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실거래 파일럿 결과보고서를 읽읍시다
예금 토큰과 스테이블코인 중 무엇이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실제 생활 환경에서 예금 토큰을 대규모로 첫 실험했다는 점에서 한강 1차 실거래 파일럿 결과보고서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파일럿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여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덧붙이려고 한다.
파일럿은 크게 두 가지 활동으로 구성된다.
- 이용자들이 참가은행 앱에서 전자지갑을 개설하고, 자신의 예금을 예금 토큰으로 전환해 실제 물품 결제에 사용하는 과정.
- 예금 토큰을 활용해 디지털 바우처를 구매해보는 실험.
의미 있는 지표를 보면,
총 8.1만 개의 전자지갑이 개설되었고, 예금에서 예금 토큰으로 전환된 금액은 약 16.4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예금 토큰을 이용한 결제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참가은행 모바일 뱅킹 앱에서 전자지갑 개설.
- 이용자가 예금 일부를 예금 토큰으로 전환하면 예금이 차감되고, 동일 금액의 예금 토큰이 전자지갑에 발행(입금).
- 이용자는 전자지갑에서 QR 코드를 생성하고, 사용처는 단말기로 이를 스캔.
- 이용자 은행은 이용자의 전자지갑에서 거래 금액만큼 예금 토큰을 소각하고, 사용처 은행은 사용처 전자지갑에 해당 금액의 예금 토큰을 발행.
디지털 바우처의 경우 프로그래밍 기능을 통한 운영 효율성 향상이 핵심 포인트다.
기존 바우처는 사용 시 바우처 운영기관이 사후적으로 내역을 확인해야 하고, 가맹점도 별도 정산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면 디지털 바우처는 바우처 유통에 관여하는 기관들이 하나의 분산원장에서 거래 승인 및 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 사후 검증이 크게 단순해진다. 다만 파일럿에서 바우처 이용 금액은 약 6500만원으로 아직 규모는 크지 않다.
먼저, 한국은행과 상업은행들, 사용처 등 여러 기관이 참여해 대규모로 협력 실험을 진행했다는 점은 앞으로 어떤 형태의 디지털 자산이 자리 잡든 간에 의미 있는 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각 은행이 축적한 경험, 인프라, 사용자 피드백은 예금 토큰이든 스테이블코인이든 어느 쪽이 주류가 되더라도 활용 가능성이 있다.
또 디지털 바우처 파일럿을 통해 한국은행이 예금 토큰을 사용해도 충분히 프로그래밍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유스케이스가 얼마나 실용적일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릴 수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스테이블코인과 예금 토큰 모두 프로그래머블 머니의 장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UX 측면에서 여러 불편함이 제기됐는데, 한 독자분이 지적했던 것처럼 예금 토큰 결제 시 생체인식을 사용할 수 없고, 앱 실행부터 QR 생성까지 비밀번호를 여러 번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예금 토큰이 기존 은행 시스템과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기술적 제약 때문이라고 하며, 상용화된다면 비교적 쉽게 해결될 문제로 보인다.
또 보고서에는 예금 토큰의 인지도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금전적 유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예금 토큰이 꼭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있다. 내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 이용자가 결제할 때 사용하는 자금이 예금인지 예금 토큰인지 애초에 알 필요가 없어야 한다고 본다. 예금에서 예금 토큰으로의 전환은 훨씬 더 implicit해야 한다.
- 예금 토큰은 결제보다는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onramp·offramp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미 결제가 매우 편리한 한국에서 결제용으로 예금 토큰을 쓰기 위해 별도 금전적 인센티브까지 제공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JPMD로 보는 예금 토큰 사용법
이번 주 가장 화제가 된 뉴스는 JP Morgan 고객들이 자신의 은행 예금을 훨씬 쉽게 USDC로 교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배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JPMD는 JP Morgan의 예금 토큰이며, Kinexys가 실제 은행 예금과 JPMD 간 교환을 담당한다.
- 이번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JPMD가 Base에 직접 발행된다는 점이다. JP Morgan은 기업 고객의 Base 지갑으로 은행 내부 원장에서 곧바로 JPMD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 참여 기관에는 B2C2, Coinbase, Mastercard 등이 포함되며, 특히 B2C2가 Base 네트워크 내에서 JPMD ↔ USDC 교환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구조를 통해 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 기업 A는 공급업체 B에게 대금을 지급하려 하는데, A는 JP Morgan 고객이고 B는 USDC만 받기를 원한다.
- A는 JP Morgan에 요청해 자신의 은행 예금을 차감한 뒤 Base 지갑으로 JPMD 발행을 받는다.
- A는 B2C2를 통해 JPMD를 USDC로 교환한다.
- A는 교환한 USDC를 공급업체 B에게 전송한다.
- B2C2는 받은 JPMD를 다시 은행 예금으로 환급받거나, 다른 고객 유동성으로 활용한다.
이 모델의 핵심은 JPMD가 KYC가 완료된 퍼블릭 체인 지갑까지만 전달된다는 점이다. 이후 단계는 USDC로 전환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퍼블릭 체인에서의 확장적 위험이나 책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구조에서 JPMD는 USDC로 가는 onramp·offramp 역할을 수행하며, 개인적으로도 예금 토큰은 이 역할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은행들은 블록체인이 필요한가?
이전에도 예금 토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던 Omid Malekan이 이번에는 permissioned 블록체인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은행들이 과연 블록체인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아래는 그의 주요 주장들과 그 논거들이다.
- 은행은 실시간 결제를 위해 블록체인이 필요 없다: 실시간 결제는 기술적으로 오래전부터 가능했고,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 은행 사이의 국경 간 거래도 기술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규제, 자본, 유동성 문제이며, 실시간 결제는 오히려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은행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
- 은행의 레거시 시스템 통합에는 블록체인이 적합하지 않다: 이 문제는 trustless consensus가 필요한 유형이 아니고, permissioned 블록체인은 오히려 느린 DB와 불필요한 암호학적 오버헤드에 가깝다.
- permissioned 블록체인의 불변성·투명성·스마트컨트랙트는 실질적 의미가 없다: 누군가 명령하면 언제든 롤백이 가능하고, 스마트컨트랙트도 언제든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퍼블릭 체인 위에 올린 예금토큰(JPMD)도 특별할 것이 없다: 여전히 은행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고, 결국 기존 고객 간 실시간 결제를 퍼블릭 체인에 외주 준 것에 불과하다.
- 은행은 결제성 계좌에 높은 금리를 줄 생각이 없으며, 예금토큰에도 높은 금리를 줄 인센티브가 없다: 더 나아가 이미 낮은 리스크의 MMF 토큰 등 더 나은 대안도 존재한다.
일단 첫 번째 주장에는 100% 동의하고, 두 번째 주장 역시 실무 경험이 풍부한 글쓴이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본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약간 생각이 엇갈린다.
permissioned chain이라도 '서로 다른 기관들이 참여하는 경우'라면 DLT 솔루션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한강의 경우, 여러 은행과 바우처 운영기관, 사용처들이 하나의 분산원장을 공유하는 구조라고 봐야 할 텐데, 물론 이 컨소시엄이 함께 동의하면 언제든 롤백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처럼 서로 다른 원장을 대차·대조하는 방식보다 상대적으로 투명성(완전한 불변성은 아니더라도) 측면에서 이점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컨소시엄 DB가 꼭 ‘블록체인처럼 거래를 블록 단위로 묶고, 노드들이 이를 합의 알고리즘에 따라 재연산하며, 블록 헤더를 해시 체인 형태로 연결하는 구조’ 여야 하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현재로서는 퍼블릭 블록체인의 구조가 익숙하니 그 방식을 차용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굳이 필요한 기능이 아닌 요소들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섯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일부 동의하지만, 은행들이 퍼블릭 체인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는 JPMD 같은 모델이 일정 부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마지막 주장에 대해서는,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예금이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현실적 리스크를 느끼기 시작하면 인센티브 구조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다만 그게 얼마나 현실적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애초에 예금토큰은 예금의 원장 구조만 달라진 형태이기 때문에 더 많은 이자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일 수 있다. 파킹 통장이나 CMA 같은 비블록체인 대안도 이미 존재하니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많은 부분에서 Malekan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질문은 결국 “그냥 DB로도 되는 일을, 왜 굳이 블록체인 형태로 구현해야 하는가?” 로 이어지는 것 같고, 여기에는 블록체인이라는 버즈워드의 마케팅 목적과, 비트코인·이더리움에서 이어져 온 기존 블록체인 설계에 대한 관성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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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um
의도치 않게 편성된 특집 잘 읽었습니다 ^^ 한은 보고서도 봤지만 파일럿 단계가 아닌이상 사용자 입장에서 결제방식은 알빠 아니어야 한다는 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보고서에서 금전적 보상이 있어야 된다는 부분은 삼성페이를 키지않고 토큰을 쓰도록 할만큼 강력한 사료를 뿌려야한다는 뉘앙스처럼 느껴지기는 했는데, 뒷단에서 수수료없는 즉시정산을 제공하는 '계좌로 결제시 얼마 캐시백'과 같은 형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물론 한국은행이 0.x% 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런일을 해야하는건 아닙니다만 ㅋㅋㅋ 생각이 복잡해지네요
플레이버 by 모예드
맞습니다 이 뭔가 예금토큰을 위한 인센티브를 생각하다보면 배보다 배곱이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순 없어서.. 일단 2차 한강 파일럿을 한번 기다려보기도 하고, 또 스테이블코인과 예금토큰이 함꼐 존재하는 그림에서는 다를 수 있으니 한번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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