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구독자 님은 혹시 알고 계신가요? 방학 일기 숙제가 사라지고 있다는 걸요.
재작년 여름 한 신문이 요즘 초등학교의 방학 풍경을 전했습니다(중앙일보, 2024년 8월). 숙제의 대표 격이던 일기 쓰기가 "학생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줄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남은 숙제는 책 읽은 날짜에 표시하는 체크리스트나 학생이 스스로 정하는 '셀프 숙제'로 바뀌었고 아예 숙제를 내지 않는 학교도 많다고 합니다. 그땐 그런 변화가 놀라웠는데 지금은 어느새 일기 쓰기 숙제 없는 방학에 익숙해졌습니다. 아마 이번 여름 아이의 가방에도 일기장은 없었을 겁니다.
없앤 사람은 바로...
기사에서 제 눈길을 사로잡은 부분은 사라진 '이유'였습니다. "학생 때 일기 쓰기에 거부감을 느꼈던 세대가 교사가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같은 기사).
기억나시나요. 개학 전날 밤 몰아 쓰던 일기장. 기억나지 않는 날씨 칸을 앞에 두고 있지도 않은 하루를 지어내던 밤이요. 그렇게 방학마다 일기를 '당했던' 우리가 어른이 되었고 교단에 섰고 그 검사를 없앴습니다.
저는 이 선택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하루가 채점 대상이 되는 일, 아이의 속마음을 어른이 검사하는 일은 사라지는 게 맞습니다. 그러니 오늘 편지는 그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일기는, 없애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검사를 없앤 게 아니라 일기를 없앴다
그런데 일기가 사라진 자리를 돌아보니 조금 씁쓸합니다.
우리가 없애려던 것은 검사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라진 것은 자기를 쓰는 글, 일기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전부 검사받는 글쓰기뿐입니다. 생각해 볼까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글쓰기는 대부분 수행평가 안에 있습니다. 독후감도 감상문도 주제탐구 보고서도 점수가 되어 돌아옵니다. 쓰기 싫어도 안 쓸 수가 없는 글이지요. 쓰는 사람보다 평가 기준이 먼저 있는 글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검사를 없앤 게 아니라 일기를 없애고 검사만 남긴 결과가 된 것이지요.
일기왕이었던 사람의 증언
고백하자면 저는 일기에 대한 나쁜 추억보단 좋은 추억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릴 때 저는 '일기왕'이었습니다. 그건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저는 그 칭찬을 계속 듣고 싶어서 썼습니다. 내가 쓴 글을 선생님이 꼭 읽는다는 걸 알았고 칭찬받는 으쓱함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 그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니 조금 놀랐습니다. 거의 반성문에 가까웠거든요.
오늘 친구랑 싸웠다-내가 잘못했다-앞으로는 착한 친구가 되야겠다.
오늘은 숙제가 하기 싫어서 안했다-엄마한테 꾸중을 들었다-숙제는 꼭 해야하는 거니까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패턴이 읽혔거든요. 아홉 살짜리가 매일 밤 자기를 검열한 기록이 몇 권씩 남아 있는 이유. 검사는 그렇게 글을 오염시킵니다. 읽는 어른이 있는 한 아이는 어른이 좋아할 만한 나를 쓸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반성하고 다짐하는 아이가 그 시대의 착한 어린이상이었을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다음입니다. 그렇게 오염된 채로도 사실 그 시간은 저에게 좋은 것을 남겼습니다. 하루를 문장으로 바꿔 놓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오늘의 나를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감각도요. 반성문투의 문장 사이에서도 내 하루는 적힐 만한 것이라는 믿음이 자랐습니다. 글은 반성문이었지만 쓰는 행위는 저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하게 됩니다. 검사는 글을 망쳤지만 행위는 사람을 만들었다고요. 비유를 하자면 버려야 할 것은 목욕물이었습니다. 검사요. 그런데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렸습니다. 매일 자기를 문장으로 남겨 보는 행위까지 흘려보낸 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비어버린 자리를 가져간 것
그 비어버린 자리를 누가 가져갔을까요.
지난주 편지를 읽으셨다면 답을 아실 겁니다. 피드입니다.
아무도 일기를 시키지 않는 시대에도 아이의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 정밀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어디서 멈췄는지, 무엇을 몇 번 돌려봤는지까지요. 다만 쓰는 주체가 아이가 아닐 뿐입니다. 플랫폼이 아이의 하루를 대신 씁니다. 사생활을 지키려고 일기장을 없앤 세계에서 사생활은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지난주 저는 그 문제를 서술권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 앞장인 셈입니다. 아이가 자기를 서술하던 마지막 자리가 비었고 자동 기록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건 무서워 하거나 잔소리를 할 일이 아니라, 되돌려줄 일입니다.
검사받지 않는 한 칸
그래서 오늘의 제안은 일기 숙제를 되살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일주일에 검사받지 않는 자기 서술의 자리를 한 칸만 마련해 주면 좋겠습니다. 날짜 칸도 없고 분량도 없는 글. 무엇보다 아무도 검사하지 않는 글이요. 규칙은 하나면 됩니다. 아이가 읽어 달라고 내밀 때만 읽는 것.
생각의 숲의 합평 시간을 준비하면서 바라는 게 그것입니다. 아이가 자기 소설을 소리 내어 읽으면 동료 작가들의 말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 자리에는 점수가 없고 잘 쓴 순서도 없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움직였다"는 피드백이나, "이 다음이 궁금했다"와 같은 말이 오갈 뿐입니다.
검사와 반응은 다릅니다. 검사는 글을 기준에 맞추게 하고 반응은 다음 문장을 쓰고 싶게 합니다. 읽어 달라고 내민 글에만 반응이 닿는 것. 그게 저희가 지키고자 하는 순서입니다.

오늘은 아이 이야기 대신 부모님께 묻고 싶습니다.
어른인 당신은, 검사받지 않는 글을 마지막으로 언제 써보셨나요?
답장으로 들려주세요. 그 글이 무엇이었는지도요.
시즌을 닫으며
이 편지로 봄부터 이어 온 시즌 하나가 끝납니다. '질문의 소유권'이라는 이름으로 여섯 통을 부쳤습니다. "십 대가 쓴다"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발화 위치가 어디인지 보았습니다. "계속 쓰는 사람들"에서는 신동 서사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을 따라갔습니다.
기후 편에서 대비하는 사람과 살게 될 사람의 간격을 쟀고 학교 편에서 어른은 쓸 수 없는 교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난주 알고리즘 편에서는 위험의 진짜 이름이 중독이 아니라는 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모든 이야기의 가장 오래된 뿌리인 일기까지 왔습니다.
여섯 통을 관통한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는 누구의 것인가
다음 시즌은 이 모든 이야기를 살아낸 한 사람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시즌 내내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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