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11월 5일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閔氏, 1872년 11월 8일 ~ 1904년 10월 23일)가 승하한다. 순명효황후는 민태호(閔台鎬, 1834년~1884년 10월 18일)의 딸이자 민영익(閔泳翊, 1860년 ~ 1914년)의 여동생이다. 민태호는 1884년 갑신정변 때 경우궁에서 정변파에 의해 살해된다. 민영익은 갑신정변 당시 우정국 낙성식 중 정변파의 칼에 맞지만 호러스 알렌이 기적적으로 살려낸다. [한사만 III, pp. 34-47 참조]


그러나 순명효황후에게는 오빠 민영익에게와 같은 운이 따르지 않는다. 다음은 1904년 11월 6일자 ‘윤치호 일기’다.
Last night the Crown Princess died―or rather was compelled to die by the absurd custom of Korea which keeps doctors from a female patient. For a doctor to prognosticate correctly the condition and needs of a sick person by lightly touching the pulse at the wrist is more than medical science can boast. In case of a princess, nothing can be seen―even the hand is wrapped in silk―but a tiny space at the wrist. I have no doubts that a Foreign doctor would have saved her.
어젯밤 황태자비가 돌아가셨다. 아니, 의사들이 여성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게 하는 조선의 터무니없는 관습 때문에 죽음을 강요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손목의 맥을 가볍게 짚어보는 것만으로 환자의 상태와 필요한 치료를 정확하게 진단한다는 것은 의학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황태자비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보일 수 없었다. 심지어 손마저 비단으로 싸여 있고 손목의 아주 작은 부분만 드러내었을 뿐이다. 외국인 의사라면 황태자비를 살릴 수 있었으리라 확신한다.
The Princess has known no pleasure or happiness, conjugal or domestic. Who knows but that she died to be saved from national calamities which her father-in-law has done and is doing his best to bring upon his house and country?
황태자비는 부부 생활에서 든 가정 생활에서 든 어떠한 즐거움이나 행복도 누려보지 못했다. 어쩌면 시아버지가 자신의 왕실과 나라에 재앙을 내리고자 온갖 노력을 다해왔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라리 그런 꼴을 보지 말라고 죽은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Mr. Kim, one of the doctors who had been called in to see (?) the Princess, told me that there were 60-odd doctors to attend the case. None of them ever saw the patient. When a doctor made out a prescription, it was submitted to the criticism of the whole crowd. By the time they got through with the prescription, nothing was left of it but what was useless or harmless. Thus even a competent doctor had no chance to show his ability.
황태자비를 진찰하기 위해 궁으로 불려갔던 의사 가운데 한 사람인 김 씨가 내게 말하기를, 황태자비를 치료하기 위해 60여 명의 의사가 소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중 환자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의사가 처방전을 작성하면 그것을 의사들 전체가 검토하고 비판했다. 그들이 처방전을 이리저리 검토하고 고치는 일이 끝날 즈음이면, 거기에는 아무 효능도 없거나 무해한 약재들만 남았다. 따라서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When a royal personage gets sick in the palace, nothing saves him or her but providence or chance or fate.
궁궐에서 왕족이 병에 걸리면,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섭리나 우연, 혹은 운명뿐이다.
순명효황후는 친오빠 민영익이 알렌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1884년부터 20년 후인 1904년에 승하한다. 그러나 20년 동안 조선의 궁중 의술은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민영익을 구한 알렌의 요청으로 1885년 조선 최초의 서양 병원인 ‘광혜원’이 문을 열고 곧 이어 여성 전용 병원인 ‘보구여관’을 비롯한 근대 병원들이 개원 한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조선에 선사한 근대 의학의 가장 큰 수혜자들은 여성, 평민, 천민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고종이나 순종도 에이비슨(Oliver R. Avison, 어비신(魚丕信), 1860년 6월 30일 ~ 1956년 8월 29일)등 서양 의사들의 진료를 받는다. 그러나 궁중의 여성들은 서양 의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조선 의술’에 희생된다. ‘남녀유별’,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조선의 무서운 관습이 부른 비극이다.


이쯤 되니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 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들’에 기록한 사건이 생각난다.
달레 신부에 의하면 우발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외간 남자들이 손을 만졌을 경우 딸들은 아버지들 손에, 부인들은 남편들의 손에 죽었고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한 하녀가 자신이 모시는 젊은 아씨를 불길에서 구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죽도록 방치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묻자 불이 난 혼란 속에 어느 외간 남자가 자신의 아씨를 만졌고 따라서 살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사만 I권, p.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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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규
개방과 개혁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 하는데,당시 조선 여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일부 무슬림국가의 여성들을 떠오르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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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몬드봉봉
함재봉 교수님을 만나서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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