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9박10일('25.9.26~'25.10.5 Local time)간 미국 LA로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은 거리가 멀어서 선뜻 여행을 계획하기 쉽지 않다. Accenture 시절 일주일 간 시카고 연수, 미주리대학교 Truman school 유학, 맨하튼 파견근무에 이어 본토를 밟은 것은 이번이 4번째다. 항상 느끼지만 멀기도 참 멀다. 비행기 타다가 허리 나가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귀국한 지 몇 일이 지났음에도 여독이 가시지 않는다.
이번 여행의 발단은 미국 시티은행에 개설된 내 계좌 문제였다. 계좌가 정지된 것도 모자라 작년 10월부터 갑자기 매달 $15씩 비용이 청구되고 있었다. 이참에 아들과 함께 추석을 끼고 여행을 하고 싶어 혼자 1만달러 이상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는 그럴 듯한 명분을 들어 아들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갈 때는 기분 좋게 공항 라운지도 이용하고 재밌게 갔는데, LA에 도착해 피곤한 상태로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한인 민박집을 도착하니 왜 호텔을 잡지 않았냐고 숙소가 떨어진다고 아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나도 숙소가 썩 맘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축 아파트, 깨끗한 호텔에 길들여진 아들에게 교육 차원에서 체험 삶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LA 호텔이 좀 괜찮은 곳은 굉장히 비싸서 어설픈 호텔 잡느니 한인 민박이 나을 것 같아서 그리 정한 측면도 있었다.
아들은 계속 숙소에 대한 불만을 쏟아 냈지만, 나중에는 자기도 자포자기했는지 불평의 강도가 점차 누그러졌다. 아마도 후반 3일을 남겨두고 차를 렌트해서 편하게 다니고 밤늦게 귀가하다 보니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어 그랬던 것 같다.
LA 입국 첫날('25.9.26, 금)은 도착시간이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라서 충분히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할 것 같았고, 또 LA 사람들은 실제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 대중교통으로 숙소까지 이동 했다. 그리고 다음날 자동차 렌트를 할까 했는데, 막상 LA 대중교통을 타보니 예전에 살았던 맨하튼과 비교했을 때 LA 대중교통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닌 거 같아서 몇 일 더 대중교통을 타고 시내 위주로 관광을 다니기로 했다. LA 교통카드인 Tab카드는 환승 할인은 물론 1일 5달러, 7일 15달러 캡이 있어서 어찌 보면 한국보다 더 비용 합리적인 측면도 있었다. 다만, 맨하튼과 달리 LA에서는 가난한 사람들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짜 일반 대중이 이용하던 맨하튼 대중교통과 달리 여기 LA 지하철/버스에서는 깔끔하게 차려 입은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도착 둘째 날('25.9.27, 토). 당초 계획은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LA를 한바퀴 투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어차피 대중교통 버스를 타면 시티투어는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라 굳이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할 니즈가 없었다. 그래서 Marina Del Rey 인앤아웃버거를 들러 식사를 하고 산타모니카 비치와 베니스 비치로 향했다. 아들은 컴퓨터 게임에서 이미 산타모니카 비치, 베니스 비치는 물론 시내 다운타운까지 LA 지리를 다 안다고 자랑하더니 혼자 여기저기 쏘 다녔다. 덕분에 나는 한가로이 홀로 해변가를 거닐 수 있었다. 문제는 물갈이로 설사가 나기 시작했는데, 해변가 공공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하고 시설도 열악해서 당혹스러웠다. 해변가는 젊음의 자유와 활기로 가득 했지만, 정돈되지 못한 너저분함도 함께 품고 있었다.
셋째 날('25.9.28, 일)은 IHOP에서 아점을 먹은 뒤 할리우드 거리에 있는 마샬(Marshalls)과 Ross, Ralphs를 들러서 선글래스도 사고 식료품도 샀다. 저가 할인점 마샬은 집사람이 미주리 살 때 진짜 자주 찾던 곳으로, 애들이 '엄마는 마샬~♬, 엄마는 마샬~♬'하며 노래까지 지어 부르던 곳이다. Ralphs에서 음료수를 사서 Hollywood/Western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에 돌아가 내일 유니버설 스튜디오 투어에 대비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Wilshire/Vermont역을 지나쳐 다음 역인 Pershing Square역에 내리게 되었다. 근데 지하철을 내려보니 Pershing Square역은 LA의 다른 지역과 달리 매우 깨끗하고 최고급 호텔과 맞닿아 있었다. 지도를 보니 LA 다운타운 금융가 부근으로 나오는데, 아들이 눈을 반짝이더니 자기가 여기 지리를 잘 안다고 하며 좀 걷자고 했다. GTA 게임 배경인 로스 산토스의 모티브가 LA이다 보니 아들은 게임 속 건물을 줄줄 외우고 있었다. 아들이 먼저 걷자고 하는 건 아들 키우며 처음 들어보는 말인 것 같아 아들이 이끄는 대로 함께 걸었다. US bank를 비롯 높다란 건물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LA 시청 건물에 도착해 사진도 찍고, Grand Central Market에 가서 유명한 타코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날은 의도치 않게 정말 재밌는 다운타운 투어가 되었다. 계획하지 않은 의외성이 여행을 풍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넷째 날('25.9.29. 월)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예전에 미주리로 유학가다가 여기 들렀을 때 아들을 잠시 잃어버린 아찔한 추억이 있는 곳이라 여기를 다시 선택했다. 그리고 조금 비싸더라도 2일권을 끊었다. 하지만, 아들은 영 흥미 없어 했고, 2일권임에도 불구하고 반나절 구경하고는 숙소로 쏙 들어가 버려서 나 혼자 워터 월드쇼, 스튜디오 투어 버스를 즐겼다. 돈이 좀 아깝지만, 아들이 고등학생이고 트랜스포머, 심슨, 슈퍼마리오 같은 것은 유치하게 생각한다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워터 월드쇼나 스튜디오 투어를 먼저 체험했어야 하는데, 슈퍼마리오 월드에서 30~40분 줄을 서 시시한 어트랙션을 타다 보니 아들이 흥미를 확 잃어버리고 만 것 같다. 그나마 쥬라기 월드에서 보트 탈 때만 조금 즐거워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아들 체력이 금방 방전된다는 것을 고려해 재밌는 걸 먼저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섯째 날('25.9.30, 화)부터 3일간은 아들이 심한 기침으로 컨디션이 저하되어 함께 여행을 못했다. 화요일은 오전에 은행에 가서 계좌를 해지하고 돈을 찾아왔다. 한인타운에 위치한 시티뱅크에 갔는데, 은행에 $100 지폐가 부족해 다른 지점을 방문한 후에야 겨우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Grand Central Market에 다시 들러 한식 도시락을 사 먹고, Elysian Park Angels Point로 혼자 가볍게 등산을 다녀왔다. 여기는 LA Dodger Stadium과 다운타운을 멀리서 전망할 수 있는 산등성이인데, 마침 이날 LA 다저스와 시내티 레즈간에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1차전이 있는 날이다 보니, 경기 시작 두세 시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Angels Point로 걸어가는 동안 많은 차들로 인한 교통 체증을 볼 수 있었다.

여섯째 날('25.10.1, 수)은 아점으로 Olive Garden에 가서 식사를 하고, 근처 쇼핑 센터에 있는 약국에 거서 뮤시넥스라는 기침약을 사서 먹였다. 예전 미국 살 때를 추억하며 Unlimited Soup & Salad를 먹었는데, 식사할 때는 코가 막혀 무슨 맛있지 모르겠다고 하더니만 나중에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는 Olive Garden이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고 한다. 한번 더 가자고 하긴 했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더는 못 갔다. 아들 약을 먹인 후 집에서 쉬라고 하고 나는 혼자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와 TCL 차이니즈 극장 등을 둘러 보고 집에 와서 Lagunitas IPA를 마셨다. 공항 면세점에서 산 보드카에 쥬스와 물을 타서 몇 일간 마셨는데, 그날은 현지 맥주가 먹고 싶었다. 맛이 괜찮아 그 뒤로 2~3번 더 마셨다.

일곱째 날('25.10.2, 목)은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 여행을 못하는 아들을 위해 뭐 좀 맛있는 거 먹이면 좋아지려나 하는 마음에 King Buffet를 갔다. 중국계가 운영하는 식당인 것 같은데, 나름 초밥을 포함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고 식당도 깨끗해서 아들이 잘 먹었다. 근처 한인부페 대신 여기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크랩을 준다는 것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껍질이 완전히 딱딱한 게를 줘서 먹을 수가 없었다. 이놈들 상술인 듯...하지만 나는 불굴의 의지로 포크와 나이프를 망치처럼 활용 해 게 다리 껍질을 부숴가며 야무지게 3접시나 먹었다. 현지 미국 할아버지들이 신기한 듯 쳐다 봤다고 아들이 말해 줬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본전 생각에 크랩, 초밥에 이어 몽골리안 볶음까지 알차게 먹어 줬다. 식사 후 아들은 숙소로 돌아가고 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재방문해 워터 월드쇼도 다시 보고 시티 워크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왔다. 내일부터는 차를 빌려 중장거리를 이동하는 일정인데, 다행히 저녁에 와보니 아들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 내일부터는 함께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여덟 번째 날('25.10.3, 금). 당초 일정은 차를 빌려 케티 센터를 관람 후 베벌리 힐스 가든 파크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그리피스 파크로 이동해 고기를 구워 먹고 밤에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야경을 보고 내려오는 코스였다. 계획은 완벽했으나 실행은 첫 장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차를 렌트하려고 미리 조사해 놓은 평점이 좋은 현지 렌터카 업체를 갔는데, 차가 다 나가서 예약 없이 왔다면 차를 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아차...그래서 급히 근방의 렌터카 업체를 검색해 보니 한인렌터카 업체가 있어 가보니 문을 닫았고, 그래서 또 다시 검색해 Budget 렌터카를 찾아가 겨우 차를 빌렸다. 일정을 좀 유동적으로 잡아 렌터카 예약을 미리 안했더니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다.
차를 빌려 숙소에서 아들을 태우고 서둘러 케티 센터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는 아들 취향이 아니었다. 이동에 1시간 걸렸고 주차비도 $25을 냈는데, 아들은 영 재미없어 하는 것이었다. 또한, 아침에 시간을 지체 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베벌리 힐스 가든 파크는 미쳐 돌아볼 시간이 안되었다. 하는 수 없이 고기와 새우, 숯을 사서 바로 그리피스 파크 피크닉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리피스 파크는 BBQ 그릴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할로윈 파티 준비한다고 오후 5시 이후부터는 전부 퇴장해야 한다고 했다. 솔직히 하루 종일 고기 구워 먹을 요량으로 점심도 안먹고 계속 차 타고 이동 했는데, 해는 저물어 가고 트렁크에 실린 저 고기와 새우는 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집에 가서 후라이팬에 구울 것인가, 아님 여행 준비하면서 알아봐 둔 확실히 불 피우는 게 가능한 그러나 그리피스 파크에서 도심을 가로질러 1시간 이상 떨어진 Dockweiler Beach로 가야 할 것인가? 더군다나 겉옷도 안챙겨와 밤에 활동하기 위해서는 숙소를 다시 들렀다 가야 하는 상황. 망설임도 잠시...일단 불 피우고 고기 굽기로 마음 먹은 이상 '못 먹어도 고'라는 심정으로 Dockweiler Beach로 향했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불을 피울 수 있는 Fire Pit는 이미 먼저 온 다른 사람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다 해질녘 해풍이 어마무시 했다. 불을 피울 곳도 없고, 바람이 거세 불을 붙일 수도 없는 상황. 배는 고프고, 정말 최악의 순간이었다. 일단 불을 피울 장소는 Fire Pit 근처 경비초소 뒤로 정했다. (Fire Pit이 아니더라도 그 근처에서 불 피울 수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숯불을 피우려면 화덕이 있어야 하는데, 당연히 그릴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화덕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는 길에 한인마트에서 우주선 모양의 스텐레스 찜기를 사서 그걸 화덕 삼아 불을 피우려고 했는데, 계산 줄이 너무 길어 찜기 사는 걸 포기하고 급하게 온 터라 숯불 피울 화덕이 없었다. 다행히 고기를 담기 위해 가져간 스텐레스 냉면 그릇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거기다 불을 피우면 어떻겠냐고 했다. 안될 거 같기는 했지만 아들을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 일단 거기에라도 불을 피워보기로 했다. 근데 문제는 바람이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도저히 종이에 불이 붙지 않았다. 망연자실,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은 끝까지 불을 붙여 보겠다고 하더니 진짜 종이에 불을 붙여 보였다. 대단한 집념이었다. 하지만, 이제 진짜 문제는 숯에 불을 옮겨 붙이는 것이었는데 종이 한 두 장으로 숯에 불을 붙인다는 것은 내 경험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 여기서 더 절망적인 상황이 있으랴는 심정으로 숯 서너알을 불붙은 종이 위에 던져 넣었다. 그런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종이에 불을 붙인 것도 기적이었지만, 아들이 마트에서 골라온 숯은 이미 점화제가 발라져 있는 제품이었고 종이에 숯을 던져 넣자마자 숯에 불이 활활 일었다.(점화제 바른 걸 알고 산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여행 다닐 때 꼭 참고해야 겠다.) 여기서 아들은 또 다른 기지를 발휘했다. 모래를 파 구덩이를 만들더니 거기다가 은박지를 깔고 천연 화덕을 만든 것이다. 숯을 천연 화덕으로 옮기고 그 위에 그릴을 얹으니 그럴싸하게 고기 구울 환경이 마련되었다. 뿐만 아니라 밤이 깊어지니 초저녁 그리도 세차게 불던 바람이 귀신같이 잦아들었다. 우리는 천연 화덕에 새우도 굽고, 소세지도 굽고, 고기도 굽고 진짜 정신없이 맛있게 저녁을 해결했다. 특히, 수제 소세지는 최고의 맛이었다. 최악으로 기억될 뻔한 오늘. 아들의 끈기와 기지가 오늘을 최고의 하루로 바꿔주었다.

아홉째 날('25.10.4, 토). 오늘은 사막투어와 별 빛 구경을 위해 Joshua Tree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사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좋겠다. 가는 길에 초기 정착민의 마을(Pioneer Town)에 들러 커피를 한잔했다. 도대체 그 옛날 이 황량한 곳에서 그들은 뭘 해먹고 살았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딱히 볼거리가 대단히 많은 건 아니었고 그냥 옛날 서부 개척시대를 살짝 엿보는 정도였다. 미국 할배들이 나와서 권총결투 야외공연을 펼쳤지만 그냥 유치한 수준이었다.
공원으로 가기에 앞서 Vons에 들러 고기와 새우, 그리고 어제 맛있게 먹었던 기억에 수제 소세지를 구입했다. 어제 가위가 없어 고기를 통째로 들고 뜯었던 기억에 슈퍼 옆 Ross에 들러 가위를 사고, 어제 아들 엄지손가락을 다치게 했던 불량 집게를 대체하고자 실리콘으로 된 미니 집게도 2개 장만했다. 그리고 원 없이 불놀이 하라고 장작도 한 꾸러미 샀다. 어제에 비하면 정말 준비가 완벽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Joshua Tree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표는 사막 구경, 별 구경을 겸해 본격적으로 숯불구이와 불장난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원 깊숙히 가기 보다는 입구에서 가까운 Campground를 찾아 잽싸게 불 피울 장소를 선점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하여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Quail Springs Picnic Area를 검색해 도착해 보니, 그릴이 1개만 설치된 매우 협소한 곳이었다. 일단은 그릴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지만, 여기는 좀 아닌 거 같아 공원입구에서 나눠준 지도를 보고 다음 Campground를 찾았다. 하여 낙점한 곳이 Hidden Valley Campground! 너무나 완벽한 선택이었다. 잘 구비된 시설, 그늘진 위치, 가까운 화장실 등 모든 조건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릴도 있고, 그 옆에 장작불을 피울 수 있는 Fire Pit도 별도로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고기도 굽고, 별이 뜨는 밤까지 실컷 불장난도 하고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고 하지만 오늘 만큼은 나름 완벽한 하루라고 할 수 있었다. Joshua Tree 국립공원은 데이터 연결이 안되니 미리 지도를 다운 받아 가라고 하기에 운전하면서 아들에게 부탁했더니, 아들이 구글맵을 미리 받아두어 밤에 돌아갈 때 헤매지 않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전날 저녁에 구글맵을 미리 다운 받아두려 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 미루다가 차에서 아들에게 부탁하니 바로 해줘서 아주 많은 도움이 됐다. 어제 Dockweiler Beach에 이어 오늘도 아들은 든든한 여행 동반자로 나와 함께 해주고 있었다.

마지막 열번째 날('25.10.5, 일)은 특별히 어디 가기보다는 좀 쉬엄쉬엄 실탄 사격 후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와 쇼핑몰 Ovation에서 느긋하게 LA 마지막을 즐기다가 일찌감치 공항으로 이동해 라운지를 충분히 즐기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체크 아웃도 11시에 느지막하게 하고, 11시30분에 차를 반납한 후 실탄 사격장을 방문하려고 했다. 하지만, 돌발변수 발생. 어제 Joshua Tree 국립공원에 갔다가 밤늦게 와서 체크해 보니 아들이 애플 워치를 그 전날 Dockweiler Beach에서 분실한 것이다. 그리고 그걸 어떤 놈이 주워서 자기집에 가져간 모양이다. 하여 당초 느지막하게 일어나 여유 있게 이동하는 대신 아침 9시에 일어나서 애플 워치에 마지막 신호가 찍힌 집으로 무작정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그 집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거리였고, 우리는 무작정 그 집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집주인은 일찍 일어나 마당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고, 아들이 아빠는 차에서 대기하라고 하더니 자기가 그 집으로 가서는 집주인과 흥정을 하고 돌아 와서는 $50을 주면 애플 워치를 돌려주겠다고 했다고 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한국 같으면 그냥 돌려줄텐데 역시 자본주의 종주국 답게 모든 게 돈이다.
시계를 찾은 후 급히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밥을 먹었다. 다행히 어제 구워온 고기가 있어서 그것과 햇반 남은 거, 즉석 우동 컵라면 남은 거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민박집에 Deposit해 두었던 돈 $50을 받아 겨우 11시30분 렌터카 반납시간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도 아들이 이동경로 상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잘 찾아주어 자동차를 제 시간에 반납할 수 있었다. 참고로 어제 밤에 Joshua Tree 국립공원에서 돌아올 때도 아들이 다른 주유소에 비해 엄청나게 싼 주유소를 찾아줘서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대략 갤런당 $3.7 vs. 시내 일반 주유소 $4.7)
차를 반납한 후 드디어 아들이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LA Gun Club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실탄사격 비용은 $150 이상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일 동안 보여준 든든한 아들의 모습에 감동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 비싸긴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돈을 지불했다. 권총도 소총도 다 쏴보고 싶다고 해 추가 지출이 있었지만, 꼭 해보고 싶다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어필한 경우도 흔치 않아 둘 다 체험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쏜 표적지는 지금 아들방 입구에 기념으로 붙어 있다. 어려서부터 자동차랑 밀리터리를 좋아하더니 커서도 선호도는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번 여행을 통해 부쩍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행 짐을 나르고 네비게이션을 연결하고 주유소를 찾는 등 여행을 조력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위기의 순간마다 용기와 지혜를 통해 위기 탈출을 도왔다. 최악의 순간은 최고의 순간이 되었고, 아들도 이번 여행을 통해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항상 어린 아이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성장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함께한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 고맙고 소중하다. 이번 여행에 우여곡절도 많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여행 막바지 해변과 사막에서의 좋은 추억은 내 평생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그 때가 그 순간이 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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