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11월부터 호린 명상 클래스를 시작합니다.

호린 인문학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법

뇌회로가 만든 고통의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위대한 문(門), 알아차림

2025.11.14 |
from.
제나
HOLYN의 프로필 이미지

HOLYN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알아차림(Awareness)'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수많은 명상서적과 명상 스승들이 '알아차림'이라는 말을 수없이 했지만 왠지 와닿지 않았습니다. 알아차림이라는 말도 모호할 뿐더러 그걸 했을 때 도대체 뭐가 달라진다는 것인지 효용성을 의심했죠. 
명상 20분의 효과는 납득이 되는데 몇 초짜리 알아차림이 도대체 뭘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호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율님이 쓴 이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저의 의심과 무지를 반성했네요.

귀가 닳도록 들었던 '알아차림'이 이렇게 위대한 '내면혁명'이었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달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구독자님도 이번 뉴스레터는 특별히 시간을 내어 천천이 읽어주세요. 어쩌면 인생의 많은 것이 바뀔지 모릅니다. 

구독자님, 이번 뉴스레터에는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1. 우리는 왜 습관적으로 불안에 시달릴까?
2.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불안을 만드는 메커니즘
3. 평온의 마음을 일깨우는 스위치, 살리언스 네트워크
4. '알아차림'을 통해 마음의 주인이 되는 법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러분은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까?

‘아… 벌써 아침이네. 일어나기 싫은데.’ ‘오전 미팅에서 뭐라고 말해야 하지.’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불평과 불안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끔 그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첨부 이미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편안한 이완에 들어갔을 때. 숲속을 산책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꼈을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 머물게 될 때.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세상과는 다른 평온한 세계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욕조에서 나오면, 산책이 끝나고 음악이 멈추면, 나는 다시 긴장과 불안이 지배하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저는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왜 나는 평온한 세계에 계속 머물 수 없는 걸까?” “나는 지금 어느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항상 '두가지 세계'를 오가며 산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같은 나인데, 아침에 눈 떴을 때의 나와 명상 속의 나는 왜 이렇게 다를까요? 같은 공간인데, 욕조에 몸을 담그기 전과 후는 왜 다른 세계처럼 느껴질까요? 

우리는 보통 이런 순간을 단순히 기분이 좋아졌다거나, 편해졌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단순히 기분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내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닙니다. 2000년 전 로마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문턱에 서 있다. 한쪽 발은 이 세계에, 다른 발은 저 세계에."

 

그가 말한 문턱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상의 소음과 깊은 고요 사이의 경계일 수도 있고 좀 더 명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습관적 사고와 깨어있는 의식 사이의 경계일 수도 있습니다.

세네카는 우리가 두 세계 사이의 문턱에 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경계에 살며 끊임없이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존재라고 여긴 거죠.

그의 통찰은 정확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두 세계를 오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만약 우리가 두 세계를 드나들고 있다면, ‘왜 나는 그것을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걸까요?’ 왜 평온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빠르게 닫히는 걸까요?

욕조에 들어가야지만, 산책할 때만 그것도 어쩌다 한 번씩 평온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금방 다시 닫혀 버립니다. 불안의 문은 너무 쉽게 열리고, 평온의 문은 내가 원해도 열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첨부 이미지

 

가장 큰 문제는 평온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조용한 공간, 여유로운 시간, 편안한 환경이 아닌, 일상의 소란한 공간,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스트레스 상황 한가운데서는 그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을 열기 위해 외부의 조건에 의지해야 합니다. 주위의 조건에 상관없이 내가 좀 더 주도적으로 그 문을 여닫는 문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현대 신경과학은 거기에 대한 명확한 답을 말해줍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만드는 끝없는 불안

 

신경과학은 세네카가 직관으로 본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실제 현상임을 말해줍니다.

그가 말한 문턱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그 문은 실제로 우리 뇌 안에 존재하는 신경회로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뇌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작동 모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가 활발하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 네트워크는 뇌의 내측 전전두엽 피질, 후방 대상 피질, 그리고 하두정엽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신경회로입니다.

이 회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만들어냅니다.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추측합니다.

‘오늘은 어떻게 버텨야 하지’, ‘왜 나만 이럴까’ 같은 생각들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이 네트워크가 깨어나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수면에서 깨어나자마자 ‘나의 이야기’를 다시, 재생하기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과거의 상처를 반추하고, 미래의 위협을 예상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해석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첨부 이미지

 

그런데 깊은 이완 상태에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활동이 잠잠해지고, 대신 전혀 다른 뇌 회로들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뇌의 전환 스위치 '살리언스 네트워크'

 

먼저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과 두정엽을 중심으로 한 주의 조절 네트워크가 활성화됩니다. 이 회로는 마치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듯 산만하게 흩어진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전방 대상 피질과 전방 섬엽을 연결하는 '살리언스 네트워크(Salience Network)'가 개입합니다.

이 회로는 뇌의 ‘전환 스위치’ 역할을 하면서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중요한가?’를 판단하고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에서 현재의 감각으로 초점을 옮깁니다.

그리고 체성감각 피질과 일차 운동 피질을 포함한 감각 운동 네트워크가 깨어나면서 몸의 감각들이 선명하게 전면으로 떠오릅니다.

이때 뇌의 활동은 과거와 미래의 추상적 이야기를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의 구체적 실재로 되돌아옵니다. 

왜 이런 상황이 평온함을 가져올까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나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불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반추하고, 미래의 위협을 예상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걱정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한 뇌의 자연스러운 기능이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직접적 감각은 어떤 평가나 위협, 걱정이 없는 순수한 경험으로 인식됩니다. 우리는 그 순수한 경험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평온함을 느끼게 됩니다.

 

불안과 걱정은 '뇌의 회로'에 갇혔다는 증거

 

예를 들어 새벽 산책 중이라면 피부에 닿는 새벽 공기의 미세한 온도와 습도, 발바닥이 바닥을 누르는 압력의 감각, 새벽빛이 망막을 자극하는 순간의 진동이 생생하게 지각됩니다.

이때 느껴지는 평온함은 단순히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가 아니라 뇌 전체의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전환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기 비판적 사고를 담당하는 회로는 조용해지고 현재 순간의 직접적 경험을 처리하는 회로가 전면에 나서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내가 느꼈던 두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감각적 상상이 아니라 실제 뇌 안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신경회로의 전환이었던 거죠.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평온은 ‘얻어야 할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점입니다. 욕조에서, 산책 중에,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평화로운 상태는 특별한 무언가를 성취해서 도달한 경지가 아닙니다.

 

첨부 이미지

 

그것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지배에서 벗어나 원래의 감각적 실재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불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정상'이라고 착각하며 살게 됐다는 점입니다.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믿어온 거죠.

하지만 신경과학이 보여주는 진실은 다릅니다. 그것은 살아있음이 아니라, 뇌의 회로에 갇혀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쪽 세계를 여는 문, '알아차림'

 

우리의 의식은 이 두 개의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경계의 문에 있습니다. 한쪽 발은 생각의 세계에, 다른 쪽 발은 감각의 세계에. 한쪽 발은 과거-미래의 이야기 속에, 다른 쪽 발은 지금-여기의 현존 속에.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우리는 한쪽 세계에만 갇혀 지냅니다. 다른 쪽 세계로 가는 문이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로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평온함으로 가는 문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은 언제나 내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문을 언제라도 열 수 있는 열쇠는 역시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열쇠의 이름은 ‘알아차림(awareness)’입니다.

명상 전통에서는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알아차림의 상태를 이어갈 것을 강조합니다. 알아차림이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을, 감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단순히 대상을 지켜보는 집중과 관찰이 아니라, ‘지켜보는 나’를 함께 자각하는 의식이 알아차림입니다. 이를 ‘생각의 생각’ 즉, 생각을 관찰하는 또 다른 의식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알아차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메타인지(Metacongnition)’와는 다릅니다. 메타인지는 분석과 평가를 동반하는 자기 객관화입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냉정한 감시자의 눈입니다.

반면에 알아차림은 현재 상황을 비판이나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내가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지금 졸음이 오고 있구나.’ 판단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지켜봐 줍니다. 

 

'알아차림' 반복될수록 문은 쉽게 열린다

 

그렇다면 알아차림은 어떻게 뇌의 신경회로를 전환할까요?

앞서 우리는 살리언스 네트워크가 뇌의 '전환 스위치' 역할을 한다고 배웠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신호가 중요한지를 평가하고, 뇌의 여러 네트워크를 재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회의 중에 딴생각을 하다가 ‘아, 지금 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순간, 살리언스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이 회로는 지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평가하고, 주의 조절 네트워크와 감각 운동 네트워크를 함께 작동시킵니다.

주의 조절 네트워크는 산만하게 흩어진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감각 운동 네트워크는 몸의 감각들을 선명하게 전면으로 떠올립니다. 이러한 여러 회로들의 협력적 작동을 통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잠잠해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단 몇 초 안에 일어납니다.

신경과학 연구들은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명상가들이 일반인보다 살리언스 네트워크와 주의 조절 네트워크 사이의 연결이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반복적인 알아차림 연습을 통해 이 신경회로들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근육을 단련하듯, 알아차림을 반복할수록 문을 여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첨부 이미지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닫는 '주인'으로

 

알아차림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생깁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습관적으로 멍하게 오늘 하루를 반복 재생하다가 그런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그 생각을 계속할 수도 있고, 손잡이를 잡은 손의 촉감이나, 호흡에 주의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

밤에 잠들지 못하고 내일 걱정을 하다가, 그런 나를 알아차리며 현재의 감각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10초도 안 돼 집중이 흩어지고 산만한 생각과 감정이 폭풍처럼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루에 열 번, 스무 번 알아차리고 돌아오는 연습을 하는 것이 살리언스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훈련입니다.

불교에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주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회의실에 있든, 지하철 안에 있든, 침대 위에 있든 내가 그 순간의 주인이 되는 것.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계획하고 회상하되 필요할 때는 현재로 돌아와 지금, 이 순간이라는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 이것이 스스로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닫는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 그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문을 열고 또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알아차려 보세요. 그 순간, 문이 열리고 평온함이 가득한 그곳이 나의 세계가 될 것입니다.

 

Holyn Lab은 영성인문학 연구팀으로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특정 종교나 단체에는 소속돼 있지 않습니다. Holyn 뉴스레터는 격주 금요일에 발송되며 지금은 무료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HOLYN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HOLYN

Spiritual But Not Religious

뉴스레터 문의hello@holyn.io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