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장's 에세이]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뮌헨 중앙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역 플랫폼 벤치에 앉아 그 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내가 나만의 사업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 둔 뒤,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팀의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났고, 당시 회사 사장으로 진급했던 우리 팀장은 다른 지점 일반 사원으로 좌천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뮌헨 기차역에서 만난 동료 또한 회사를 떠났으며, 뮌헨에서 문화 경영 관련 석사 과정 시험을 치르러 잠깐 들렸던 차에 내가 생각나서 연락을 준 것이라 말했다.
나보다 대략 10살정도 어린 그 친구는 이미 프랑크푸르트를 포함해서 3군데의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함부르크에서 공부하고 싶어서 아직 시험 일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평소 똑똑하고 사리분별이 분명한 친구라 어디서든 환영 받을 것을 알기에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나는 현제 진행하고 있는 문화 관련 협회 이야기를 전달하며, 우리가 함께 도모할 일이 있지 않겠느냐며 서로 힘을 실었다.
그래서,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거야? 라는 질문에 나는 그냥 무덤덤히
그냥 잘 진행되고 있어. 라고 대답했다.
웬지 더 많은 대답을 원하는 듯한 친구의 눈빛에,
하노버에서 진행중인 키즈까페 사업의 부동산 계약이 잘 완료되었다는 점과, 현제는 뮌헨의 대형 호텔에서 일을 배우면서 대기업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 실내악 피아니스트와 함께 한독 마스터클래스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의 까먹을 뻔 했지만 한독문화교류협회를 설립해서 여러가지 행사를 공동 주관 및 주최하고 있는 일 등등을 설명했다.
그런데 친구의 다음 질문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아? 평정심 유지를 어떻게 하는거야?
회사 다닐 때는 늘 불안했었는데, 지금 내 사업을 하면서는 매출이 고정적이지는 않아도 불안하지는 않아.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기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급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다시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내 삶을 내가 스스로 책임진다는 점이 무엇보다 나를 가장 만족스럽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 불안하지 않냐고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수익 보다는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결정권이 훨씬 더 간절했다.
이전 직장은 자폐인을 대상으로 하는 비영리 기관이었고, 정말 의미있고 보람되는 일이었지만 내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기에 한계가 너무나도 뚜렷했다. 무엇보다 시 보조금에 의존하는 운영기관이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자폐치료 지원금을 해마다 갱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부조리 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 물론 다른 동료의 경우에 비해 나는 사실 언제나 그랬듯 공무원 담당자 조차 운 좋게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외국인이라고, 독일어가 어설프다고 차별 받지 않냐고 질문들을 많이 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외국인 전문가가 독일 내에서도 생소한 자폐라는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공무원들의 업무에 필요한 서류 및 소견서를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의 업무 강도를 완화해 주는 역할을 했기에 나는 어디서나 남들이 기피하는 분야의 대체될 수 없는 전문가로서 환영 받았다. 한국인 특유의 빠른 일처리 또한 독일에서는 사랑받는 포인트다.
그리고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 보면, 자폐라는 분야가 워낙 특수 분야이기 때문에 좋은 전문 서적 몇권을 잘 골라 독학을 하고, 기관에서 운영하는 유료 세미나를 들으며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 하다 보면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큼의 전문 지식이나 스킬을 빠르게 익힐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아도 일반 상담 스킬은 이미 학문적으로 많이 연구가 되어 논문이라든가 학회라든가 그 분류가 방대하겠지만, 자폐라는 특수분야는 상대적으로 연구라든가 학술 자료가 적다. 따라서 적은 양을 학습해도 권위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이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가끔씩 모종의 세력싸움 같은 기싸움을 펼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학교라는 기관과 함께 일 할 때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겠지만 자폐인의 특성상, 정형화된 교육 방식이 때로는 폭력성으로 이어질 만큼 맞지 않는 케이스가 있다. 이런 경우 학교를 위해서도 또 나의 클라이언트를 위해서라도 전문가의 소견이 들어간 개별 맞춤 교육 방식을 따르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라는 개인의 주장이 학교라는 거대 기관과 교육정책이라는 국가가 미리 그려놓은 그림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전문가의 제안이라도 절대로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적어도 독일 일부 학교 기관에서는 그러했다. 게다가 지금 이민 정책으로 인해 독일어 교육도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자폐장애아들의 교육 다양성 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본디 이 뉴스레터가 비즈니스 에세이를 다루는 컨셉인데 내가 뜬금없이 자폐인 인권 발언을 굳이 한마디만 해 본다면.
만약 주변의 자폐인 중에 공격성을 보이는 이가 있다면, 그건 99% 확률로 자폐인의 개별성에 맞지 않는 거주 및 교육 환경의 요인이다. 실제로 나와 함께하는 2년 동안 단 한번도 그 어떠한 공격성도 보이지 않던 여자 아이가, 중학교로 진급을 하면서 대 소변을 못 가리고 사람을 물고 때리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또 반대로 처음 치료센터에 왔을 때에는 전혀 말을 하지 못하고 남의 손을 깨물던 아이가, 나중에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일반 학교에서 거의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물론 개인의 발달은 거의 운명에 가까워서 미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부모와 학교의 적극적인 정서적 지원이 있는 경우에만 개선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주변 환경의 개선을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인가?
누구도 처음부터 자폐 전문가로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학습하면서 전문적이고 개별적으로 적합한 기술들을 익혀 나가는 것이다. 자폐치료사 또한 클라이언트들의 개별 특성에 맞게 늘 최신 학술자료와 치료 기법들을 업그레이드 하지만, 부모님과 학교 또한 전문가를 초빙하여 상담을 받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특수 개별 학습 지도안을 세우고, 부모님은 집에서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규율과 규칙에 바탕을 둔 양육을 꾸준하고 일관되게 유지해 나가면서 그렇게 서로 유기적인 화합이 있어야 한다.
머물러 있는 모든 것은 도태된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기 때문이다.
9살에 자폐센터에 들어 온 친구가 12살이 된다면 더 이상 똑같은 치료 기법으로 다룰 수 없다.
사람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세상도 이와 마찬가지로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성장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독학력을 통해 머물러 있지 말고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진취적으로 성장해 나아간다면, 당신이 사업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분야와 국가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사랑받는 대체될 수 없는 개인으로 사회에 쓰임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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