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잘 쓰려면, '잘 배우는 것'보다 '잘 잊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slides-grab 만든 김동규님께 6가지를 물었더니, '언러닝'에 멈췄습니다

2026.04.28 | 조회 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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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

안녕하세요, 채원입니다.

지난 편에서 slides-grab이라는 도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AI 한 명에게 다 시키지 말고 팀으로 쓰자는 이야기였죠.

 

그 글을 쓰면서, 도구보다 도구를 만든 사람의 머릿속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서면 인터뷰를 청해보았습니다.

동규님이 흔쾌히 응해주셨고, 며칠 뒤 답변이 도착했습니다.

 

답변을 보니 단순히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가 느껴졌습니다.

답변을 실제로 마주 앉아 들은 듯 전달해보고 싶어, 오늘은 그 답변을 가상의 대화 형식으로 옮겨 소개합니다.


시작은, 어쩌다였어요.

 

 slides-grab을 어떻게 만들게 되셨어요?

 

"PPT 만드는 걸 너무 싫어했거든요."

 

거대한 비전보다는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일 에서 출발한 도구라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동규: "클로드 코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PPT를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강해졌어요. 그래서 만들었는데, 한 번 만들어 놓고 보니 수정이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에디터를 붙였습니다. 이미지의 바운딩 박스를 그려서 피드백을 주면 훨씬 편하겠다 싶었거든요. 거기에 벨리데이터(검증기)까지 붙이다 보니, 어느새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 3단계 구조는 처음부터 설계하신 건가요?

 

"아니요. 만들면서 정리됐어요. 처음에 참고했던 빌더 조쉬님 스킬에도 비슷한 구조가 있었고, 만들다 보니 'PPT를 만든다는 건 결국 이 세 단계를 거치는구나' 싶더라고요."

 

도구는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작은 불편에서 출발해서, 불편 → 추가 → 또 불편 → 또 추가 의 반복으로 쌓인 도구였습니다.

 

실제로 slides-grab GitHub에 들어가 보면 닫힌 이슈만 73개, 배포 이력 15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3일 전 또 새 업데이트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한 번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도구였습니다.


잘 만들어진 걸 가져다 썼어요.

 

 35개나 되는 디자인 스타일은 어떻게 모으셨나요?

"사실 5개는 빌더 조쉬님 스킬에서, 30개는 조은님이 만드신 pptx-design-styles에서 가져왔어요. 저는 디자인 정말 문외한이거든요. 뼛속까지 공돌이라."

 

 본인이 만드신 게 아니라는 걸 솔직하게 밝히셔도 되나요?

"이미 잘 만들어진 좋은 오픈소스가 있는데 굳이 다시 만들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누가 제 걸 가져가서 더 좋은 거 만들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이 한 마디가 오래 남았습니다. 오픈소스 정신이라는 게, 이런 태도구나 싶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거 가져다 쓰고, 내 것도 가져다 쓰세요." 비개발자라서 잘 몰랐던, 개발자들 사이의 좋은 문화를 엿본 느낌이었습니다.


도구는, AI랑 잘 맞붙어야 해요.

 

 다이어그램은 tldraw, 이미지는 Nano Banana로 나누셨잖아요. 그 기준이 뭐였어요?

"HTML로 복잡한 다이어그램을 만드는 건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자바스크립트 안에서 코드로 다이어그램을 다룰 수 있는 tldraw를 골랐습니다. 다른 다이어그램 툴보다 에이전트 친화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는 것 같았거든요."

 

 에이전트 친화적, 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에요.

"저는 도구를 고를 때 그걸 봐요. 사람한테 편한가가 아니라 AI랑 잘 맞붙는가. 나노바나나도 그래서 골랐고요. GPT 이미지 2.0이 나오면 그것도 붙일 예정입니다."

 

'에이전트 친화적'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았습니다. 분업이라는 건 결국 각 도구가 AI랑 얼마나 잘 합주하는지를 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PM으로 사람의 강점을 보고 일을 분배하듯이요.


"한 AI에겐, 한 가지 역할만."

 

 'AI 한 명한테 다 맡기지 않는다'는 원칙. 언제부터 가지셨나요?

"이건 어텐션 메커니즘 원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AI 엔지니어들은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생각이거든요."

 

"컨텍스트가 길어질수록 연산량과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어텐션 구조 특성상, 한 AI에게 하나의 정리된 컨텍스트, 하나의 정리된 역할을 맡기는 게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모든 에이전트 시스템을 만들 때, 컨텍스트가 아주 제한된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소중하게 활용하려고 합니다."

 

이 답변에 두 번 멈췄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지난 편에서 저는 "AI도 팀을 짜야 한다"고 비유로 풀었습니다. 동규님은 그걸 어텐션 메커니즘이라는 기술적 근거로 설명해주시더라구요.

비유가 우연히 맞은 게 아니라, 진짜로 맞는 거였구나. 한 줄 한 줄이 단단하게 다가왔습니다.

 

 K-SKILL을 비롯해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정말 많이 만드시는데, 그 동기는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재밌어서요."

"Openclaw를 만든 Peter Steinberger도 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재밌어서 만들었다.' 저도 원래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코딩 에이전트들이 등장하면서 만드는 게 너무 편해졌거든요. 그래서 더 재밌게 만들고 있어요."

 

 돈을 벌고 싶다거나, 큰 비전을 위한 것은 오히려 아니군요.

"저는 돈 버는 것보단 만드는 게 재밌어요. 책임감이나 사업화 고민 없이 만들 수 있는 오픈소스가 그래서 좋고요. 큰 흐름이라고 할 만한 건 딱히 없습니다. 다만…"

"에이전트 시대에 뭔가를 만들어내는 센스, 취향, 어떤 걸 만들어낼지 아는 능력 이게 가장 중요하고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기르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방법은, 많이 만들어보는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열심히 여러 가지를 만들어보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올해 1월에 'Product Architect'로 가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그 안에 '왜 만드냐'에 대한 답은 흐릿했어요. 동규님의 답변을 읽고서야 그 빈 칸이 채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센스, 취향,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 그건 많이 만들어봐야 길러진다."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그냥 만들어보는 것.


사용자가 새로운 용도를 발견합니다.

 

 사용자들이 의외의 방식으로 쓰는 사례가 있나요?

"slides-grab을 카드뉴스나 웹페이지 디자인에 쓰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것과 비슷한 톤으로 클로드 디자인이라는 툴이 나오기도 했고요. 사실 저도 비슷한 오픈소스를 따로 공개할 생각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가 별도로 소셜에서 발행하는 카드 뉴스를 slides-grab으로 만들고 있거든요. 만든 사람은 한 가지 용도로 만들었어도, 쓰는 사람들이 새로운 용도를 발견해내는 게 좋은 도구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원래 잘하던 사람이 더 잘 씁니다."

 

 AI를 잘 쓰는 메이커와 못 쓰는 메이커, 차이는 뭘까요?

"두 가지요."

"첫 번째는 언러닝(Unlearning). 원래 하던 습관을 과감하게 버리고, AI가 나보다 훨씬 코딩을 잘하고 빌딩을 잘한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 언러닝을 잘하는 사람이 훨씬 빠르게 AI를 잘 쓰게 됩니다."

"두 번째는 배움의 속도.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고, 생산성을 더 늘리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 결국 AI를 잘 써요. 결국엔 — 원래부터 뛰어난 사람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더 잘 쓰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언러닝'이라는 단어가 오래 남았습니다.

동규님이 말씀하신 '습관'은 단순한 작업 습관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일의 전제들 "내 영역은 여기까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정답을 찾고 나서 움직인다" 이런 것들을 풀어내야 비로소 AI를 잘 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

 자유롭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slides-grab뿐 아니라 여러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을 재밌게 진행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이 관심 부탁드립니다."

 

"재밌게." 이 한 단어가 인터뷰 전체에 깔려 있었습니다. 재미가 동력이 되는 사람이 만드는 도구는, 결이 다릅니다.


대화를 마치고

 

답변을 곱씹어보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거였어요.

"많이, 재밌게, 일단 만들어보세요. 그러면 다음이 보입니다."

 

PPT 만들기 싫어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고. 수정이 불편해서 에디터를 붙였고. 디자인을 모르니까 잘 만든 오픈소스를 가져다 썼고. 어텐션이 제한 자원이라서 분업 구조로 갔고. 재미있어서 계속 만들고 있고. 언러닝하는 사람이 결국 잘 쓴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흐름이 너무 자연스럽고, 동시에 너무 단단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저도 뭐 하나 더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이 "만드는 능력"이라면, 그건 강의로 키워지는 게 아니니까요. 직접 만들어봐야 길러지는 거니까요.

 

여러분도 오늘, 뭐 하나 만들어보시면 어떨까요? 거창한 거 아니어도 됩니다. 자주 하는 업무 하나를 자동화하는 Skill, 매번 쓰는 프롬프트를 정리해놓은 템플릿, 메모용 작은 도구 뭐든 만들어보시면, 보입니다.


🛠 동규님이 만드신 도구들

 

여러분이 만들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편하게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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