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불, 또 드라이버 망치려고 작정했나?
'넥스트 막스' 하자르를 콜업하면 안 되는 이유
잔드보르트에서 터져 나온 신예 이삭 하자르의 포디움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루키 시즌에, 여러가지 어려운 레이스 조건 속에서 거둔 3위는 단순한 운이 아닐것입니다. 레이스 내내 막스 베르스타펜과 근접한 페이스를 유지했고, 조지 러셀의 메르세데스를 완벽하게 막아냈습니다.
당시 랜도 노리스의 리타이어가 행운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하자르의 스피드와 안정감은 진짜였습니다.
이 엄청난 활약에 F1 언론들은 벌써 "2026년 레드불 시트의 주인이 하자르라며 노이즈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레드불 레이싱이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2000대 이후 생긴 수 많은 신생팀 중에 이렇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팀은 단연코 레드불 밖에 없습니다. 레드불은 제가 거주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음료 브랜드입니다. 따라서 레드불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더 클 수 밖에 없고, 지난 9월 9일 현지 ServusTV 채널에서 레드불 레이싱 20주년 특집방송을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방송은 니키 라우다 (Niki Lauda), 요헨 린트 (Jochen Rindt)와 같이 오스트리아인 월드 챔피언 이야기는 물론 레드불을 이 자리까지 오게 했던 세바스티안 베텔 (Sebastian Vettel)이나 막스 베르스타펜 이야기까지 빠질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제 이목을 집중 시킨건 유키 츠노다의 거취 문제였습니다. 알파타우리에서 2023년까지 유키를 지도했던 프란츠 토스트 (Franz Tost) 감독 또한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이 방송에 출연했었는데요. "유키는 분명히 탈랜트(재능)가 있지만 나와 수차례 이야기 했을때, 팀 동료보다 0.5초 이상 느리다면 시뮬레이터 안에 들어가 앉아있든, 데이터를 연구하든 해야할텐데 유키에게 그런 열성과 열심이 부족하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물론 토스트는 더이상 레드불과 관계가 없지만) 내년 유키의 자리는 없겠다는 확신마저 들었습니다.

알파타우리 F1 레이싱팀 총 감독이었던 프란트 토스트(우)
얼마전 레드불 레이싱의 모터스포츠 총 고문인 헬무트 마르코 마저 "이삭은 다르다"라며 이른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던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물론 레드불은 10월에 있을 멕시코 그랑프리까지 유키에게 시간을 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송 이 후 발표만 안했지 레드불은 내부적으로 이미 하자르의 콜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레드불의 '잔혹사', 왜 유망주들은 '막스의 무덤'으로 향했나?
하지만 저는 오늘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이삭 하자를 레드불로 콜업하는 건, 레드불이 지난 10년간 반복해 온 최악의 실수를 또다시 저지르는 꼴이라고 말입니다.
알렉산더 알본, 피에르 가슬리... 우리는 레드불 주니어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레드불 시트에 앉았다가 어떻게 커리어가 망가졌는지 똑똑히 봤습니다. 프로페셔널이라고는 하지만, 레드불의 시스템은 사실 잔인합니다. 유망주들을 일단 깊은 물에 던져놓고, 살아남는지 지켜보는 식이라서요. 당연히 대부분은 가라앉았습니다.
지금 상황도 똑같습니다. 레드불은 유키 츠노다를 제대로 평가할 "성적"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 애초에 그런 막스 옆에서 포디움이란 "성적"이 존재할 수나 있었을까요?
게다가 두 드라이버에게 대부분 같은 차량을 제공하는 타 컨스트럭터와 달리 레드불은 베르스타펜과 다른 사양의 차를 제공합니다. 막스와 비슷한 차량 스펙을 제공 받은게 지난 몬차 그랑프리가 처음이었습니다.
리암 로슨은 더 심했습니다. 고작 두 번의 기회를 받았을 뿐입니다. 이건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 그냥 '버티나 못 버티나' 시험해 본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로슨은 레드불로의 복귀를 꿈꾸지만 저는 꿈을 깨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피에르 가슬리는 레드불에서 알파타우리로 강등 당한 후 절치부심하여 알파타우리 팀에서 그랑프리 우승을 했습니다. 지금 하자르의 3위 보다 더 나은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콜업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레드불은 그런 팀입니다.

"하지만 하자르는 다르다고?" - 헬무트 마르코의 희망 일기
물론 하자르가 2026년에 합류하면 상황이 다를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자르 본인도 "2026년은 모든 팀에게 완전한 리셋이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고 말했죠. 일리는 있습니다. 새로운 규정은 '막스에게 맞춰진 차'라는 변명을 없애줄 테니까요.
하지만 하자르의 그런 생각은 꽤 순진한 생각입니다. 베르스타펜의 강점은 단순히 스피드가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자신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고, 차를 개발해 온 경험 그 자체죠. 막스라는 현존 최고의 옆에서 신인 드라이버가 자기 목소리를 내며 본인에 맞춰진 개발을 주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26년 1년은 어떨지 모르지만, 27년, 28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막스에게 맞는 차량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헬무트 마르코 고문이 "하자르는 다르다"고 말하는 건, 과거 로슨은 '정신력이 강해서', 츠노다는 '성숙해서' 괜찮을 거라던 레퍼토리의 재탕일 뿐입니다.
제 결론은 이겁니다: 하자르를 위해, 그리고 레드불을 위해
이삭 하자르가 레드불 주니어 시스템이 배출한 최고의 재능 중 하나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도 하자르가 레드불에 간다면 솔직히 기대는 하게 될겁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레드불로 승격해서 보여지는 결과가 적으면 그는 이제 F1 판을 떠나야 합니다. (빠르게 승진한 임원이나 고위 공직자가 일찍 퇴사한다는 것과 비유가 될까요...훗 🤪) 그에게 필요한 건 지금 당장의 레드불 시트가 아니라, 레이싱 불스에서 최소 1년, 혹은 2년 더 성장할 시간일지도요.
잔드보트에서의 포디움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지만, 최근 다른 유럽 그랑프리 성적만 보면 리암 로슨보다 앞도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하자르가 배워야 할 게 많다는 뜻입니다. 레드불 레이싱은 신인이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레드불이 끊임없이 드라이버를 바꾸는 이 '레드불식 뽑기'를 멈추는 겁니다. 설령 부진한 츠노다를 1년 더 안고 가더라도, 드라이버에게 안정적인 환경과 발전할 시간을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팀에게도 이득이니까요.
하자르를 향하는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도 "인스타그램 들여다보는 것보다 집에서 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이 영리한 신인에게, 레드불은 제대로 된 성장 기회를 줘야 합니다.
선수 '육성'에 두각을 보이는 팀이 레드불이지만, 이제는 육성된 유망주들이 너무 많아서 빨리 실험하고 내치기 바빠보입니다. 오늘은 '이삭 하자르가 그 희생양으로 버려질까' 라는 개인적인 걱정에서 시작된 테마로 글을 작성해봤습니다.

린드블라드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예전 뉴스레터 중 린드블라드 글을 읽어보세요 ⬇️
맥라렌의 '사이좋은 형제놀이'로 역대급 '노잼' 챔피언십?
2025년 포뮬러원은 맥라렌의 독주 시즌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맥라렌은 내일 펼쳐지는 아제르바이잔 GP에서 페라리보다 9포인트를 더 획득하면 2025년 시즌 컨스트럭터 챔피언 트로피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요즘 F1을 보면서 애매한 기분에 휩싸입니다. 역대급으로 치열해야 할 월드 챔피언 타이틀 경쟁이, 어째서 이렇게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지금 F1에는 맥라렌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모든 걸 망치고 있는 것일까요?

챔피언십이 아닌 '말 잘 듣는 형제 놀이'?
맥라렌은 두 드라이버 간의 경쟁을 최대한 공정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맥라렌의 이런 룰이 유난히 돋보여 "파파야 룰"이라는 명칭도 붙었습니다. 피아스트리와 노리스 역시 지금까진 팀의 철학을 충실히 따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상대를 이길 기회가 있어도 팀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이죠.
저는 사실 "파파야 룰"의 기본 포멧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찌됐던 F1은 개인의 스포츠고, 굳이 팀플레이를 묻는다면, 그건 두 드라이버와의 팀플레이가 아니라 최소 1000여명이 되는 엔지니어들과 메카닉들이 드라이버가 한 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공평한 기회를 2대의 차량으로 나누어서 부여하고,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두 개의 목숨을 가지고 매 그랑프리를 치뤄야 한다는 개념으로 "파파야 룰"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워낙 차량의 기술적 결함으로 인한 리타이어를 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이 와중에 지난 잔드보트에서 결함으로 인한 리타이어가 두 대나 있었죠;;) 한 대가 탈락하면 다른 한대로 우승하면 된다는 인식이 없어진게 사실이고 그래서 레이싱을 위한 팀 워크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몬차에서 벌어진 어색한 포지션 스왑(자리 바꾸기)에 대한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모든 걸 말해줍니다. 피아스트리는 퀄리파잉에서 노리스에게 슬립스트림(공기저항을 줄여주는 도움)을 제공하기도 했고, 레이스에서는 팀 오더에 순순히 따랐습니다. 과연 1987년의 넬슨 피케나 나이젤 만셀이, 1989년에 프로스트와 세나가 그런 요구를 받아들였을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팬들은 치열한 '전쟁'을 원한다: 세나 vs 프로스트, 해밀턴 vs 로즈버그
F1의 역사를 관통하는 팀내 경쟁을 떠올렸을 때 아직까지 팬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시즌들은 분명 있습니다. 아일톤 세나 vs 알랭 프로스트, 세바스티안 페텔 vs 마크 웨버, 루이스 해밀턴 vs 니코 로즈버그.
팀메이트라기 보다 가장 먼저 이겨야 하는 적으로 인식되기도 했는데, 이런 치열한 승리의 욕구는 좋든 싫든, 팬들의 기억에 가장 남는 것 같습니다.

"착하게 굴어, 더 이상 착하게 굴 시간이 없을 때까지"
물론 맥라렌의 이런 '평화 유지'가 심리적으로는 아주 흥미롭고, 두 드라이버를 장기적으로 붙잡아두려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짜피 컨스트럭터의 최대 임무는 좋은 차를 개발해 내어주고 컨스트럭터 우승을 차지하는 것일테니까요. 좋은 드라이버 2명을 소유하는 것은 컨스트럭터 입장에서 손해볼게 없습니다. 또, 막장 싸움 없이 깨끗한 스포츠 경쟁을 유지하는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시청하는 미성년 아이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에 팀 라디오에 바른말을 강요하는 FIA에게 박수치는 이들이 의외로 없었던 것을 기억해볼만 합니다. 팬들은 때로 인간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을 보기 위해 F1을 봅니다.
맥그리거가 출연한 영화 <로드 하우스>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착하게 굴어. 더 이상 착하게 굴 시간이 없을 때까지."
맥라렌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을 거의 확정했고, 드라이버 챔피언도 어차피 둘 중 한 명이 될 겁니다. 맥라렌의 두 드라이버의 경쟁이 시즌 중 자연스레 조기 종료된다면 모르지만, 지금 이 조화로운 분위기는 결국 시즌 마지막엔 망가질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맥라렌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목표를 달성하면 이제 두 드라이버의 경쟁의 불꽃이 튀도록 내버려 둬야 할겁니다. 둘 사이의 존중은 이제 충분히 보여줬다 생각합니다. 경쟁.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사랑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은 진짜 포뮬러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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