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없는 관계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님은 진짜 좋은 관계는 목적 없이 실없는 장난을 칠 수 있는 관계라고 말하더군요. 아무 이유 없이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 어린아이들처럼 서로 장난을 거는 부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걸었는데 그의 반응이 정색하며 목적 없는 전화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다면 그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합니다.
혹시 강아지를 키우시나요?
그렇다면, 당신의 강아지에게 바라는 것이 있나요? 강아지를 키우는 목적이 있나요? 예전에는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키우기도 했습니다. 남은 음식 처리가 목적이기도 했죠. 고양이 같은 경우는 거의 대부분 쥐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이런 목적들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가 주인에게 충성하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이를 얻기 위함이라고요. 일견 그런 것도 같습니다. 간식으로 유혹하면 뭐든지 다 할 것 같은 반려동물들입니다.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손”도 “앉아”도 “기다려”도 척척합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이 하는 행동의 목적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메이”가 자고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팔을 베고 자는 겁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모카”도 똑같이 그러더니 “오이”도 그러더군요. 사료 그릇에 사료가 가득해도 아침 알람이 울리면 그들은 침대에 올라와 우리를 깨우느라 난리가 납니다. 아침마다 하지 말라고 무섭게 말해도 녀석들은 우리를 깨웁니다. 어쩌면 아무런 목적이 없는 실없는 장난이 아닐까요? 실없는 장난은 심심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심심할 때 찾는 상대는 가장 친한 상대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나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목적이 있나요?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겁니다. 마음의 위로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가늠할 방법이 없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면서 언제나 매번 위안을 받나요? 아무 곳에나 똥을 싸고, 집안 곳곳을 엉망으로 만드는 그들에게 화를 낸 적이 자주 있을 겁니다. 사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할 때는 목적이 있을지 몰라도 그들과 함께하면 곧 그 목적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은 어떤 목적 때문이 아니게 되죠.
메이는 사료가 반쯤 찬 그릇을 앞에 두고 나에게 끙끙 댑니다. 그러면 저는 남은 사료 다 먹으면 새 사료를 주겠다고 말하죠. 그 대치 상황은 그렇게 이어지다가 저는 “너 먹던 사료 안 먹고 새 사료만 찾는 거 문제 있어!”라고 메이에게 말하고는 새 사료를 채워줍니다. 메이가 하는 행동이나, 내가 하는 행동 모두 참 실없는 농담 같은 행동들입니다. 메이가 왜 그러는지 솔직히 알 수 없습니다. 메이 입장에서도 내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장난을 칩니다. 처음에는 메이가 하는 행동들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나 목적이 없는 실없이 하는 장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메이에게는 가장 친한 상대가 나와 아내이기 때문이죠.
“메이”, “모카”, “오이” 모두 말썽을 부립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편한 상대에게 하는 실없는 장난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종종 그들을 실없는 장난으로 귀찮게 하곤 하니까 말이죠. 목적이나 이유가 없는 가장 확실한 관계는 우리와 반려동물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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