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피 웅덩이에 드러눕는 살인이 아니다. 어디론가 끌려들어가는 듯한 공허다. 누구나 애써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을 마미야는 집요하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야? 그런 것 말고. 너는 누구야? 아니, 그것도 말고. 너는 누구야?
‘나’는 큰 나무줄기에서 뻗고, 뻗고, 뻗고, 작은 나뭇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그럼 애초에 그 뿌리는 무엇일까. 그 물음의 끝에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선명하고 불쾌한 자유다.
내가 나를 결정한다고,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고, 아무리 큰소리를 친들 우리는 그 물음에 끝까지 답할 수 없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잘나든 못나든 예외가 없다. 그것은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덫과 같다.
<산책하는 침략자>가 <큐어>의 이십 년 뒤에 만들어진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전자를 먼저 보고 후자를 봤다면, 우리의 내면에서 무언가 훅 불어 꺼진 것처럼 날아가고 말았을지 모른다.
구로사와 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서로의 상(像)을 그려줄 수밖에 없다고. 서로 마찰해야 한다고. 나는 네가 아니구나, 하고 매 순간 느끼며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인간은 그렇게 시간을 만든다고.
그 사실에 절망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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