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친구에서 쓰는 전하지 못할 편지

2025.05.29 | 조회 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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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피천득, 인연)

오늘 아침처럼 마음이 번잡한 날은 익히 없었던 것 같다.

어제 동기를 만났다. 참 친했던 친구다. 그러나 여러 오해로 갑자기 인연이 끊어진 친구이기도 하다. 여러 번의 사과와 구애 끝에 그것도 호성 형과의 인연을 빌어 겨우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어색했다. 회사에서 꾀나 먼 거리를 걸어 쇠락한 상가 지하 순대국집에서 소맥을 마셨다. 참으로 묘했다. 마치 우리 인연처럼.

여의도는 IFC몰, 더현대 등 신식 건물이 들어서며 세련되어 졌고, 나도 예전 상가보다는 새로운 곳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30분 이상을 걸어 낡고 낡은 상가 지하 순대국집에 마주 앉았다.

자신의 평온을 깨지 말라고 했다. 타인은 지옥이란다. 나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나를 만나면 편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다시는 보지 말자고도 했고 여러 독설을 쏟아냈다. 나는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그래도 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린 참 친했다. 2005년부터 서울-부산을 오가며 3년여를 같이 일했고, 가족끼리 왕래할 정도로 친밀했다. 마음을 나눴고 결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디서부터 관계가 틀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와 친한 회사 내 몇몇 지인들과 이 친구 사이에 좋지 않은 인연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도 함께 미워하는 관계가 되었으리라 짐작해 볼 뿐이다. 너한테 왜 똥파리가 끼는지 알아? 그건 니가 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기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노조 위원장을 3번 하는 사이 공황장애가 왔고,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여린 사람이 상처 입은 야수의 모습을 하고 산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안쓰럽고 곧 쓰러질 것 같아 보일 뿐이다.

소멸과 산화를 얘기했다. 소멸은 외부 힘에 의해 사라져 버리는 것이고, 산화는 촛불 심지가 다 탈 때까지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라 했다. 다행이었다. 위태해 보였지만 그래도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말에 안도가 되었다.

한 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화해였는지 뭔지 모르겠다. 하긴 싸운 적이 없으니 화해는 불필요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다. 여기까지라는 것을...

나도 그간 여러 일로 마음 고생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 공부를 하게 되었고, 적어도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정도는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이기심으로 존경하는 친구의 고독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그것이 인연이다.

25.5.29 심란한 아침, 출근길에 굳건한 나무를 마주하고 가만히 쓰다듬었다.
25.5.29 심란한 아침, 출근길에 굳건한 나무를 마주하고 가만히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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