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코끝이 시린 계절입니다. 이런 날엔 유독 생각나는 것이 바로 따스한 차 한 잔이지요.
두 손으로 감싸며 느껴지는 찻잔의 온기, 한 모금씩 집중하며 마시는 고요함 속에 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차를 마시는 고요함은 오래전부터 '마음의 스승들'이 사랑해 온 순간입니다. 특히 명상가나 영성가 등 높은 영성지능을 가진 이들에게 차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깊이와 존재를 깨우는 의식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호린의 객원 에디터 영하님과 함께 합니다. 호린을 응원하는 찐팬이자, 무엇보다 차를 애정하는 영하님이 차를 통해 마음 근력을 키운 이야기와 차가 가진 특별한 힘에 관해 소개합니다!
구독자님, 이번 뉴스레터에는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1. 마음을 깨우는 한 잔, 나의 새벽 루틴
2. 영성가들의 공통된 습관: 이들은 왜 차를 마실까
3. 차의 특별한 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유하는 차의 효능
4. 명상에 어울리는 차: 나에게 맞는 차 찾기
매일 새벽, 내가 차를 마시게 된 이유
10년 전쯤이었을까요.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하고 소진된 느낌이 가득한 퇴근길, 우연히 티소믈리에 클래스라는 페이스북 광고에 이끌려 덜컥 등록했어요.
첫 수업 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컵에 찻잎을 흘리지 않게 넣고, 시간을 점검하면서 차를 우려내고, 차의 맛와 향을 표현하는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했어요. 이제 시작한 것 같은데 훌쩍 2시간이 지나가 있었지요. 무엇인가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순간이었습니다.
현재에 오롯이 집중한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어요. 내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희열이 올라왔습니다. 과거에 대한 복기도, 미래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지금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 바로 차와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찰나였어요.
사실 저는 늘 일과 육아로 시간에 쫓겨 허둥댔어요. 늦은 밤 멍하니 앉아 있으면 허무함이 몰려오고, 아침이 밝으면 어제와 비슷한 오늘의 빠듯한 일정을 쫓아가는 하루를 맞이했지요. 늘 그렇게 어제 같은 하루, 오늘 같은 매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늘 타인에게 시간이 점유된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것은 일찍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어요. 사실 불안함이 가득해질수록, 잠이 오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요.

어슴푸레하게 동이 트는 새벽 시간,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내었습니다. 차를 배우러 갔던 수업에서 느꼈던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는 시간’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사각사각 펜을 움직여 마음을 꺼내어 놓기도 하고, 지금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차를 가운데 두고 저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었어요.
차와 함께 한 새벽 시간과 사유의 기록들을 엮어 작년 말에는 ‘나의 새벽은 차 한잔으로 시작된다’라는 책도 출간하게 되었어요. 차와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지요.
차는 삶이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게 단단한 근력도 만들어 주었어요. 제 삶의 중심을 잡는 도구를 넘어 벗이 된 것이죠.
그런데 알고보니 저처럼 차를 특별히 애정하는 이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마음이 깊은 지혜로운 사람들, 종교인, 명상가 등 영성가들은 하나같이 차를 즐겨 마십니다.
이 맑은 찻물 안에 어떤 특별한 힘과 효능이 있는 것일까요? 호린 피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번 찾아보려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자 깨달음의 상징인 '물'
원래 '차'는 지금 중국 광둥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말이었다고 해요. 이 지역은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라서, 차나무가 자라는 데 적합했지만, 식수원이 되는 강물은 세균 번식이 쉬워서 마시기에는 부적합했어요.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차를 끓여서 마셨지요.
불교에서 차는 승려의 수행 도구였습니다. 달마대사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9년간 참선을 하던 달마대사는 졸음을 이기려 감기는 눈꺼풀을 잘라버렸는데, 잘라버린 눈꺼풀이 떨어진 곳에 자란 나무가 차나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제자들은 이를 달마대사의 분신이라 생각하고 소중히 키웠고, 어느 날 떨어진 잎사귀를 버리지 못해 끓여서 마셨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차는 수행자들의 정신을 맑게 하고 졸음을 떨치기 위해 마시는 수단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정작 부처님 시대에는 차가 없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명상과 차가 연결된 것은 송대 선불교 시대에 와서이고 오랜 전통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럼 그 이전의 영성가들은 어떤 것을 마셨을까요? 기독교의 수도사들은 와인을, 이슬람의 수행자들은 커피를, 힌두교 요기들은 허브차나 버터 차를 마셨습니다.
결국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하나'였어요.
모두 물에 무언가를 타서 마신 행위, 물을 통해 신성에 접속하려는 시도였던 것이지요.
즉 차 이전에 '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세례수, 불교의 정화수, 이슬람의 정결의 물. 모두 깨끗하게 하고, 되돌아가며, 다시 시작하는 정화와 회복의 상징입니다.
송대 다서(茶書) 『다경(茶經)』에서 ‘물은 차의 혼(魂)’으로 불리며, ‘좋은 차는 좋은 물에서 비롯된다’(水爲茶之母)라는 문장이 전해집니다. 차의 품질보다 물의 성질이 중요하다는 것인데요, 동서양 영성 전통에서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깨달음의 상징입니다. 결국 차의 본질은 물이고, 물은 나와 세상을 잇는 가장 오래된 언어인 것이지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가 말하는 차의 본질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우리가 흔히 ‘매일 있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뜻으로 쓰는 말입니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처럼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가리키죠.
그런데 호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명상가인 기율님은 이 문장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반(飯)이 단순한 밥이 아니라 사실은 ‘죽반(粥飯)’, 즉 죽을 의미하고, 다반(茶飯)은 죽처럼 묽게 덩어리진 차의 형태를 뜻한다는 것이죠.
“옛날에는 지금처럼 찻잎으로 맑게 우리는 차가 아니라 냄비에 물과 차 가루를 넣고 끓여서 마시는 전다법(煎茶法)이 널리 쓰였습니다. 이른 새벽, 밭으로 나가기 전에 아궁이 위에 올려놓은 냄비 속의 찻물은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죽처럼 걸쭉하게 졸아 있었습니다.
서민들에게 다반사는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몸을 데우고, 허기를 달래며, 비타민을 보충하는 실용적인 음료. 죽처럼 된 차를 마시며 “아, 오늘도 내가 살아 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이어졌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볼품없고 소박한 모습이지만, 저는 그렇게 죽처럼 덩어리진 차가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일정한 열기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진 차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는 시간이 우려낸 향과 맛뿐만 아니라, 차를 끓이고 마시는, 사람들의 땀과 먼지, 고단한 일상이 함께 담겨있으니까요.
차의 특별한 힘은 '특별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매일 마시는 물처럼, 밥을 먹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든 존재. 그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잠시 멈추고, 따뜻함을 느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일상다반사는 차의 본질이 화려한 의식이나 특별한 도구가 아니라, 매일의 소박한 반복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수많은 영성가와 명상가들이 차를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요? 영성도 명상도 일상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순간 속에서 자신을 만나는 것. 차는 바로 그 일상 속 작은 멈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던 거지요.”
차를 마실 때 뇌는 명상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차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요? 틱낫한 스님과 하버드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호흡 명상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25% 줄이고 전전두엽을 활성화해 감정 조절 능력을 높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차를 우려내는 의식을 반복했을 때도 비슷한 효과가 관찰됐습니다. 호흡 속도가 느려지고 뇌의 알파파가 증가하면서 이완 상태가 됩니다. 감각의 현재성을 깨우기도 하는데요. 차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모두를 깨웁니다.
잔 속에서 찻잎이 펼쳐지는 모양, 물소리, 향, 온기. 그 감각에 몰입할 때, 사람은 시간 밖으로 잠시 빠져나오죠. 과학적으로 이런 감각 집중은 전전두엽 활성화를 돕는다고 해요.
차에 들어 있는 L-테아닌 성분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아미노산으로, 신체적 각성과 정신적 이완을 동시에 돕는 대표적 성분이에요. L-테아닌이 뇌의 알파파를 증가시키고, 그 결과 차분하지만 깨어 있는 상태가 됩니다. 명상 중 나타나는 뇌파와 같은 패턴이지요.
차는 참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음식입니다. 찻잎 한가지로만 된 음식이자 음료이며 약으로서의 효능까지 갖춘 참 이로운 존재이지요. 차는 풀잎, 나뭇잎과 같은 식물일뿐이지만, 오롯한 찻잎 하나만으로도 완전한 식품이 됩니다.

차는 치우치지 않고 오미가 조화된 식물이지요. 차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한 기호의 행동이 아닙니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나를 닦고 깨닫고 지금 순간의 나로 보게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고요함에 나 자신을 두고 중심을 잡게 합니다.
저는 차를 마시면서 이 차가 저에게 오기까지의 여정을 떠올립니다.
‘지금 내가 마시는 차에 자연이 담겨 있구나, 차는 자연을 닮았구나, 그 차를 마시니 내가 자연과 함께 하는구나, 그 자연이 내 몸에 들어와 순환하고 있구나’하며 자연과 소통하게 됩니다. 차는 모든 것이 곧 모든 것과의 관계임을 알도록 깨우쳐주는 자연의 지혜를 담은 치유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상에 가장 도움되는 차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명상할 때 어떤 차를 마시면 좋을까요? 명상가들이 즐겨 마시는 차 중 하나는 말차입니다. 그 이유는 차 속에 들어 있는 L-테아닌 성분이 가장 풍부하기 때문이죠.
테아닌이 많을수록 몸은 이완되고, 의식은 또렷해집니다. 즉, 명상에 필요한 ‘차분한 집중’ 상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차 종류별 테아닌 성분 함량과 효과를 호린님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표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 차 종류 | 평균 L-테아닌 함량 (㎎/100mL) | 주요 효과 | 명상 추천 시점 |
| 말차 | 20~45㎎ | 깊은 집중, 정신 안정, 차분한 각성 | 명상 전 또는 집중 명상 직전 |
| 녹차 | 6~12㎎ | 맑은 정신, 균형 잡힌 이완 | 아침 명상, 하루 시작 전 |
| 우롱차 | 2~6㎎ | 감정 완화, 피로 회복, 순환 자극 | 오후 집중 명상 중간 휴식 |
| 홍차 | 1~3㎎ | 각성 유도, 기분 전환 | 활동 전 마음 준비 명상 |
| 보이차 | 0.5~2㎎ | 체온 상승, 몸의 안정, 소화 촉진 | 저녁 또는 이완 명상 |
| 백차 | 3~7㎎ | 긴장 완화, 부드러운 진정 효과 | 취침 전, 수면 전 명상 |
꼭 말차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지금 내가 깨어 있음이 필요한지, 아니면 몸을 따뜻하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따라 선택해야 할 차는 달라져요. 중요한 건 ‘지금의 나에게 맞는 차’를 찾는 일입니다.
테아닌 성분이 높은 말차나 녹차를 공복에 마시게 되면, 위에 무리가 될 수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즉 나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차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상을 하면 체온이 내려가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때에는 발효가 많이 되어 있는 보이차를 마시면 금방 따듯해집니다.
호린피플 여러분들도 각자 상황에 맞는 차를 우려서, 잠시 차 한잔하시면 어떠실까요? 깊어지는 가을, 차와 마주하여 보다 마음 깊은 대화를 편안하게 해 보세요.
일상에서 차곡차곡 차와의 대화를 쌓아가다보면 고유성으로 빛나는 여러분을 만나실 거예요.
현명한 이치는 지극히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어 있는 삶의 순간에 감탄하며 아름다운 날을 살아가는 구독자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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