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 관한 짧은 낙서

너를 내 여자로 삶고 싶다

맞춤법의 유전학

2023.01.09 | 조회 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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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 관한 짧은 이야기

아주 사적이고 디테일한 에세이


예전에 같이 일했던 편집장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편집장 돼서 뭘 틀리는 꼴을 두고 못 보는 게 아니라고. 사실은 전후가 바뀐 거라고. 깊게 공감한다. 나도 그러니까. 글 쓰는 사람 중에서도 유독 그런 걸 가만 놔두지 못하는 성질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보통 그런 사람들이 편집자가 된다. 일종의 정체성 문제다.

그것의 연장선상이라기엔 뭐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맞춤법 파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수집이라고 무슨 거창한 건 아니다. 페이스북에 드립과 함께 몇 번 올렸더니 사람들 반응이 꽤 좋아서 시리즈처럼 굳어졌다. 제보도 많이 들어온다. 다들 내가 속에서 천불이 나서 몸부림치는 걸 은근히 즐기고 있는 듯하다.(임 모, 박 모가 제일 나쁘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런 맞춤법 연쇄 파괴범의 절대적인 다수가 남자라는 것이다. 여자들은 일단 틀리는 빈도가 확연히 낮기도 하고, 틀려봤자 ‘않/안’과 ‘되/돼’를 헷갈리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일상적으로 허용 가능한 범위라는 뜻이다. 이건 진짜 대한민국 언어 체계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다 싶은 경우까지는 아주 드물다. 그리고 여자들은 대체로 자기가 틀렸다는 걸 깨닫고 업그레이드하는 속도도 훨씬 빠르다는 게 포인트다.

실제로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연인에게 가장 떨어지는 순간이라는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다. 여기서반복적으로 맞춤법을 틀리는 700 명의 여성 응답 35% 2위를 기록했다. 항목의 응답자 비율을 보면 여성이 무려 82% 달한다. 남성 순위에는 비슷한 게 아예 있지도 않았다. 남자에게너를 처음 순간부터 여자 삶고 싶었다 공포체험 같은 고백을 받았다는, 듣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누군가의 실화가 떠오른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더니, 죄가 너무 무거워서 삶아 죽이는 팽형(烹刑)에 처하려 했나 보다. 아니면 새 여자 만나려고 구 여자를 삶아 죽이거나.

이 문제에 관해 나온 책도 있다. 제목이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이다. 언니도 누나도 엄마도 아닌 오빠저자가 쓴 기획 의도의 일부를 옮겨본다.

“지성미가 좔좔 흐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얘기를 ‘예기’라고, 원래를 ‘월래’라고, 나의 마음을 ‘나에 마음’이라고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이 작은 바람은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대체 왜, 쓴 너는 멀쩡한데 왜 보는 나는 이토록 부끄러운가. 걱정해 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덕분에 내가 낳은 감기들은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을까….”


내 경험으로 보면, ‘빻은 남자’에게는 대화 도중 단어 몇 개만으로도 알 수 있는 강력한 시그널이 존재한다. 열댓 명 모인 단톡방 같은 곳에서 보면 아주 명확하게 두드러지고, 그게 결국 태도와 직결되며, 커뮤니티를 박살내는 ‘빌런’이 되는 사례는 몇 번이나 겪었다. 눈치 없고 맥락 파악 못하고 ‘낄끼빠빠’가 절대 안 되는 부류. 악의는 없다 해도, 원래 집단에서 ‘악의를 실어나르는 악의 없는 숙주’가 더 무서운 법이다. 그 시그널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 맞춤법은 증거 치고도 꽤 신뢰할 만한 증거 되겠다. 비참할 정도로 신기하게 맞아떨어진다. 너무 예상대로라서 예상 밖이라고 할까. 이런 사람들은 걸러도 된다고 하면 너무 극단적이겠지만, 자주 마주칠 사람들 같으면 최소한 마음의 준비는 할 필요가 있다.

이 땅의 의무교육과 문맹률, 고등교육률 같은 걸 감안하면 이런 차이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남녀의 인지적 차이라는 관점에서는 아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다. 책 같은 문화적 소비를 여자들이 월등히 많이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본질적으로 공감과 소통 능력의 차이에서 온다고 확신한다.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세심함이 부족하고, 자신의 언어가 눈앞의 상대와 어떻게 다른지 관심도 없고, 그 이질감의 원인을 궁금해 하지도 않으며, 그런 사람들끼리 몰려다니다가 아예 관성이 되어버리는 것.

자기교정의 기본 사양은 타인을 살피는 민감성이다. 맞춤법을 끝까지 거슬리게 틀리는 사람(=남자)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이게 결여돼 있다. 군대 문화 따위의 단순한 사회화 안에서 폭력적인 무심함과 둔감함이 몸에 배었다고 할까. 마치 종의 대표성이 결여된 집단유전이 이루어진 것처럼, 대량생산되듯 표준 규격화가 된 것이다.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을 또 쓰자면, 일종의 ‘혈연적 유사성’이자 ‘유전적 표현형’인 셈이다. 나름 오랜 세월 쌓인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말이니 믿어도 된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지금도 테이블에 있는 남자 무리의 대화를 들으면서, ‘ 땅에서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적응한 남자들 전형성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내가 그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짜증과 혐오와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행여나 내가 인간들과 조금이라도 비슷해지는 순간이 올까 싶은, 타인은 모른다 해도 스스로 느끼는 순간이 닥칠까 싶은 두려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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