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브리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의 그림이나 글을 오래전부터 보셨다면 제가 "오드리 헵번"의 덕후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모든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얼마 전 그녀의 영화 "사브리나"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좋게 볼 수 없었습니다. 겉으로 포장된 모습은 참 근사한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영화의 이야기나 완성도는 실망스럽더군요. 그녀에 대한 저의 콩깍지가 벗겨진 것일까요?
솔직히 이 영화 별로야. (영화 "사브리나" 1954)
위의 그림은 영화 "사브리나"를 대표하는 이미지입니다. 지금 보아도 너무도 세련되고 모던한 패션입니다. 패션 디자이너 "지방시"의 작품이죠. 이 영화를 시작으로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의 오랜 우정과 협력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는 "오드리 헵번"을 모델로 삼은 "지방시"의 패션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영화 속의 사브리나 캐릭터가 꼭 이런 의상을 입어야 했는가? 에 대한 당위성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사브리나는 부잣집 운전기사의 딸입니다. 그녀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고, 프랑스물을 먹은 그녀는 너무도 패셔너블해져서 돌아오죠. 지방시의 아름다운 의상이 필요한 이유로 그럴싸합니다. 그런데 사브리나는 패션디자인 유학이 아닌 요리사가 되기 위한 유학이었고, 프랑스만 갔다 오면 갑자기 패션 감각이 생기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개연성이 부족하고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인공의 패션은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겠습니다. 아주 큰 문제는 아니니까요.
영화 "사브리나"는 부잣집 도련님 둘이 운전기사의 딸, 사브리나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립니다. 이 과정에서 사브리나 아버지의 태도는 매우 불쾌하고, 더 나아가 위험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주입할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사브리나의 아버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위험하고 장난 같은 사랑놀음을 막았어야 합니다. 모르고 있었다면 할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이 부잣집으로 팔려가는 것을 모르는 척 외면하며 용인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브리나 아버지의 태도로 영화의 메시지가 불손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의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영화의 다른 부분들은 조악하고 엉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작여건을 알 수 없지만 명성에 비해 영화의 볼륨은 형편없이 작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제작비를 "오드리 헵번", "험프리 보가트", "윌리암 홀덴"에게 퍼 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클래식의 칭송을 받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클래식이란 타이틀에 어울릴 만한 작품들 일 겁니다. 그러나 다른 명작들과 섞여서 은근슬쩍 명작인척 넘어가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저는 "오드리 헵번"이 나온 영화들이라면 모두 최고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들도 있었습니다. 직접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죠. 남들이 말하는 좋은 것, 대단한 것, 위대한 것들을 귀찮아도 직접 확인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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