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레터] 매달 마지막 편지에는 두 개의 코너가 실립니다. [표기식의 계절 표기법]. 사진가 표기식의 카메라가 채집한 이달의 계절을 연재합니다. 그는 어디로든 떠나는 사진가입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될 수 있으면 PC의 큰 화면으로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임유청의 월말 산문]. 이번 달 찾아온 이야기를 씁니다.
[계절 표기법]과 [월말 산문]은 한 개의 단어를 공유합니다. [인터뷰&레터] 이달의 작가와의 시간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트랙에서 움직이며, 종종 마주칩니다.
『나단이라고 불러줘』와 보낸 5월. 이달에 채집한 단어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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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청의 월말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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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엔 무언가 도사리고 있다
대화
(사진을 보며)
나: “뒤에는 뭐가 잘린 거예요?”
사진가: “맞춰보세요.”
나: “흠. 과?”
사진가: “오!”
정치-이름-과
문득 성사되어 버린 정치와 치과의 랑데뷰에서 나는 이름과 인상의 상관 관계, 그 일치와 불일치가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칠 영향들, 농담이거나 농담이 아닌[1] 각종 에피소드의 시작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나단이 자기 이름을 짓는 광경. 책상 앞에 앉아서, 혹은 길을 가다가,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그리고 이름들. 그의 리스트에 있었을 소년을 위한 이름들. 혹은 나단의 사물함에 붙어 있었을 이름. 릴라. ‘나’의 이름이기 이전에 여자의 이름인 이름.
줄곧 이런 생각을 했다. 나를 설명하는 제1의 특성을 여성으로 하고 싶지 않다. 제가 여자는 맞아. 여자는 맞는데, 그거보단 내 다른 특성들로 사회와 만나고 싶다고. 그냥, 내가 여자인 것에 사람들이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왜 나로 인지되기 전, 여성의 카테고리 안에서 파악되고 평가되는가. 그 얘기 좀 그만해! 나 여자인 거 아니까. 하고 짜증내면, 자의식 과잉인가? 사회에 혼란을 주나? 한편 누군가 자신을 “나단이라고 불러줘”라고 요구할 때 너는 여자잖아, 남자 이름으로 부를 수 없어, 라고 금지하고 규율하는 것은 반대편에 있는 듯 하지만 같은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스스로 성찰하지 않지. 내 생각이 곧 사회의 구성 원리라는 자신감. 그 의심없음. 그 답답함. 평범함의 자의식.
이상한 이름
이상한 이름은 이야기.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 이야기. 이상한 이름은 사람. 있으라는 자리에 있지 않는 사람. 이상한 이름은 질문.지나치게 익숙한 지정들의 근원과 역사와 맥락과 효과에 대한 질문. 그것을 구성하는 물음표. 그 물음표의 가장 단호한 생김새.
만약 우리가 이상한 이름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면, 우리도 질문할 수 있다. 왜 그런 이름을(이야기를)(질문을)(물음표를) 썼나요. 물어볼 수 있잖아요. 모르면 물어봐야죠. 하지만 잘 묻는 게 좋겠죠. 망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고민하는 건 더 좋겠죠? 정치는 언제나 우리의 물음표에(질문에)(이야기에)(이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나는 매달린 그걸 붙들고 내 선 자리를 내려다 보며 말한다. 왜 모두가 지정된 카테고리에 속해야 하나. 우리는 우리의 카테고리 안에서 완전히 안전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는데. 마치 원전처럼. 원전 완전 안전….
농담
정치인 줄 알았는데 치과였던 이름들을 보며 떠올린 생각인데, 왜 언젠가부터 부모들은 ‘중성적인’ 이름을 선호할까? 앗 혹시 애가 커서 트랜지션 할 경우를 대비? 하하 농담입니다. 왜 이런 농담을 하냐고요. 아니 왜요 여기 그런 사람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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