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안예지 원장입니다.
오늘 제목에 적힌 것처럼 아이가 영상을 틀어주지 않으면 밥을 안 먹어서 고민이라고 하시는 분들 중에, 처음부터 '밥 먹을 때 영상을 보여주면서 먹여야지'라고 생각하신 분은 없을 거예요.
분명 다 이유가 있었어요. 그날 따라 아이가 유독 안 먹었고, 반찬은 식어가고, 엄마는 이미 지쳐 있었고, 유튜브를 틀었더니 기적처럼 한 그릇을 비웠을 거예요. 그러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어느새 밥 먹을 땐 영상을 보는 걸로 세팅이 되었을 거고요.
오늘 저는 "영상을 끊는 법 5단계"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런 글은 이미 충분히 많으니까요. 대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상황을 보려고 해요.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먹이려고 했을까요?
"밥 잘 먹었어?"
한국 사람들은 "밥 먹었어?"를 만날 때 인사로, "밥 한 번 먹자"를 헤어질 때 인사로 쓰죠.
그러다 보니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어디서든 듣는 말이 있습니다. "찰떡이 오늘 밥 잘 먹었어?" 시부모님도, 친정 엄마도, 동네 이웃도 늘 이렇게 물어봐요. 여기서 솔직하게 잘 안 먹는 편이라고 대답하면 돌아오는 건 걱정 반, 평가 반인 얘기들입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밥 잘 먹이는 것 = 잘 키우는 것"이라는 공식 안에 들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단순히 영양이 걱정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닌지, 그 불안이 식탁 위에 늘 같이 앉아 있어요. 이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우리 사회가 그런 분위기인 거죠.
영상을 틀게 되는 진짜 순간을 떠올려보면, 아이가 안 먹어서가 아닙니다. 안 먹는 걸 내가 견딜 수가 없어서예요. 한 숟갈이라도 더 넣어야 할 것 같은 마음, 빈 그릇을 봐야 안심이 되는 마음. 그 마음이 영상을 틀어주게 만드는 거예요.
영상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면 어떨까요?
식탁에서 영상을 틀어주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영상 자체가 아니에요. "어떻게든 한 숟갈 더"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보조 수단 중 하나 입니다. 따라서 영상만 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영상을 껐더니 아이가 안 먹고, 안 먹으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결국 다시 틀고. 같은 자리를 맴돕니다.
바꿔야 하는 건 영상이 아니라, 식탁에서 내가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일인지도 몰라요.
"안 먹겠다고 하면 안 먹여도 된다고요?"
아동 식사 연구에서는 부모와 아이의 역할을 이렇게 안내합니다.

처음 들으면 좀 불안합니다.
"아이한테 맡기면 안 먹잖아요."
"과자만 먹겠다고 하면요?"
당연한 반응이에요. 저도 항상 이 원칙을 지키려고 마음속에 생각하지만 참 쉽지 않거든요.
이래도 될까, 혹시 나쁜 식습관을 심어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요.
그런데 이 원칙이 말하는 건 아이 마음대로 하게 두라는 게 아닙니다. 부모는 충분히 할 일을 합니다. 영양을 고려한 식단을 차리고, 일정한 시간에 식탁에 앉히고, 먹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요. 거기까지가 부모의 영역이에요.
대신, 그 접시를 앞에 두고 먹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역할은 아이에게 돌려주는 거예요.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눈물겨운(ㅠㅠ) 비행기 놀이를 하거나, 영상을 틀거나, "한 입만 더"를 열두 번 반복하는 건 사실 아이의 역할을 부모가 대신하는 거거든요.
사실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필요한 칼로리를 채우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태어날 때 그런 기능을 가지고 태어나죠. 배가 부르면 그만 먹고, 배가 고프면 먹는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적정량을 학습하고 올바른 식습관을 몸에 익힙니다. 사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 습관이 정말 중요합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이런 감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식사량 관리, 비만 관리, 대사증후군, 성인병 예방에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하거든요.

이 역할을 엄마가 대신한다면 이런 중요한 고유 영역을 금방 잃어버리게 돼요. 엄마는 나이대별 적정량 혹은 엄마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는 먹어야 할 것 같은 양을 다 채우고 싶어 해요. 사실 아이들마다 개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것으로는 아이가 지금 얼마나 배가 부른지 알기가 어려워요. 그럼 아이는 배가 불러도 꾸역꾸역 먹는 습관을 갖게 되고, 어느 정도로 배가 부르면 먹기를 그만두면 되는지 감각을 익히는 게 어려워집니다.
진짜 어려운 건 끄는 게 아니라 견디는 거예요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영상을 틀면 아이만 편한 게 아닙니다. 사실 엄마도 편해요. 영상을 보는 동안 아이는 조용히 먹고, 엄마도 밥을 먹을 수 있고, 숟가락을 던지는 것에 대응하지 않아도 되고, 잠깐이지만 긴장을 풀 수 있으니까요.
이게 꼭 나쁜 건가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하루 세 끼, 매 끼니를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며 먹이는 건 정말이지 힘든 일이에요. 저는 아이 밥태기 시기에는 밥 먹을 시간이 오는 게 조금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이와 먹이기 위한 지루한 싸움을 또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우리의 목표를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요.
"오늘 얼마나 먹었는지"가 아니라
"오늘 식탁에서 아이가 편안했는지"
매끼 그릇을 비우는 아이가 아니라, 배고프면 스스로 숟가락을 들고 배가 부르면 멈출 수 있는 아이로요. 그게 오늘 한 숟가락을 더 먹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거예요.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면 멈춰도 돼. 그건 네가 정하는 거야."
오래 걸려도 괜찮아요. 다시 영상을 틀어주는 날이 있어도 괜찮아요.
오늘 한 끼 영상을 틀어주고 적정량을 먹는 것보다, 적게 먹더라도 밥 먹는 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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