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뉴스레터(구한말 조선 지식인의 선택과 '친일': ‘윤치호 일기’ 중에서, 2026-08-22)에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이 무서운 위세를 떨치는 미국에서도” 살기 싫다는 윤치호 일기의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윤치호는 이미 3년 전인 1890년 2월 14일 자 일기에서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Nothing seems to me more absurd and foolish for anyone than to be deceived by the boastful pretensions of the Americans to ‘the inalienable right’ of liberty of man. Their orators, preachers, poets and statesmen talk much about the equality, liberty and fraternity of men. But in practice the Americans have shown that their doctrine of equality etc. etc. is only skin deep. That is if you want to enjoy the so-called inalienable right of man in this ‘Land of Freedom’ you must be white.”
번역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미국인들이 소위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중에는 ‘인간의 자유’가 있다고 떠벌리는 것에 현혹되는 것보다 더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 미국의 웅변가, 목사, 시인, 정치가들은 인간의 평등과 자유와 박애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상은 미국인들이 말하는 평등의 원칙이란 지극히 피상적인 것(피부 색깔에 의해 좌우되는 것)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른바 이 ‘자유의 나라’에서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누리고 싶다면 백인이어야 한다.”
[평등의 교리가 ‘skin deep’하다고 하는 부분에서 윤치호는 ‘skin deep’의 관용적 의미인 ‘피상적인’이라는 뜻과 ‘피부(skin)’라는 문자적 의미를 중첩시키는 언어유희(pun)를 구사합니다. 이런 pun을 구사할 정도로 윤치호의 영어는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윤치호는 미국에서 거의 6년 동안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인종차별을 온몸으로 겪습니다. 더구나 그가 다닌 밴더빌트 대학과 에모리 대학은 미국에서도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에 있습니다. 에모리 대학이 있는 애틀랜타는 남북전쟁(1861-1865) 동안 남부군의 수도였습니다.
그는 이어서 미국에서 인종차별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열거합니다.
“The persecution of the Chinese in the West, the treatment of the Negro in the South, and the dealing with the Indian by the whole nation are fair commentaries on the bragged about ‘American doctrine’ of the ‘inalienable right of man’.”
“서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박해, 남부에서 흑인들이 받는 대우, 그리고 나라 전체가 인디언을 대하는 방식은 그들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않는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미국의 교리’가 실제로는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마지막 문장이 압권입니다.
“I do not blame, for a moment, the national or racial prejudice of the Americans. But I do blame the perfect inconsistency between their acts full of the basest prejudice and their doctrine full of the loftiest and never to be realized catholicity.”
“나는 미국인들의 민족적 또는 인종적 편견 그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비난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가장 비열한 편견으로 가득 찬 그들의 실제 행동과,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고상하면서도 결코 실현될 가망성이 없는 보편주의를 내세우는 그들의 교리 사이에 존재하는 완벽한 모순이다.”
이 마지막 문장에서 윤치호는 조선 사람 최초로 인종주의 즉,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인종차별주의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역시 미국의 고등교육을 받고 미국 사회를 경험하면서 당시 세계를 휩쓸던 사회 진화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비판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 평등, 박애 등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마치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듯 떠들어 대는 미국인들의 위선입니다.

이제 윤치호가 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이 무서운 위세를 떨치는 미국에서도” 살기 싫고 왜 일본을 “동양의 낙원이여! 세계의 정원이여!”라면서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도 일본도 윤치호가 꿈꾸는 ‘부국강병’에 성공한 근대 국가들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백인들의 나라입니다. 자신과 같은 조선 사람, 동양 사람을 차별합니다. 반면 일본은 최소한 조선 사람에 대한 인종차별은 하지 않습니다. 같은 동양인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지식인들과 지도층은 인종주의와 사회진화론을 일찍 받아들이고 이해합니다. 이미 에도 막부 말기부터 수없이 많은 유학생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사회진화론의 세례를 받습니다. 일본이 ‘흥아회(興亞會)’를 만들어 이동인, 김옥균, 윤웅렬 등 최초로 일본에 건너간 인물들을 모두 초대하여 일본의 지식인들과 지도층은 물론 하여장, 황준헌 등 일본에 상주하는 청국 외교관들, 유학생과 교류하게 한 이유입니다. 백인들의 서구 열강에 대항할 ‘동양’, ‘동아’, ‘대동아’의 인종주의적 정체성을 불어넣고자 한 것입니다.
윤치호는 조선 사람 중 가장 먼저 인종주의를 받아들입니다. 그가 ‘친일개화파’가 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누구보다도 영어를 잘했고 미국에 지인들도 많고 인적 네트웍도 많았던 그가 ‘한일합방’ 이후에도 미국으로 망명 하지 않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일제 치하에서 살았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종차별을 겪어본 사람에게는 그처럼 굴욕적인 것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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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제 세딸이 독일에서 무료로 공부했고 하나는 거기서 사업을 잘하고 있어 완전 친독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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