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육'을 짚어야 하는 이유
산업의 성숙도를 재는 가장 정직한 지표 중 하나는 인력 파이프라인이다. 리그가 몇 개인지, 후원 계약이 몇 건인지보다, "이 산업에서 일할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
한국 이스포츠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과거 선수를 선발할 때에는 게임에 접속해 랭킹을 확인하고, 해당 랭커와 직접 붙어봐 자질이 있다고 판단되면, 테스트 제안을 보내고 영입 제안을 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제는 학생이 직접 본인이 자질이 있다고 판단되면 아카데미를 수강하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프로로 입단하는 체계적인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산업을 굴리는 나머지 인력 — 대회 운영, 콘텐츠·마케팅, 세일즈, 방송 제작, 데이터 분석 — 의 공급 경로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현업 채용의 상당수가 여전히 "현장에서 굴러본 경력"에 의존한다.
역설적인 것은, 그 사이 교육 공급 주체는 오히려 빠르게 늘었다는 점이다. 대학에 이스포츠 학과가 생겼고, 프로 구단이 아카데미를 열었고,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공급은 늘었는데 산업 지망생들은 어떤 것을 수강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며, 산업은 여전히 즉시 업무에 투입 가능한 인력의 인력난을 호소한다. 이 간극이 지금 한국 이스포츠 교육 지형을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지형도: 네 개의 트랙, 서로 다른 동기
한국의 이스포츠 교육은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중요한 것은 각 트랙이 서로 다른 이유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 트랙 | 운영 주체 | 1차 동기 | 접근성 | 주 타깃 |
|---|---|---|---|---|
| 공공기관 아카데미 | 지자체·진흥원·협회 | 지역 정책 이행 | 저가·지역 한정 | 지역 청소년/일반 |
| 사설 아카데미 | 프로 구단·전문 업체 | 사업 다각화·브랜드 | 고가·수도권 편중 | 산업 취업 준비생, 프로 지망생 |
| 대학(학부) | 2·3년제 중심 | 학과 신설·정원 확보 | 중가·전국 | 고졸 진학자 |
| 대학원 | 종합대 산하 | 학술 연구 및 학위 수요 | 진입 장벽 높음 | 현업자·연구자 |
이 표에서 드러나는 첫 번째 사실은 명확하다. 네 트랙 중 어느 것도 "산업 수요에 맞춰 설계됐다"는 동기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4개의 기관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각자의 이해관계에서 출발했고, 그 이해관계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책으로 아카데미 혹은 교육기관을 설립했으며, 결과적으로 교육 시장이 형성됐다.
공공기관 아카데미: 정책이 만든 교실
정부의 지역 이스포츠 정책은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한 상설경기장 구축 사업에서 본격화됐다. 부산·광주·대전 3개소로 시작해 2024년 경남(진주)이 네 번째로 문을 열었다. 이스포츠 지역연고제 논의와 지역 리그 구상도 같은 정책 흐름 위에 있다.

지자체 아카데미는 이 인프라에 얹혀 있다. 구조는 대체로 이렇다. 지자체 → 산하 정보산업진흥원 등 유관 기관 → 외주 운영사(협회·교육업체) → 지역 경기장 활용. 이 과정에서 한국이스포츠협회가 커리큘럼이나 운영에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점은 분명하다. 지역 학생 입장에서 이스포츠 교육을 실비에 가까운 가격으로 받을 수 있고, 실제 경기장 시설을 쓸 수 있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 접근성 격차를 메우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그러나 이에 반해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사업 목적이 '교육'이 아니라 '경기장 활용'과 '정책 실적'에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3년 발표한 지역 상설경기장 성과 연구에서 대전·부산·광주 경기장의 가동률이 각각 41%, 39.5%, 37.8% 수준으로 나타났고, 그 수치조차 대회가 아닌 행사·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것이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교육 프로그램이 가동률을 채우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구조라면, 커리큘럼의 질보다 개설 횟수와 수료 인원이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연차 사업의 특성상 커리큘럼이 축적되지 않는다. 매년 사업이 재공고되고 운영사가 바뀌면, 전년도 교안과 강사 풀은 사라진다. 셋째, 기관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수료증의 경우, 산업 내에서 큰 의미를 갖지 않으며, 유의미하게 기능하지 않는다.
사설 아카데미: 구단 브랜드가 곧 커리큘럼
사설 영역은 크게 ① 프로 지망(육성), ② 산업 취업, ③ 취미로 나뉜다. 취미반은 사실상 모든 사업자가 운영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산업 취업을 겨냥한 '이스포츠 산업 아카데미' 영역이며, 여기서 무게감 있게 아카데미 사업을 전개 중인 곳은 농심, 젠지, T1, DRX 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세 구단이 같은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전략을 택했다는 것이다.
젠지 —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 중. Gen.G Practicum 등 해외 사업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한국 이스포츠의 방법론 자체를 교육 상품으로 패키징해 해외 수요에 파는 모델이다. 국내 취업 시장 규모의 한계를 국외 수요로 우회한다는 점에서 가장 확장성이 큰 접근이다.
농심 — 제도권 연계형. 국내 정부·공공기관 과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며, 동양대 등 대학과의 MOU로 제도권 안에 발을 걸치고 있다. 안정적인 재원과 학력·학점이라는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신, 사업의 속도와 유연성은 정책 사이클에 묶인다.
T1 — 브랜드 프리미엄형. 커리큘럼의 차별점보다 기업 이미지 자체가 가격을 정당화하는 구조에 가깝다. 브랜드 파워가 가장 강한 구단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이지만, 동시에 교육 성과가 브랜드 기대치에 못 미칠 때 리스크가 가장 큰 모델이기도 하다.
DRX는 후발 주자로, 아직 뚜렷한 노선이 잡히지 않은 단계로 보인다.
공통된 문제는 가격이다. 전반적인 수강료가 높게 형성돼 있는데, 이는 산업 진입 이후 기대할 수 있는 초임 수준과 비교하면 투자 대비 회수 기간이 상당히 길다는 뜻이다. 구단 아카데미는 브랜드와 현업 네트워크라는 강력한 자산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채용 보장이나 검증된 취업률로 환산되지 않는 한 가격 정당화는 계속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대학: 전문대는 도입 완료, 4년제는 갈길 멀어
한국 대학 시스템을 모르면 이 대목은 오독하기 쉽다. 4년제는 학문 중심의 정통 트랙이고, 2·3년제 전문대는 취업 중심의 실무 트랙이다. 현재 한국의 이스포츠 학부 교육은 압도적으로 2·3년제 전문대와 사이버대학교에 몰려 있다. 수도권 근방의 동양대학교, 남부의 호남대학교 정도가 일반 4년제 사례로 꼽히는 정도다.
이 편중은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한다.
긍정적으로 읽으면, 이스포츠 교육이 실무 중심 트랙에 자리 잡은 것은 산업 특성에 부합한다. 대회 운영, 방송 제작, 콘텐츠 기획은 이론보다 현장 숙련도가 지배하는 직무다. 실제로 호남대 e스포츠산업전공이 광주 이스포츠 경기장 운영사업에 참여하는 식으로, 대학이 공공 인프라와 결합해 실습 환경을 확보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금 지형에서 가장 건강한 접점 중 하나다.
부정적으로 읽으면, 학문적 정통성 확보가 지연된다. 일반 4년제 학과의 부재는 곧 ▲전임 교원 자리의 부족 ▲연구 축적 기반의 부재 ▲산업 인접 학문(스포츠경영, 미디어, 데이터, 엔터테인먼트 등)과의 융합 지연으로 이어진다. 더 냉정하게 보면, 학령인구 감소 국면에서 일부 학과 신설은 산업 수요보다 정원 확보라는 대학 측 동기에서 출발한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 경우 입학 정원은 채워지지만 졸업 후 진로는 담보되지 않는다.
대학원: 서열이 아닌 '관심의 지도'

대학원 영역은 학부와 완전히 다른 논리로 움직인다. 상위 대학–하위 대학이라는 서열 구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한다.
- 이스포츠 전용 학과를 둔 경우: 단국대(대학원 e스포츠학과 — 국내 최초 개설), 한국외대(글로벌스포츠산업 계열 기반 세부 트랙)
- 유관 학과 내부에서 이스포츠를 연구하는 경우: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외대 등 다수 — 체육학, 문화연구, 게임학, 미디어학 안에서 개별 연구자 단위로 진행
여기서 한국 이스포츠 학술 생태계의 핵심적 특징이 드러난다. 연구 인력은 이미 최상위권 대학에 분산돼 존재하지만, 그들을 담을 제도적 그릇(전용 학과·학회·저널)은 중위권 대학에 있다. 연구자는 있는데 소속될 곳이 없고, 학과는 있는데 연구 역량이 집중되지 않는 엇갈림이다.
이 구조는 결과적으로 산업이 참조할 만한 한국어 데이터와 이론이 축적되지 않는 문제로 이어진다. 시장 규모 추정, 팬 행동 연구, 스폰서십 효과 측정 같은 산업 실무에 직결되는 연구가 산발적으로만 생산된다.
진단: 세 축은 왜 만나지 않는가
지형을 다 훑고 나면 문제의 실체가 보인다. 한국 이스포츠 교육의 문제는 "부족하다"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첫째, 자격의 호환이 없다. 공공 아카데미 수료증은 대학 학점으로 인정되지 않고, 구단 아카데미 이수 경력은 채용 시 정형화된 가점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대학 이스포츠 학과 졸업장은 현업에서 별도의 검증을 요구받는다. 세 트랙 모두 자기 완결적으로 끝나고,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간혹 아카데미 등지에서 민간 자격증 등을 신설함으로써 이러한 간극을 해결하려는 시도 또한 있었으나, 실질적인 취업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둘째, 직무 표준이 부족하다. "이스포츠 산업 인재"가 무엇을 할 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산업 차원의 합의가 없다. 지도자·심판 등 경기 운영 직군에는 협회 자격 체계와 문체부 지정 양성기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마케팅·세일즈·파트너십·콘텐츠 등 비즈니스 직군에는 대응하는 표준이 없다. 표준이 부족하니 커리큘럼은 각 기관의 사정에 맞춰 설계되고, 채용 측은 교육 이력을 신뢰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채용은 이스포츠라는 카테고리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능력, SNS 활용 능력, 디자인 능력 등 더 세부적인 직무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
셋째, 교원 풀이 얇다. 이스포츠 산업 실무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현업에 있다. 이들은 겸임·특강 형태로 여러 기관에 중복 투입된다. 네 개의 트랙이 사실상 같은 강사 풀을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 대학에 있는 교수진 또한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이스포츠 산업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대학의 이스포츠 교수진들은 상당수가 전통 스포츠, 마케팅 등의 분야가 주 전문 영역이다. 물론 그러한 전문적인 지식들이 이스포츠의 기초를 잡고 체계화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점점 이스포츠 산업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부분은 실제 이스포츠 산업의 현황과 간극이 발생하는 부분이다.
연결을 설계해야 할 시점
이스포츠 산업은 앞으로 산업 직무 표준의 정립, 즉 대회 운영, 콘텐츠·마케팅, 세일즈·파트너십, 방송 제작, 데이터 분석 등 주요 직무별로 필요 역량을 정의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협회 또는 진흥 기관이 주도하되, 반드시 현업 채용 담당자가 설계에 참여해야 실효성이 생긴다.
또한 트랙 간 인정 체계가 확립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 아카데미 이수 → 대학 학점 인정, 구단 아카데미 수료 → 인턴십 우선 배정 같은 최소한의 연결 고리부터 만들 수 있다. 구단 아카데미 수료 후 인턴십 과정은 다수의 아카데미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다수의 인턴십은 3~6개월 과정으로 직무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에 부족한 시간이다.
지역 트랙의 재설계 또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아카데미가 경기장 가동률 채우기용 프로그램에 머물지 않으려면, 연차 단위 사업이 아닌 다년 커리큘럼 축적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 대학과의 결합(호남대–광주 경기장 모델)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 이스포츠는 선수를 길러내는 데 있어서는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산업을 운영할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서는 아직 각자도생 단계에 있다.
교육 기관이 부족한 시기는 지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아카데미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트랙들을 서로 이어붙이는 설계다. 그 설계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 — 협회인지, 진흥 기관인지, 구단 연합인지 — 아니면 하나의 기관이 아닌 다수의 기관이 협력하여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 것인지, 향후 5년 한국 이스포츠 인력 구조를 결정할 것이다.
※ 본 글의 정책 사업 수치는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공개 자료를 참고했으며, 아카데미·대학 관련 서술은 업계 현황 관찰에 기반한 분석입니다.
※ 본 글에 오류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