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프리 칼럼] - 2025 Monaco Grand Prix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팀플레이가 많아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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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펼쳐진 광경은 평소 우리가 알던 레이싱과는 다소 생소한 경기였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휠투휠(Wheel-to-wheel) 대결 대신, 노골적인 팀플레이가 경기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특정 드라이버 한 명을 돕는 수준을 넘어, 레이스 대열의 상당 부분을 의도적으로 느리게 만들어 전략적 이점을 강제로 얻어내려는 새로운 차원의 시도였습니다.
총 평부터 미리 말하자면, RB와 윌리엄스 그리고 러셀 덕분에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올 해 팀 전략이라는 집중해서 볼 만한 거리가 생겼다는 것은 분명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만, 다시 한번 생각한다면 이런 레파토리의 레이스를 두번, 세번 계속해서 보겠다는 말은 선뜻 하지 못하겠습니다.
F1에 이런 끈적한 팀플레이는 기존에는 흔하지 않은 장면이었습니다. 시즌 말미 팀의 메인 드라이버가 정해지고, 챔피언십을 위한 포인트 경쟁이 치열한 정도가 아니면 자제하던 레이서들과 레이싱 팀의 관행과 문화가 서서히 변곡점을 지나 다른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현상은 왜 최근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모나코 그랑프리 맞춤 전술 등장
이번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이러한 팀 전술은 여러 팀에 걸쳐 관찰되었습니다. 페라리의 카를로스 사인츠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며 후미 그룹을 제어하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드라이버 중 하나로 언급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속도 저하 전술이 과거 F1에서는 왜 드물었는지, 그리고 최근 들어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FIA가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눈을 의심한 로슨, 사인츠, 알본으로 이어지는 속도 조절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먼저 눈에 띈 것은 RB의 리암 로슨이었습니다. 9위로 달리던 로슨은 버츄얼 세프티 카(VSC) 상황이 종료된 후, 의도적으로 중위권 전체의 페이스를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덕분에 그의 팀 동료인 이삭 하자르는 5 LAP부터 18 LAP에 걸쳐 로슨보다 평균 약 4초나 빠른 랩페이스를 유지하며 손쉽게 두 번의 피트 스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윌리엄스 팀 또한 모나코의 기차놀이를 영리하게 이용했습니다. 9위-10위에 있던 사인츠와 알본, 두 명의 드라이버가 자리를 바꿔가며, 자신들의 실제 페이스보다 최대 6초까지 느린 랩타임으로 손 쉽게 후위 대열에 정체를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신개념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는데요.
바로, 보다 못한 메르세데스의 조지 러셀이 알렉산더 알본(윌리엄스)을 코스를 숏컷하면서 불법(?)으로 추월을 시도한 장면입니다. 이 과정에서 러셀의 팀 라디오 발언이 더 화제였는데 러셀은 이렇게라도 차라리 내가 페널티를 받겠다고 했고, 실제로 페널티가 주어졌습니다. 아래에서 영상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본의 느린 주행 속도 덕분(?)에 드라이브 스루 페널티 이 후 트랙에 복귀한 후에도 여전히 알본보다 앞선 순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꼼수에 꼼수로 맞대응한 것입니다.
극단적 팀플레이, 왜 하필 2025년인가?
그렇다면 왜 이런 극단적인 팀플레이가 하필 2025년에 와서야 이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일까요? 일각에서는 새로 도입된 2-Stop 의무 규정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론적으로는 단 한 번의 피트 스톱 윈도우만 확보하면 되었던 과거의 1-Stop 전략 레이스에서 팀 전술을 통해 순위를 지키기가 오히려 더 수월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모나코에서 이토록 노골적인 전략은 거의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현재 F1 차량의 특성입니다. 2017년 이후 도입된 넓고 무거워진 차체는 이미 악명 높은 모나코에서의 추월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걸 F1 팬이라면 모두 아실겁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요?
넓은 차체가 도입된 2017년 이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의 레이스당 평균 추월 횟수는 6.9회였습니다. 반면, 차체가 훨씬 작고 민첩했던 1998년부터 2004년 사이에는 이 수치가 평균 4.2회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2017년 이후 추월이 측정 가능할 정도로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에도 결코 모나코 레이스는 추월이 쉬운 코스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에도 팀 전술을 활용할 여지는 충분히 존재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왜 시도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지금의 넓은 차체가 도입된 이후에도 이러한 전략적 팀플레이는 늘 가능해왔지만 실행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대표적으로 2017년 모나코GP 에서 페라리는 키미 라이쾬넨과 세바스티안 베텔이 각각 1, 2번 그리드에서 출발하는 최상의 상황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페라리는 2025년 윌리엄스가 보여준 것처럼, 베텔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춰 라이쾬넨에게 여유 있는 피트 스톱을 제공하고 이후 순서를 바꿔 또 다른 팀메이트의 피트스탑 시간을 벌어주는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진정한 경쟁의 레이스가 펼쳐졌습니다. 라이쾬넨이 이론상 유리한 언더컷 전략을 먼저 가져갔지만, 베텔은 이미 사용한 타이어로도 놀라운 페이스를 선보이며 오버컷으로 팀 동료를 추월, 순수한 드라이버의 역량과 팀의 영리한 전략이 어우러진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2019년 메르세데스가 원-투 피니시를 달성할때도, 2025년과 같은 팀 전술은 구사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말입니다.
물론 우승 경쟁권 팀의 우승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전략과, 미드필드 경쟁 중인 팀의 입장차를 단순비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깁니다.
결정적 이유는 시뮬레이션 기술의 발전입니다.
오늘날과 과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전략 시뮬레이션 능력의 비약적인 향상에 있습니다. 이제 F1 팀들은 특정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다른 차량과의 시간 격차(오버테이킹 델타)는 물론, 차량의 컨트롤이나 타이어 데미지를 즉각 계산해가며 얼마나 속도를 늦춰도 되는지, 얼만큼 푸싱을 하며 랩타임을 올릴수 있는지를 극도로 정교하게 계산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드라이버나 엔지니어의 '감'에 의존해야 했던 부분이 정확한 데이터와 예측으로 뒷받침되면서, 팀 전술 실행에 따르는 위험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입니다.
'델타 타임' 규정, 해법 될까?
이러한 의도적인 '전략적 지연 행위'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델타 타임', 즉 FIA가 지정하는 최대 허용 랩타임 규정의 도입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일정 랩 타임 아래로 더 느리게 달릴 수 없다는 설정을 해 두는 것입니다. 설정한 최소한의 기준 속도보다 현저히 느리게 주행하면 페널티 등이 따르겠죠.
예를 들어, 일요일 레이스 초반 선두권에서 1분 15초대의 페이스가 가능했다면, 최대 허용 랩타임을 1분 16초 정도로 설정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따릅니다.
1️⃣ 첫째, 모든 팀과 차량의 성능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상위권 팀들에게는 설정된 델타 타임이 여전히 약 1초 정도의 전술적 여유를 제공할 수 있는 반면, 중하위권 팀들은 이 델타 타임조차 맞추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2026년의 경우 많은 규정(Regulation)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팀 간의 기술 격차가 어떨지는 내년에 가 봐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2️⃣ 둘째, 델타 타임은 유동적이어야 합니다. 레이스가 진행됨에 따라 연료량이 줄어들고 타이어 상태가 변하면 차량의 잠재적인 최고 페이스 역시 계속해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정된 델타 타임이 아닌, 상황에 따라 변동하는 '롤링 델타 타임'이 필요하겠지만, 레이스 도중에 이를 즉각 반영해서 랩마다 다르고, 드라이버마다 다른 델타 타임을 제공하면서 현실적으로 공정하고 정확한 레이스 운영이 가능할까 싶습니다.
3️⃣ 레이싱의 기본 성격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칙을 규범하고 공정을 위한 시도는 물론 찬성하지만 어디까지나 레이스는 드라이버라는 사람이 하는 경쟁이고, 그 주체가 사라지면 의미와 스토리 모두 잃게 됩니다. 빠르고, 느리게 주행한다는 것은 드라이버가 스스로 결정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명제가 본질적인 레이스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 드라이버들이 주장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잼 서킷을 구출할 디자인 변경
결론적으로, 델타 타임 규정은 전술적인 감속을 다소 어렵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방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미 이번 대회 직 후 모나코 그랑프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움직임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추월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직선 구간을 포함하는 등의 트랙 구조 변경과 같은 변화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방향쪽 일부 고속도로 진입 구간을 연결할 수도 있겠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90년대 베네통 팀의 F1 드라이버이지 현재 사우디의 새로운 레이싱 서킷 디자인에 관여하고 있는 WurzDesign 팀의 알렉산더 부어츠는 "모나코 그랑프리의 전체 서킷의 캐릭터를 훼손하지 않고 유지하면서 몇가지 포인트만 변경하여 추월을 유도하거나 드라이버의 부담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트랙을 교정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디어가 괜찮은데 아래 부어츠의 개인 SNS에 올라온 영상을 확인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6년, F1의 결단이 필요하다
2025년 모나코 그랑프리를 기점으로 많은 전술적 변화가 예상되기는 합니다. F1은 역사적으로 팀 전술을 과도하게 펼치지 불문율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일어나는 팀 플레이에 대해서 지금까지 '크리틱'을 감수해야 했는데, 최근 들어 컨스트럭터들이 '팀플'을 하는데에 어떠한 거리낌이 없어보입니다. 뉴비 분들에게는 생소하실수 있겠지만 F1에서는 과거 (뿐만 아닌 현재도) 이러한 것이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한다고 느끼고 자제했기 때문인데요.
윌리엄스 바울스는 레이스 도중 메르세데스 토토에게 "미안해 형" 문자
재밌는 사실은 또 있습니다. 과거 메르세데스에서 토토 볼프와 함께 팀을 이끌다 윌리엄스 감독으로 이적한 제임스 바울스가 레이스 도중(!) 토토에게 문자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합니다.
다만 바울스 감독은 윌리엄스가 당시 상황 때문에 포인트 포지션의 커트라인을 지키기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이유를 밝혔다는데요. 이에 토토는 "나도 알아!!" 라며 짧게 답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어서 토토는 방송사 인터뷰에서 "RB가 먼저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바울스가 전략적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걸 알며,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화내는 짤은 지원님의 뉴스레터를 참고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바로가기 링크
FIA와 F1의 상업적 권리 소유자인 리버티 미디어는 다가오는 시즌을 앞두고 이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함께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F1 75년 역사의 가장 특별한 곳이고, 서두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2-Stop 규정으로 인한 '꿀잼' 모먼트는 분명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일회성으로 내년에도 이 같은 그림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가져다줄지는 모르겠습니다.
2026년에 도입될 신규 공기역학 규정이 추월을 다소 용이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과거의 데이터를 되짚어보면 차량 자체의 변화가 핵심적인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모나코 해변 그림을 보고있자니 친구들과 놀러갔던 때와 학생때 모나코로 2주간 알바를 갔던 일들도 생각이 났습니다. 음~ 모나코 냄새~👃
제프 베조스, 이정재 그리고 음바페 같은 최고의 재력가와 스타들이 총 출동하는 모나코 그랑프리. F1을 명분으로 사실상 전세계 '올해의 인물'들을 모두 만날 수 있기에 비즈니스와 네트워크적으로도 더 인기가 있는 곳입니다.
유서 깊은 그랑프리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궁금해집니다.
돌아오는 주말은 바르셀로나 그랑프리 Weekend 입니다. 특별한 소식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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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엔젤
노잼 모나코 해법으로 이젠 하다하다 델타타임까지 거론되는 것을 보니 ㅎㅎ 모나코가 어지간히 이번 투스탑으로 머리가 아픈가 봅니다. 델타타임이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포인트들 공감갑니다! 오늘 뉴스레터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닷 :) 제 뉴르세터도 링크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닷 제형님 :) 이번주 스페인도 재밌게 보시죠오 ㅎㅎ 저희도 조만간 말씀 나눠요!!!
포뮬러원 F1
엔젤님, 답글 감사합니다. 스페인 그랑프리 재밌게 보시고 재밌는 얘기 나누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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