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 이유는 딱 두 가지이죠. 어이가 없거나, 너무도 탁월하거나!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이 영화도 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나마 제목이 가장 얌전한 것이었군."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과연 어떤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란 인물들이 공동 연출자이자 각본도 썼습니다. 필모를 보아하니 전작들 중 눈에 띄는 영화 한 편이 있었습니다. "스위스 아미 맨" 순간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럴만한 영화였구나!"하고 혼잣말을 했죠. 영화 "스위스 아미 맨"역시 저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었거든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가장 크고, 가장 작은 이야기 그리고 양자경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아시아계 가족이 있습니다. 엄마는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무능해 보이고, 늙은 아버지는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딸은 동성애자로 엄마와 사사건건 대립합니다. 이런 바람 잘날 없는 가족이 다중 우주 속으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세무조사를 받기 위해 세무사 직원을 만나는 자리. 엄마는 다중 우주 속 다른 자신과 접속을 하게 됩니다. 다중 우주를 위협하는 악당으로부터 세상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죠. 그리고 영화는 대 환장 파티를 벌이게 됩니다. 네. 말 그대로 대 환장 파티입니다.
이 영화는 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추억의 홍콩 액션과, 패러디, 오마주가 섞여있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불쾌한 장면과 화장실 유머, 그리고 유치 찬란함까지!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간단한 예로, 다중 우주 어딘가에서 주인공이 돌멩이로 살고 있는 장면이 나올 때 정신이 혼미해지다 못해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위에서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이 혼미해지는 정신의 이유가 어이가 없기 때문일까? 탁월함 때문일까?
많은 평론가들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이없음에 한 표를 주겠습니다. 그런데 그 어이없음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왜 이렇게 당황스럽고 불편하고, 어이가 없었던 것일까요? 이 비슷한 경험을 어디선가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난해한 현대 미술을 접했을 때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세상에 없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 역시 세상에 없던 영화를 처음 본 것과 같았던 겁니다. 이 영화의 탁월함을 논하기에는 저의 인식이 고정관념 속에 막혀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영화가 저를 제대로 놀라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정신이 혼미한 저에게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주인공 "양자경"이었습니다. 저는 "성룡"을 중화권 최고의 배우로 꼽고 있었습니다. 최근 그의 행보는 저에게 많은 실망을 주었죠. 이제 저에게 최고의 중화권 배우는 "양자경"이 될 것 같군요. 그 시작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될 것입니다. 액션만 잘하는 여자에서 비로소 최고의 배우로 우뚝 서는 순간입니다. 그녀에게서 이런 귀여운 면이 있었다니!
양자역학은 가장 작은 곳에서 세상의 비밀을 탐구합니다. 놀라운 것은 가장 작지만 가장 무거운 블랙홀을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큰 세상을 다루는 학문이 양자역학인 것이죠. 양자역학에서 다중우주의 개념이 나옵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 우주 속 가장 복잡한 인간관계를 보여주지만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관계에서 비롯되죠. 매우 심오한 철학 같아 보이지만 이 지점이 이 영화의 단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없는 독특한 영화처럼 굴더니 결국 가족이 최고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따릅니다. 결말이 좀 더 파격적이었더라면 아마도 저는 혼미한 정신으로 쓰러지며 박수를 보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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