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月 2日] 당신은 투명한 생김새의 동행

BL웹툰, 시와 소설, 자신의 번역가 호영 작가의 『전부 취소』

2026.06.02 | 조회 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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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레터]는 책과 영화를 아끼는  인터뷰앤드레터 님께 띄우는 텍스트 기획자 임유청의 ‘읽고 쓰고 공유하기’ 활동 일지입니다. 온라인 레터 서비스를 통해 텍스트 사이에서 건져 올린 문장과 생각을 소개하고, 인터뷰 모임으로 작가와 독자가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조직합니다. 질문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대화를, 멈춤 없는 글쓰기를 시작할 당신 작은 용기의 모티브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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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님, 

저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 6월의 첫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 

마감을 앞두고 제가 말합니다. 

읽고 쓰는 일이란 어찌나 즐거운지요! 

 

[인터뷰&레터]만 해도 그렇습니다. 5월엔 정확하게 호명하는 이야기(나단이라고 불러줘 절찬 판매 중!)에 관해 썼는데, 6월엔 모호해짐으로써 정확해지는 이야기에 관해 써야 합니다. 그렇다고 두 이야기가 다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같나요 그럼? 그럴 리가요. 그러니 이 어찌나 즐거운지요. 어쩐지 바깥도 흐려지고요... 비가 내리려는지… 그저 밤인지 아침인지가 다가오는 건지….

아무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알라딘 도서 정보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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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레터] 시즌2, 6월은

몸과 몸, 

글자와 글자 

그것이거나 그것이 아닌 것들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호영 작가와 그의 산문집 

『전부 취소』를 만납니다.


6월의 호영 작가/번역가. 사진을 클릭하시면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됩니다. (사진: 최요한)
6월의 호영 작가/번역가. 사진을 클릭하시면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됩니다. (사진: 최요한)

그래서 구독자  님, 

구독자  님은 한 책을 펼칠 때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아무래도 ‘재미’겠지요.

저는 재미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편집하거나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성취하고 싶은 재미란 무엇인가, 생각하고 부러워하고 실패하길 반복하는데요. 무언가 잘 팔리는 걸! 만들고 싶어!란 재미없는 마인드로 궁리하며 살펴본 인기 있는 재미란 요약, 파악, 설명이 명쾌한 아웃라인으로 그려지는 형태의 것들인 것 같습니다. 시대 불문인 거 같아요. 정교한 책들이 떠오릅니다. 서사를, 인물을, 감정을 완벽히 장악하는 작가의 솜씨와 그 결과물. 독자로 하여금 다함께 하나의 스크린을 쳐다보는 극장의 관객처럼 즐길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 극장을 나설 때 마치 재채기를 하듯 아 재밌었다! 하게 되는, 독자를 위한 완벽한 선물 상자들. 

한편 어떤 작가들은 여정으로서의 글쓰기를 독자에게 제안합니다. 이 글은 초대장일 수도, 길에 붙인 대자보일 수도, 우연히 흘린 일기장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수령하거나 그 앞에서 서거나 여는 행위로 작가의 때론 거침없고 자주 머뭇거리는 여정, 어쩌면 방황, 혹은 그저 붙박혀 있음에 함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투명한 생김새를 한 동행이 됩니다. 당신은 투명해서 무엇이든 통과하거나 지나칠 수 있습니다. 이 글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질 수 있습니다. 혹은 깃들 수도 있습니다. 책이나 작가에게 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씌인 우리가 문득 독자가 작가인지 작가가 독자인지 헷갈리는 동안 우리는 한층 투명해지거나, 스며들거나, 혹은 멀어지려 하거나, 그랬더니 갈고리처럼 어떤 문장들을 붙들게 될 손가락 같은 게 돋아나고 있음을 불쑥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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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트랜스젠더 번역가

『전부 취소』 는 호영 작가의 산문집입니다. 그는 SNS에 자신의 책을 “요약하자면 ‘트랜스젠더 번역가’의 이야기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틀린 말이 있다면 ‘요약하자면’일 것입니다. 틀린 말? 모순된 말이라고 바꿔쓰겠습니다. 감히 작가의 설명에 토를 달다니. 그럼에도 저 문장은 하고 싶은 말보단 독자에게 닿기 위해 했어야만 했던 말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

만약 커밍아웃을 했다면, 회사 내 대다수의 사람에게 그 소식은 커피 마시면서 언급할 가십거리 정도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에게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수식하게 될 것이었다. 저기 트랜스젠더가 발표한다. 트랜스젠더가 회의한다. 트랜스젠더가 업무 지시를 내린다. 여기서 끝난다면 다행일 테다. 내가 트랜스젠더이고 따라서 정신병자이므로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주시해야 한다거나, 내가 가진 자질이나 의사결정의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회사 안에서, 나아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 46쪽 ‘더는 미룰 수 없을 때’ 중에서

 

*

저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에요.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요. 근데 왜 호르몬 하는 거예요? 그냥 사는 사람도 많은데. 더 애매해지고 싶어서요. 매끈하게 구분되고 싶지 않아서요. 왜 일부러 어렵게 살아요? 그게 제가 정확해지는 방법이어서요.  

-31쪽 ‘정확한 사랑’ 

 

*

내가 나를 트랜스젠더로 부르는 것은 자신의 삶과 신체를 창조의 대상으로 삼은 조물주들, 투명한 레이저가 가득한 사무실을 떠들썩한 놀이터로 만드는 익살꾼들,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위대한 실천가들의 계보에 나를 기입하겠다는 뜻이다.

-207쪽 '트랜스섹슈얼 계보' 

 

『전부 취소』는 요약하거나 구획할 수 없는 것을 요약하거나 구획하려는 강력한 관성에 피로감(간혹 즐거움)(놀려줄 거리를 찾은)을 감추지 않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단일한 형태의 글도, 에피소드간의 끈끈한 연결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제각각의 의도와 형태를 가진 글의 집합입니다.  

요약되기보다 정확해지기. 그럼에도 요약되어야만 닿을 수 있는 나의 외부.

이 책은 그 사이에서 진동하며 정확함을 향해 들쭉날쭉하고 뾰족하거나 뭉근하게 나아가는 글자들입니다. 회고록이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 영화와 책, 언어를 탐구하는 문화 비평 에세이, 일기이거나 시일 수도, 희곡이거나 소설일 수도 있는 모습으로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 유학 생활, BL웹툰과 노래 가사, 소설과 시를 오가는 번역 일, 머나먼 동족과 가까운 비인간 등 그 당시 ‘호영’을 구성하던 무수한 ‘호영’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런 거 재밌어하실 거 같아서 보내드려요.”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일은 한 번역가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거 재밌어하실 거 같아서 보내드려요.”

오랫동안 흠모해 온 아티스트 이랑 님에게 가사 번역문 초고를 보내며 나는 이렇게 썼다. 이메일에 링크를 걸어둔 구글 문서에는 한국어 원문과 함께 여기저기 메모가 잔뜩 달린 영어 번역문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이 영단어는 어떤 인상을 주는지, 이 표현은 의역이지만 왜 이 노래와 어울리는지 번역가로서 선택의 이유를 풀어쓴 메모도 있었지만, 내가 아직 이 원문을 다 해석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댓글도 여럿 있었다. ‘여기 나오는 울음은 어떤 울음이에요?’ ‘이 단어 대신 OO나 OO도 고려하고 있는데 어떤 걸 선호하세요?’ 같은 질문처럼. 이 정도로 번역 과정을 작가에게 드러내는 건 처음이라, 메일을 보내기 전까지 한동안 고민했다.

  • 172쪽 ‘라이너 노트: 번역이랑’

 

그는 지금 ‘구글 링크’를 열고 가수의 가사를 번역한 ‘번역문’에 ‘여기저기 메모를 잔뜩’ 다는 중이고, 우리는 투명합니다. 투명한 우리는 책상 앞에 앉은 번역가의 옆에 스툴 하나 바짝 끌어다 앉았습니다.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자리를 비우지 않았어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그 메모들을 하나씩 열어 살펴봅니다. 번역문의 메모들은 느낌표이고 한 단어이거나 긴 각주입니다. 설명이고 주장이며 질문이고 소감입니다. 하나씩 떼어보면 수수께끼지만 모두 열리면 비로소 노래가 되는 번역가의 메모처럼, 『전부 취소』또한 한 사람은 구글 링크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은 메모의 집합임을 자기의 존재로써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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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trans!

(...) 수업을 훼방놓는 아이에게 선생님은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라는 숙제를 내주고, 아이는 꾸역꾸역 조사를 하면서 사전 속 모든 단어는 사람들끼리 약속해서 정한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길을 걷다 땅에 떨어져 있는 반짝이는 펜을 보고 앞으로는 펜을 ‘프린들’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는다. (...) 길 건너로 논과 밭이 보이는 침실 창틀에 올라앉아 종일 이 책을 읽었던 나는 빨리 다른 아이들에게 우리가 언어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펜이 꼭 ‘펜’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같이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어떤 이름이든 바꾸고도 남는다는 것을. 

-275쪽 ‘트랜스 트랜스’ 

 

명쾌해지라는 명령에 구체적으로 응답할수록 명령한 자는 응답하는 이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들어보세요,

가족과 주고받는 사랑은 서로의 성에 차지 않습니다. 또래 집단 사이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해야' 했고요. 직장 생활은 힘들죠. 연애는 어렵습니다. 몸은 나를 위반합니다. 같이 사는 일이란 고양이든 인간이든 아무튼 상대가 나를 깨문다는 뜻입니다. 일은 때때로 행복하고 우리는 지치거나 노련해집니다. 더없이 범상한 사랑과 모나지 않은 갈등의 모습들.

다만 이번엔 이것들이 '호영'이라는 몸을 통과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한 것으로 만드는 몸일까요, 이것을 비범이라 명명하는 몸의 바깥일까요. 혹은 책이라는 몸에 씌인 투명한 독자들일까요? 

 

블로거 1: 외모만 보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판단하지 말란 말이야 이 바보 멍청이들아!!!

블로거 2: 너나 그렇게 해라… 나는 딱 보면 내가 무슨 젠더고 누구랑 어떻게 섹스하는지 알아보라고 이러고 다니니까.

(중략) 나는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블로거의 분노에 함께 봉기하고 싶어졌고 두 번째 블로거의 반론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무릎을 쳤다. 아무리 ‘탈이분법’적으로 젠더를 표현하는 사람들이더라도 결국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꾸미고 있었고, 그건 나의 지향점이기도 했으니까. 이 두 입장이 꼭 대립되는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닫기까지 또 한참이 걸렸다. 

-262~263쪽, ‘트랜스 트랜스’

 

 

나에 관해 쓰기

너무 많이 쓰기. 질릴 때까지 설명하기. 그러다 설득을 포기해버리기. 답을 찾을 때까지 쓰기. 다시 잃어버릴 때까지 쓰기. 감상에 젖어버리기. 나도 모르게 미화하기. 과장하기. 화내기. 울기. 웃거나 놀리기. 쓰고 미안해 하기. 쓰지 못해 억울해 하기.

나에 관해 쓰고 읽히는 행위는 온전히 독자를 위해서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닌 이상한 추동입니다. 그리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쓰는 글과 책. 그런 쓰기에 누가 어떤 말을 붙일 수 있나, 라고 쓰고, 취소합니다. 이 세상이 한 사람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길 그친 적이 있나요? 그러니 차라리 직접 쓰는 사람에 저는 찬성, 환영, 동의, 아무튼 모든 형태의 긍정으로 응답하려 합니다. 

 

구독자 님께 붙은 메모들도 궁금합니다.

몸, 글자, 쓰기, 옮김, 망설임.

이런 말들이, 혹은 말하지 않는 것들이

구독자 님의 쓰기와 읽기로 이어지는 지점이 있다면,

알아가고 싶다면,

6월에 함께 대화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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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몸과 몸,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사람

- 호영 작가를 인터뷰하다. 

날짜와 시간: 6월 27일 (토) 오후 2시

장소: 오드컨선

 

* 구글폼을 제출하신 후 입금 완료해주시면 자동으로 신청 완료가 됩니다. (매진 시 구글폼 자동 종료) 모임 참석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2~3일 내에 메일로 안내드립니다. 

 


🎧NEWS! 

 

  1. [서울형책방x그래서]와 함께하는 <서울컬쳐클럽>, 두 번째 모임은 <대형 서점엔 없는 내 마음들>을 주제로 독립출판, 독립서점, 북페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참가 신청은 여기서
  2. 일주일 언트렌디 문화생활 팟캐스트 [까마귀의 모음: 스몰톡], 21화에는 (술꾼계의) 대문호 미깡 작가님을 모시고 깔깔깔 스몰톡합니다. 나단이라고 불러줘』마지막 300권을 위한 여정에 동참해주셨어요. 6월 4일 목요일 밤 업데이트!
  3. 스토리와 창작, 성장 서사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완전 도움 완전 재미!
  4. FTM 청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그래픽노블『나단이라고 불러줘』를 구매하시면 권당 7천원을 지정하신 단체에 기부합니다.  자세한 내용과 구매는 상어출판사 홈페이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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