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스님께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문득 그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그러다 『부생육기(浮生六記)』에서 연꽃과 차에 관한 기록을 만나게 되었다.
청나라 심복(沈復)이 쓴 이 책에는
일상의 작은 즐거움과 아내 운(芸)과 함께했던 시간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제2권 「한정기취(閒情記趣)」에는
연꽃과 차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나온다.
夏月荷花初開時,晚含而曉放,
하월 하화 초개시, 만함이 효방,
芸用小紗囊撮茶葉少許,置花心,
운용 소사낭 촬 다엽 소허, 치화심,
明早取出,烹天泉水泡之,香韻尤絕。
명조 취출, 팽 천천수 포지, 향운 우절.
여름에 연꽃이 막 피기 시작할 때,
저녁이면 꽃이 오므라들고 새벽이면 다시 피어난다.
아내 운은 작은 망 주머니에 차잎을 조금 넣어
꽃심에 두었다.
다음 날 아침 그것을 꺼내 차를 우렸는데
그 향과 운치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춘다.
연꽃과 차를 함께 끓인 것이 아니다.
차를 꽃 속에 맡겨 두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 것이다.
어쩌면 향기란
무언가를 억지로 얻으려 할 때보다
함께 머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사진도 그런 것이다.
나는 관곡지에 가면
연꽃을 예쁘게 찍어야 한다는 생각부터 하지 않는다.
상처 난 꽃도 바라보고,
빛이 사라져가는 꽃도 바라본다.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빛이 꽃잎에 머물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사진을 찍는 것을 잊을 때도 있다.
그때 알았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단지 빛이 아니었다.
내 마음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꽃 곁에 오래 머물다 보면
꽃을 바라보던 시간이
어느새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때 셔터를 누른다.
사진은 단순히 대상을 담는 일이 아니라
그 대상과 함께한 시간을 담는 일이다.
『부생육기』에서 운은
차잎을 연꽃의 꽃심에 맡겨 두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연꽃 앞에 나를 잠시 맡겨 둔다.

연꽃차 한 잔에는
꽃이 피고 오므라드는 시간,
차가 꽃 속에 머문 시간,
그리고 그것을 기다린 사람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오늘도 연꽃 앞에 선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일까.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잠시
그 꽃과 함께 있기 위해서일까.
나에게 관곡지 연꽃밭은
연꽃을 찍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잠시 숨구멍을 찾아
연꽃 곁에 나를 놓아두는 곳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당신에게 연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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