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하거든요.

차우진: 맞아요. 재밌어야 해요. 그래야 리서치도 하고 밤도 새고…

최성웅: 만약, 우진님이 오랫동안 리서치를 할 수 있었던 동기가 호기심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도 90%로 좋아한다고 하니까, 좀 예외적이란 생각도 들어요.

차우진: 그래도 저는 ‘리서치가 중요합니다’라고 딱 찍어서 말하려고 해요. 왜냐면 저처럼 일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확실한 동기부여나 레퍼런스가 될 것 같아서요. 열정이나 진심, 뭐 이런 말을 쓰면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은 이 일을 너무너무너무 사랑하나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나는 사랑만큼 거리두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리서치가 본질입니다'라고 하면 타고난 재능에 고민하던 사람들도 '어, 리서치라면 할 만 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래서 대충이라는 말에 되게 공감했어요. 적당히 거리를 좀 둘 수 있어야 그걸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이인성: 맞아요. 너무 열정적인 사람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사람을 선호해요.

차우진: 저도요. 음악을 좋아하는데 인생을 걸고 사랑하진 않아요. 물론 내 인생에서 음악은 중요하죠. 하지만 다른 것들도 그만큼 좋아하고, 사실 음악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더 많아요. 그 정도의 거리감이에요. 내 인생에서 음악이 없어지면? 에휴 뭐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겠죠. 여러분은 어때요? 인생에서 힙합은 얼마나 중요해요? 이게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인성: 그동안 엘이맥을 계기로 만난 사람들이 꽤 많아요. 근데 문득 그들과 비교하면, 제가 음악을 엄청 좋아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그 덕분에 이 일을 오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음악을 그냥 외형적인 멋,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나이를 먹어도 이 생각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내가 차고 있는 시계 같은 느낌이겠구나, 나를 꾸며주거나 나를 설명해 주는 어떤 요소가 되면 좋겠어요. 그것조차 없으면 내 코어가 무너질 것 같다는 느낌이 막연하게 있어요.

차우진: 그게 좋아하는 거죠. 다만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는 거겠죠.

최성웅: 어렸을 때 들은 음악이 하필 중요한 순간이었다면 사람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진짜로 음악에 목을 매게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엄청난 위로를 받거나, 아티스트에게서 엄청난 롤 모델을 봤을 때. 그런데 저는 그런 경우는 아니에요. 저는 사실, 새롭고 신선한 창작물과 그 과정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직접 만들 순 없지만, 그런 과정이나 결과를 보고 싶고, 누군가 그걸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싶거든요.
그래서 제게 힙합이란 건 처음 접했을 당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줬던 장르였어요. 기존의 문법을 다 깨면서 자신의  얘기를 더 깊게 하는 음악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빠져있는 것 같아요. 음악이 제 인생의 넘버 1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음악과 가까운 데서 뭘 하고 있었더라고요. 없어도 살 수 있겠지만, 결국 음악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영양소 같은 거다.

차우진: 비타민D 같은 음악?

이인성: 오메가3 아니고요? ㅎㅎ

차우진: 뭐가 됐든 필요한 거요. 저도 오랫동안 내가 음악을 정말 좋아하나...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정답이 뭐든, 아마 오랫동안 음악과 가깝게 지낼 거라는 건 알아요. 물론 만약 음악이 내 인생의 좋은 것들, 소중한 것들을 방해하면 언제든지 음악을 지워버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그걸 위해 계속 어떤 좋은 관계들과 상황들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겠죠. 관계가 망가지거나, 건강이 악화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계속 고민하고 일하고 노력하는 거겠죠. 그런 식으로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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