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어느날 갑자기 남사장은 자신의 집 앞에 있는 건물에서 사무실 임대 간판을 보게 되었다.
여사장과 바로 얼마전에, 그것도 막연하게 부동산이 필요 하지 않겠나 했었던 것을 마치 건물에 인격이 있어서 알아들은 것 처럼 갑자기 사무실이 나왔다. 독일 부동산 앱에도 올라 오지 않은, 오직 오프라인으로만 확인 가능한 매물이었는데 .. 과연 우리와 잘 어울릴까?
[여사장]
'9시에 공식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게 참 오랜만이군.'
퇴직하고 자유로운 사업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던 나였기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하는게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져 버렸다.
요즘은 대부분 운동을 먼저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때문에 대부분 빨라야 오전 10시쯤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난 주, 오전 9시 게릴라 미팅이 몇 번 있었다.
남사장이 부동산 매물이 나왔다며 페이스톡을 걸었다.
물론 경우있는 남사장은 미리 약속시간을 공지했었다.
본래 부동산이나 건축물 보는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직접 남사장과 같이 하노버에서 매물을 보고 싶었으나, 내가 뮌헨에 거주하고 있는 관계로 * 뮌헨과 하노버는 고속열차로 대략 5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영상으로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흥분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상한 우연이 겹치면서, 예상치 못하게 남사장이 거주하고 있는 길 건너편 부촌의 매물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정한 예산 때문에 부촌의 건물들은 감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집 바로 건너편, 남사장의 말로는 정말 대문을 열고 나오면 마주치는 바로 그 건너편 건물에 전단지가 붙어있어 바로 연락을 넣었다고 한다.
아니 이게 사무실로 나왔다구?
일반 사람들이 꿈의 전원 하우스로 한번쯤 그려봤을 법한 아름다운 집 한채였다.
사무실을 만든다면, 사무용이 아닌 여러사람들이 오고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미리 사용목적을 밝히며 집주인에게 임대 의사를 물었다.
독일이 선진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인들이 가끔 착각을 하는데,
사실 사람 사는 곳을 모두 똑같다. 집주인들 중에는 사람이 많이 오고가는 업종을 반기는 경우가 있고, 또 사람에 따라서 *특히 시내 한복판의 노른자 사무집결지에는 사람 왔다갔다 하는걸 딱 싫어하는 집주인들도 있다.
건물상한다는 이유에서다. ㅎ 누가 옳고 누가 나쁜게 아니라, 집주인도 제각각이며 부동산의 특성상 그렇게 업종을 가려 받기도 하는 것이다.
성격은 급하고 머리 회전속도는 전반적으로 남사장에 비해 느린 나지만,
이 때만큼은 무슨 행복회로가 가동되었는지, 남사장이 보내 준 부동산 도면위에 나 혼자 형광펜으로 색을 칠하고, 어떤 가구를 들여놓을지 사무실 인테리어 견적을 내고 있었다. 이미 사무실에 들여놓을 커피 머신까지 혼자 아마존에서 검색하고 혼자서 거의 확정을 해 놓았다. * 사실 상 확정은 아니고 혼자 어디 다이어리 쓰듯이 커피 머신 사진도 캡쳐해 놓았다 ㅎ
[남사장]
뚜뚜뚜.
평소 전화보다는 이메일, 이메일 보다는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을 선호하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가차없이 전화를 계속 했다. 무심하게 통화 연결이 되지 않는 부동산. 평소였으면 인연이 없나보다 했겠지만 여기는 뭔가 나서서라도 보고 싶었다. 단순히 집 앞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뭐랄까? 뭔가 느낌이 왔다. 지금 보려고 하는 사무실의 입구는 다른 독일식 사무실과 다르게 웅장하고, 주차시설도 넓었지만 무엇보다 차 진입로가 있어 보이게(?) 되어 있었다. 잔디밭도 있으며, 겉으로 봤을 때 창도 넉넉하게 있어 보여 내부를 꼭 보고 싶었다.
결국 이메일까지 남겼던 덕에 사무실 방문 일자를 잡고 여사장은 온라인으로 나는 직접 방문해서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찾던 부동산보다 조금 비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단점을 찾기 어려웠다. 주인분도 호탕했고, 부동산 중개인도 멋쟁이고 친절했다.
거주용 집을 위해 부동산을 봤어도, 사무실 용도로는 생애 첫 매물이었는데 다 보는데 장장 1시간이 걸렸다. 부동산 자체는 금방 봤지만 어떤 사업을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등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 글 쓰는 시점으로 다음주에 부동산 사무실에 다시 만나서 여사장과 준비한 역제안을 해볼 생각이다.
한번 해보니 재미도 있고, 아쉬운 것도 있어서 이참에 부동산 여러 군데 연락해서 사무실 보러 다녔다.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 한복판에도 가고, 시내에서 살짝 빠지는 곳도 가보고 했는데 우리 집 앞 만큼 마음이 들지 않는다. 특히 부동산을 소개하는 직원의 태도에서 첫 사무실 주인과 중개인이 얼마나 친절했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마음은 집 앞 사무실에 거의 90% 들어갔다.ㅎ)
<독일 사무실을 구할 때 팁>
부동산 중개 앱을 통해 방문 일정을 잡는데, 꼭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임차인 입장에서 내건 조건에 먼저 부합한지 먼저 확인할 수 있으면 시간낭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조건이면 우리는 탈락이라 애당초 물건을 보러 갈 필요도 없었다.
- 아이들 방문은 안된다
- 고객방문이 거의 없는 직종을 선호한다
- 시끄러우면 안된다
- 주변이 거주지역이라 20시 이후에는 근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방문까지 다했고, 이야기 다 했는데 이런 소리 들으면 힘이 쭉 빠진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매달 돈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동산에 방문했다면 자세하게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실험 삼아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한 경우 (집 앞)와 준비 중이라고 하면서 말을 돌렸던 경우를 비교하면 상대방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졌다.
부동산 중개 앱을 통해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한 사무실은 화장실이 2개, 작은 부엌 1개가 있다고 했는데, 거짓말은 아니였으나 부엌 옆에 화장실이 있는 것은 약간 충격이었다. 부엌 옆에 있으면 어떠냐고? 화장실과 부엌의 입구가 다르면 모를까, 입구가 같다면? 부엌을 반드시 지나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다면? 부엌에 있는 사람과 화장실에 앉아 있는 사람의 거리가 1m 남짓이라면? ..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지금까지는 지식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여사장과 나의 역량과 아이디어에 외부요소인 부동산 한 숟갈을 넣으려고 하고 있다. 뭔가 마음이 찌릿찌릿하다. 설레이기도 하고, 뭔지 모르겠다. 형언할 수 없지만 그냥 잘 될 것 같다. 여사장이 알려준 대로 수익구조와 손익분기점을 계산했을 때는 안 하면 바보 아이템이라 못 먹어도 G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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