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숨 그리고 쉼

17번_ 관곡지 물왕수로 삼거리 벤치에 앉아서(5)

(잠시 만나고, 잠시 쉬고, 다시 각자의 길로)

2026.08.01 | 조회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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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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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곡지 연꽃 테마파크에서 양쪽 연밭 사이를 똑바로 걷다 보면, 물왕저수지에서 호조벌로 흘러오는 물왕수로(보통천) 옆길과 만나는 곳이 나온다.

 

수양버들이 그늘을 드리운 그 자리에 세 개의 벤치가 나란히 놓여 있다.

 

길의 모양은 마치 자처럼 생겼다.

 

그 길이 만나는 자리, 수양버들 그늘 아래에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벤치. 여름날이면 물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며칠 전부터 나는 사람들이 연꽃을 담느라 분주한 곳에서 조금 벗어나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앞에 펼쳐진 산과 연밭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때로는 눈앞의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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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차가 있어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으로 새벽 일찍 도착했다. 연밭을 한 바퀴 천천히 돌고,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풍경 속에 젊은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어르신들은 천천히 걸어온다.

 

그러다 힘이 들면 벤치에 앉는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잠시 한자리에 모인다.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습니까?”

 

어제 만났던 얼굴을 오늘 다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내일 또 봅시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나누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길을 향해 걸어간다.

 

가만히 바라보면 이곳의 세 벤치는 작은 터미널 같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길에서 와서 잠시 머물고,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쉰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각자의 길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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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어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이 앉아 있어야 비로소 그 벤치가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

 

사람의 인연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어디선가 와서 잠시 만나고,

말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간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어르신들이 떠난 뒤 나는 다시 혼자 벤치에 앉는다.

 

눈앞에는 연밭이 펼쳐져 있다.

연잎을 바라보고, 연꽃을 바라본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물 위에 피어난 연꽃을 바라보다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다.

 

연꽃은 진흙을 마다하지 않고, 물과 햇빛을 받아 꽃을 피운다.

 

그런데 나는 어떨까.

 

나는 아직도 누군가 무언가를 건네주면 괜찮습니다.” 하며 사양하곤 한다.

 

정말 괜찮아서일까.

자존심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일까.

 

혹은 아직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일까.

누군가했던 말이 떠오른다.

 

주면 고맙게 받으면 되지.”

 

참 단순한 말인데, 오늘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주는 마음도 마음이고, 받는 마음도 마음이다.

 

어쩌면 고맙게 받는 것 역시 상대의 마음을 받아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잠시 만난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길을 간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잠시 만나고, 잠시 쉬고, 다시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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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바라본다.

진흙을 떠나지 않고도 맑은 꽃을 피운다.

 

사람도 살아온 흔적을 버리고서야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을 품은 채 조금씩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지나가던 진사님 한 분이 말을 건넨다.

 

오늘 사진 많이 찍었습니까?”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오늘은 이곳에 앉아 쉬고 있습니다.”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아도 좋다.

오늘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제와 본 산이고,

어제와 본 연밭이고,

어제와 본 벤치인데

 

조금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이다.

 

어쩌면 내가 사진을 찍으러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나를 바라보러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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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왔다가 떠나고, 바람이 머물다 지나가고, 연꽃은 피었다가 진다.

 

나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잠시 쉬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간다.

 

오늘 나는, 아니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관곡지 #사진명상 #삶의성찰 #연꽃이야기 #명상하는사진사해인

 

 

<海印의 사진 명상 편지>

 

빛은 마음을 밝히고,

숨은 몸을 깨우며,

쉼은 나를 본래의 자리로 이끈다.

 

이 편지에 답장하시면

작가가 직접 읽고 함께하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마음에

고요한 빛 한 줄기 머물기를.

 

海印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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