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숨 그리고 쉼

39번_ 우리 아버지(27)

아버지와 함께 보는 연꽃

2026.09.10 | 조회 68 |
2
|
from.
海印(해인)

 

박영신 교수님께서 전시장에 직접 오셔서

내게 건네주신 책,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책을 읽으려 펼친 것은 아니었다.

목차를 넘기고, 이곳저곳 책장을 넘기다가

 

일이 바쁠 텐데, 날래 가거라.”

 

바쁜데 빨리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

 

그 말 속에는 어쩌면

자식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음을 나는 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큰아들이 보고 싶다

어머니께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바쁠까 봐

그 말씀을 전하지 않으셨다.

 

새봄이 찾아오던 날, 뵈러 가겠다 약속했건만

그날 새벽 아들조차 보지 못하시고

아버지는 홀로 길을 떠나셨다.

 

그때의 아버지는

치매로 기억도 많이 흐려지고

걷기도 어려워 휠체어를 타고 계셨다.

 

모시고 나가 마실 한 바퀴를 돌며

 

아버지, 좋으세요?”

 

하고 물으면

그래 좋다.”

 

짧게 대답하시곤 했다.

그럼 다음에 또 타요.”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몇 번 더 모시고 나가지도 못했다.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와 함께할 시간을

자꾸 뒤로 미루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조금만 덜 바빴다면,

조금만 더 아버지 곁에 머물렀다면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당신과 나의 인연이 얼마나 깊기에

당신과 함께하고 싶은 시간이

이토록 오래 마음에 남아 있을까요.

 

오늘 새벽,

관곡지로 가는 길이었다.

문득 아버지를 떠올렸다.

 

첨부 이미지

 

박영신 교수님의 책에서 만난

그 한 구절이

그때의 아버지를 다시 불러냈다.

 

사남매 자식들을 위해

평생 고생만 하시다 가신 농사꾼 아버지.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이승에서

연꽃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몸도 마음도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날아다니실 것만 같다.

 

나는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아버지를 상상한다.

 

오늘은 아버지가 먼저 고르신 꽃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아버지,

오늘은 어떤 연꽃이 보고 싶으세요?”

 

아버지는 이제

휠체어도 필요 없다.

 

마음껏 날아다니시다가

마음에 드는 연꽃 앞에

먼저 가 계시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 아들은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

아버지를 따라 빨리 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오늘은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부려본다.

 

아버지, 조금만 천천히 가세요.

저도 같이 가요.”

 

그리고 꿈속에서 보았던 그 연꽃을

아버지와 함께 바라보고 싶다.

 

아버지, 저 꽃 참 예쁘죠?”

 

첨부 이미지

 

아버지가 말씀만 해주신다면

내가 예쁜 꽃 하나 찾아

같이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싶다.

 

아버지가 이승에서

자주 보지 못하신 연꽃을

오늘은 아들과 함께 보시라고.

 

오늘 내가 담는 연꽃 사진 한 장에는

꽃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

 

첨부 이미지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과

늦게야 건네는 아들의 마음,

 

그리고 꿈속에서 다시 만난

아버지와 나란히 걸어가는 시간이

함께 담길 것 같다.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연꽃을 보러 간다.

 

글을 다시 고쳐 쓰는데

눈물이 자꾸 나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과 나의 인연이 얼마나 깊기에,

함께하지 못한 시간보다

함께하고 싶은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을까요.

 

한 달의 여름방학을 보내고

불경을 공부하는 팔십의 스승님께

지난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박영신 교수님의 책에서 만난 한 구절,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

관곡지에서 연꽃을 보며 떠올린 아버지,

그리고 다시 찾아온 그리움까지.

 

이야기를 들으신 스승님은

그날 수업 중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시다가

잠시 말을 멈추시고 눈시울을 적셨다.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자신만의 아버지가 있구나.

 

그래서 이 이야기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도

아직 떠나지 않은 아버지가

한 분  고요히 계신 것은 아닐까. 

 

어쩌면 오늘,

당신도 그 아버지와 함께

어딘가를 나란히 걷고 싶은 것은 아닐까.

 

당신에게 아버지는 무엇인가요?”

 

#아버지 #연꽃 #관곡지 #그리움 #아버지와함께 #해인

 

<海印의 사진 명상 편지>

 

빛은 마음을 밝히고,

숨은 몸을 깨우며,

쉼은 나를 본래의 자리로 이끈다.

 

이 편지에 답장하시면

작가가 직접 읽고 함께하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마음에

고요한 빛 한 줄기 머물기를.

 

海印 배상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빛.숨.쉼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그냥감사의 프로필 이미지

    그냥감사

    0
    1일 전

    저에게 생명을 주신 감사하신 존재이지요.

    ㄴ 답글 (1)

다른 뉴스레터

© 海印

올드 렌즈로 담은 일상의 사진으로 풀어가는 빛과 숨, 그리고 쉼의 이야기.

뉴스레터 문의dah3o@naver.com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대표번호: 070-8027-1409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