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회사 사람들과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토요일 저녁 7시, 열심히 운전을 해서 집으로 오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중학교 동창 누구라고 하기에 반갑다고 인사를 하긴 했는데, 운전 중이다 보니 정확히 듣지를 못해 그냥 어물쩍 전화를 끊고 집에 와 다시 전화를 걸어 봤더니 호균이라고 했다. 아까는 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왜 아는 척 했냐고 따지더니, 중학교 시절 나 때문에 자기가 선생님한테 많이 혼났다고 하면서, 만약 너가 옆에 있다면 지금 패주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이 자기 맘 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고 했다.
호균이는 중학교 시절 나름 문제아였고, 나는 반장이었다. 호균이 말에 의하면 자기가 무단 결석한 날 내가 선생님과 집에 찾아오는 바람에 엄마에게 뒤지게 맞은 적이 있고, 학교에서는 내가 선생님께 자기를 일러바쳐서 혼이 많이 났었다고 한다.
내 기억 속에 호균이는 문제아였다는 정도만 기억에 있을 뿐이지만, 호균이의 기억 속에 나는 얄미운 일본 앞잡이요, 자기를 선생님과 부모님께 꼰지르고 괴롭히는 가해자로 남아 있는 듯 했다. 다시 전화를 해 그랬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내가 너를 때린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때린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40년이 넘게 나를 잊지 않고 악당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이틀이 지나 월요일 아침, 고등학교 1년 선배 진홍 형에게 문자가 왔다. 내일 소주 한잔 하자고.
선배라니까 예 형하고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했다. 하여 마당발 주영 형에게 전화를 걸어 진홍 형에 대한 신상정보를 급하게 수집했고, 주영 형을 가교 삼아 여의도역에서 셋이 만났다.
진홍 형 말에 의하면 본인이 군대 갔다 와서 복학 후 방황하던 시절 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내가 오더니 인사를 꾸벅 하고는 내 여자친구를 인사 시키고 여자친구에게 선배님께 술을 한잔 따라 드리라고 했다고 한다. 이 부분도 솔직히 기억이 잘안난다. 진홍 형 말로는 과거 힘들 던 시절 자기를 먼저 알아봐 주고 인사해 줘서 고마웠다고 했다. 후배가 선배에게 인사하는 건 정말이지 아주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30년이 지나 친히 나를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하다니...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긴 세월 동안 누구는 나를 원망의 대상으로, 누구는 나를 고마움의 대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내가 한 사소한 행동은 10년, 20년 후에 어떤 인연이 되어 내게 돌아올까?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고 하는 불가의 가르침이 새삼 실감 나는 요 몇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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