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라디오

모기의 소멸

서글프지만 마지막이길

2024.10.30 | 조회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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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이고 디테일한 에세이

며칠 전에 작업실 들어와서 불을 켰다가, 천장에 예닐곱 개의 점 같은 게 찍혀 있는 걸 발견하고 기겁했다.

여기서 3월에 들어온 이후로 거미 외에 벌레를 본 적이 없다. 대체 어디로 들어온 걸까. 짚이는 건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하려고 현관문 열어뒀을 때인가.

알고 보니 예닐곱 마리가 아니었다. 이틀의 기나긴 전투 끝에 전기 모기채로 열한 마리를 사살했다. 농담이 아니다. 진짜로 ‘전투’라는 말이 아니면 형용이 안 될 만큼 처절했다. 모기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지금은 마지막 한 마리로 추정되는 개체와 힘겨운 싸움을 펼치고 있다. 제발 마지막이길 바란다.

작업실 벽에 붙은 작은 거미한테 괜히 타박했다. 니들이 일을 똑바로 했으면 이 지경이 됐겠냐.

 

***

 

가을 모기는 확실히 여름과 다르다. 

명이 끝나가는 시기라 그럴까. 눈에 띄게 움직임이 둔해진 게 보이는데, 숨지도 않고 무모하다 싶을 만큼 사람에게 정면으로, 집요하게 달려든다. 그 옛날 가미카제가 저랬을까 싶다. 혹은 인류를 위해 거인에게 몸을 던지는 조사병단 같기도 하다. 마지막 남은 저 모기는 리바이나 미카사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모습에서 사뭇 느와르적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진짜로 사람 같은 자아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왠지 서글퍼진다.

오히려 다시 못 볼 것이라면 아무렇지 않다. 순환주기가 있는 것의 소멸을 보는 것은 매번 서글프다. 해가 질 즈음이라든가, 계절이라든가. 해마다 열리는 페스티벌이 끝나고 천막이 하나씩 거둬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하나하나가 조용하지만 무정하게 변하고 있는 내 생의 계절이 겹쳐져서 그런 걸까. 매일 똑같이 돌아오는 것 같아도 결코 같지 않은 풍경일 테니까. 영원 같은 필멸일 테니까.

이제는 하다 하다 모기까지 그렇다. 모기도 소멸하는 것으로서 존중할 있을까. 죽여도 죽여도 기어나올 바퀴벌레한테는 그런 감정은 들겠지.

 

너의 일을 했고 나의 일을 했어
네가 태어난 내가 태어난 우린 생각지도 못했지
이런 악연으로 만나게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야 어떤 삶의 과정을 돌아와야
이렇게 마주하게 되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하면 세상은 미스테리야
나의 숙면을 위해 너를 납작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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