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라디오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향기 없는 꽃이라도 피어나도록

2023.01.06 | 조회 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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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 관한 짧은 이야기

아주 사적이고 디테일한 에세이

그저께 사랑 노래 이야기를 한 김에 하나 더 해야겠다. 싱어송라이터 양양의 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다. 타이틀은 ‘사랑은 정답, 정답은 사랑’이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뻗어나온 테마로 만든 공연이다. 벌써 십 년 가까이 된 일이다.

(공연은 흥행은 성공했고, 내용은 처절하게 망했다. 다시 떠올리니 모니터에 머리를 처박고 싶어지는 흑역사라 자세한 얘기는 안 하겠다.)

아무튼, 양양에게 <오! 사랑이여>를 부르기 전에 한강의 에세이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의 한 대목을 낭독해달라고 부탁했다.

“사랑이 아니면" 하고 마흐무드는 중얼거렸다.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야.”

네 살 때 이스라엘군에게 고향을 잃은 뒤 청년 시절에 두 번 투옥되어 4년간의 옥살이를 했던, 그 뒤로 10여 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덧붙여 말했다.

“사랑 없이는 고통뿐이라구.”

“하지만 때로는 하고 나는 반문했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나요?

마흐무드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지. 그렇지 않아.”

그의 음성은 숙연했다.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그 말을 꺼내기까지 마흐무드의 눈앞을 스쳐간 여인들의 얼굴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그녀들과 보낸 시간, 나누었던 밀어, 무수한 입맞춤과 어루만짐을 모른다. 다만 그가 그 여인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때마다 순정을 다했으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사랑이여 내게로 마음 불태워주어라
향기 없는 꽃이라도 마음에 피어나게 하여라
폭풍 같이 몰아치고 간대도 기꺼이 너를 반겨 하겠어
사랑이여 마음의 바닥 그곳까지 닿아주어라

비어 있는 말라버린 딱딱해진 맘에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정하게 오라 사랑아
고독보다 가혹해도 아려도 쓸쓸하여도
견딜 없는 외로움이 결국엔 함께 온다 하여도

사랑 사랑 사랑 나는 너를 몰라도
사랑 사랑 사랑 너를 반겨 하겠어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참 명쾌하게 이야기하는 노래구나 싶다. 사랑이 무엇인지, 혹은 사랑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고. 양양의 담담하면서도 곧게 뻗는 목소리(혹자는 청양고추 같은 목소리라고 했다)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 사랑에 대한 태도, 혹은 마음가짐의 노래라고 할까.

2008년에 양양을 인터뷰했을 때도 우리는 막판에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참을 수 없는 게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사랑하고 싶어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요즘 작업실 벽에도 적어놓은 말이 ‘사랑이 정답, 정답은 사랑’이에요.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사랑이에요. 사랑이 정답이라고 밖에.”

“사랑 그 자체가 힘들어도?”

“네, 사랑이 힘들어도. 어쨌든 사랑은 정답. 지금 제가 말하는 사람은 좀 더 닫혀 있는 사랑을 얘기한 걸 수도 있어요. 남녀 간의 사랑 같은. 둘 밖에 나눌 수 없는 사랑, 마음. 사랑이 끝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못할 것 같고, 했을 때 힘든 걸 알면서도 그게 나에게 순간의 폭발적인 따뜻함과 마음의 안정과 행복감을 주는가를 생각하면 그래요.”


무언가를 의심없이 믿으며 직시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물들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확고한 눈빛이 이따금씩 떠오른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장밋빛 환상이 달려들어 눈에 콱콱 박히는 사랑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마흐무드의 말처럼사랑을 둘러싼 것들 행간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지독한 카오스로 다시 한 번 기꺼이 뛰어들겠다는 순수한 전의(戰意)도. 그건 가끔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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