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생각의 숲 김혜원입니다.
십 대가 가장 오래 하루 여덟 시간씩 매일 살아내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학교입니다. 학교 장면은 지금 생각의 숲 2기 작가 여덟 명이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십 대의 삶이 가장 치열한 장소에서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을까요?
— 그런데 조금 다른 방향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어른들이 쓴 학교 소설 이야기부터요.
어른의 학교 소설, 그리고 빈 의자
학교를 다룬 좋은 소설은 이미 많습니다. 교실이라는 공간을, 그 안의 권력과 온도를 정교하게 그려낸 훌륭한 작품들이 서가에 꽂혀 있어요. 성장 소설, 청소년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독자층은 그보다 훨씬 넓지요. 저는 그 장르가 가진 특유의 느낌을 좋아해요. 그 책들을 아끼고, 우리 작가들에게도 권합니다.
다만 오래 읽다 보면 어떤 패턴이 보입니다. 어른이 학교를 쓸 때, 그 글은 구조적으로 회고가 됩니다. 이미 그 시간을 통과해 안전해진 자리에서 돌아보는 거지요. 그래서 서사가 비슷한 방향으로 기울어요. 이해할 수 없던 교사는 세월이 지나 뒤늦게 이해되고, 진행 중이던 관계에는 아련한 필터가 걸리고, 갈등은 교훈으로 정산되어 '성장'으로 마무리됩니다. 작가의 역량 문제가 아닙니다.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안전거리가 서사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뿐이에요.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러운 서사와 흐름은 이야기로서는 좋지만 어딘지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아직 결론을 모르니까요.
이해되지 않은 교사는 이해되지 않은 채로, 진행 중인 관계는 아련함 없이, 오늘의 갈등은 정산되지 않은 채로 페이지에 남습니다. 회고는 화해로 기울고, 현재형은 미해결을 견딥니다. 그리고 그 미해결이 문학적으로는 더 정직할 때가 있어요. 우리 안에 깊은 자국을 남기고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건 아무래도, 그런 날것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서가에는 의자가 하나 비어 있는 셈입니다. 지금 그 교실에 앉아 있는 사람이 쓴 자리요.

그 의자에 먼저 앉았던 사람들
이건 이론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빈 의자에 앉은 십 대들이 있었고, 그들이 쓴 책이 장르의 기점이 됐어요.
S.E. 힌튼은 열여섯에 『아웃사이더』(1967)를 쓰기 시작해 미국 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의 출발점을 만들었습니다. 10호에서 만난 그 작가지요. 힌튼이 밝힌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 실제 십 대의 삶을 반영하는 이야기를 원했다고, 정제된 버전이 아니라요. 코디 케플링어는 고3 교실에서, 열일곱에 『더프』(2010)를 썼습니다. 앨리스 오스먼은 열일곱에 첫 소설 『솔리테어』를 쓰고 열아홉에 출간했어요 — 『하트스토퍼』로 세계의 십 대들을 사로잡기 전의 일입니다.
세 사람의 출발점이 똑같다는 게 눈에 띕니다. 전부 "내가 읽고 싶은 게 없어서 썼다"에서 시작했다는 것.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부재에 대한 반응이었던 겁니다. 내 세계를 대신 써주는 책이 서가에 없다는 걸 알아챈 사람이, 그 빈자리를 자기 손으로 채웠습니다.
함께 읽어보기 - 그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의 책
1)『아웃사이더』 S.E. 힌튼 (문예출판사, 신소희 옮김) — 열여섯에 쓰기 시작한, 장르의 기점이 된 데뷔작
2)『하트스토퍼 1』 앨리스 오스먼 (위즈덤하우스, 박산호 옮김) — 열일곱에 『솔리테어』로 시작된 세계의 확장
3) 코디 케플링어의 『더프』는 아쉽게도 아직 국내 미출간이에요 — 영화 「더 더프」(2015)로 만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문학'과 '청소년이 쓴 문학'
여기서 하나를 구분하고 싶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문학'과 '청소년이 쓴 문학'은 다른 범주입니다. 전자는 어른이 청소년 독자를 향해 쓴 문학이고 — 지금 서가의 훌륭한 책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합니다 — 후자는 지금 그 시간을 사는 사람이 직접 쓴 문학이에요. 간극의 본질은 품질이 아니라 발화 위치입니다. 관찰과 회고로 재구성된 십 대와, 시차 없이 현재형으로 기록된 십 대.
우리나라에서 전자는 두텁고, 후자는 거의 비어 있습니다. 어른이 십 대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십 대가 자기를 위해 쓴 글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어요. 그럼 누가 쓸까요. 힌튼과 케플링어와 오스먼이 그랬듯 — 내 세계를 대신 써주는 책이 없다는 걸 인지한 청소년들이 우리나라에도 분명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생각의 숲이 하는 일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지금 학교를 살아내는 여덟 명의 작가가 각자의 교실을 현재형으로 쓰고 있어요. 지금은 시놉시스 단계입니다 — 어떤 교실을, 누구의 눈으로, 어디서부터 쓸지를 정하는 첫 동작이요. 빈 의자에 앉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셈인데, 벌써부터 어른인 저는 쓸 수 없는 문장의 예감들이 시놉시스 줄 사이에 보입니다.
출간 프로젝트는 그 현재형을 — 회고가 되어 부드러워지기 전에 — 책이라는 형태로 박제하고 싶습니다. 열여섯의 문장은 열여섯일 때만 쓸 수 있으니까요. 또한 확실한 건, 그 이야기는 작가로 사는 동안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귀한 자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심을 한 가지 생각
아이가 학교 이야기를 꺼낼 때, 우리는 혹시 어른의 회고 문법으로 듣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다 지나가", "그때가 좋을 때야" 대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오늘의 이야기를 현재형 그대로 들어본다면요.
답을 메일로 들려주셔도, 마음에만 담아두셔도 좋습니다.
다음 이야기 — 학교 밖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
학교가 십 대가 매일 살아내는 장소라면, 학교 밖에서 십 대가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피드 안입니다. SNS 안에서 관계를 배우는 첫 세대. 다음 호는 알고리즘 이야기예요 — 측정되고 규제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란 첫 세대가 직접 쓰는 내부 보고서에 대하여.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의 숲에서,
김혜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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