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레터]는 책과 영화를 아끼는 구독자 님께 띄우는 텍스트 기획자 임유청의 ‘읽고 쓰고 공유하기’ 활동 일지입니다. 온라인 레터 서비스를 통해 텍스트 사이에서 건져 올린 문장과 생각을 소개하고, 모임으로 작가와 독자가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조직합니다. 질문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대화를, 멈춤 없는 글쓰기를 시작할 당신 작은 용기의 모티브가 되고 싶습니다.
구독자 님,
잠깐.
지금 머릿속으로 좋아하는 배우 다섯 명을 떠올려보세요.
즉각 떠오르는 이름이 있으신가요?
이어서.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 다섯 명을 떠올려보세요.
문득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두 질문에 대한 구독자 님의 답은 같은지 다른지,
같다면 얼마나 같은지, 다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좀 더 잘 좋아하고 싶어서.
자기가 질문해 놓고 어쩌라고… 싶은 답이긴 하지만, 저는 어떤 배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물론 무수히 많은 배우를 좋아합니다. ‘이상형 월드컵’ 같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배우로서 온 마음과 몸을 내던져 해내는/해내고자 하는 연기에 대해서라면, 갑자기 그들이 강 건너 안개 속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종종 영화에 관한 글을 씁니다만, 그럴 때 가능하면 피해가는 부분이 ‘연기력’입니다. 극 중 캐릭터에 관해서라면 쓰는 내내 이야기할 수 있어도 그 캐릭터를 완성한 연기에 관해서라면 제 언어는 반드시 길을 잃고 맙니다. 배우를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는데, 그가 얼마나 잘했기에 내가 울고 웃고 있는지 명쾌하게 표현하기 참 힘듭니다. 제가 보낼 수 있는 찬사라곤 단 한마디. “와, 연기 진짜 잘한다.” 그밖에는 경남 사투리를 얼마나 완벽히 소화해 내는지 정도인 것입니다….
*
모호해서 더 분명하게 아름다운
영화계에서 배우에 관한 글을 써야 할 때 반드시 찾게 되는 이가 있다면 백은하 배우 연구소 소장일 것입니다. 활발하게 커리어를 이어가던 그가 홀연히 공부를 하러 영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후 어떤 활동을 하실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의 다음 행보는 ‘백은하 배우 연구소’였습니다. 액톨로지(배우학) 연구자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방송, 인터뷰와 기고, 영화제 심사위원, 출판, 유튜브 등을 바쁘게 해나갑니다. 그 다채로운 업무 스펙트럼 한 가운데에는 연구의 결과물로서의 글쓰기, 출판이 있습니다. 마스터 배우의 연기 인생을 집대성한 '액톨로지 시리즈' 『배우 이병헌』, 『배우 배두나』, 『배우 박해일』, 다음 세대 배우들의 리스트인 '넥스트 액터 시리즈' -박정민, 고아성, 안재홍, 전여빈, 변요한, 고민시, 최현욱-이 모두 백은하 배우 연구소에서 출간한 책들입니다.
『배우 박해일』, 그리고 백은하 배우연구소


저는 『배우 박해일』을 공들여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출간 당시 백은하 작가께서 도서 소개 글 청탁을 해주셨던 덕이었는데요, 책을 꼼꼼히 읽는 동안 ‘배우’와 ‘연기’라는 이 모호해서 더 아름다운 예술과 예술가로 통하는 길을 몇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길을 거니는 일은 때론 백은하 작가의 보물찾기에 동행한 듯 흥미진진했고, 때론 박해일 배우의 담담한 산책에 따라나선 양 고요하게 즐거웠습니다.
『배우 박해일』은 크게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박해일 연기에 대한 수많은 동료들의 증언을 배우 연구자 백은하가 취재했습니다. 박찬욱, 탕웨이, 김한민, 임순례, 김고은, 박근형, 백현진 등 예술의 동료들이 기꺼이 박해일과의 에피소드를 나눠줍니다. 전영욱 스틸작가, 정주연 스타일리스트, 송종희 분장감독은 외모 평가가 아닌 연기하는 몸에 관해 보고 느낀 것들을 말합니다. 박해일 목소리 연구,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 분량 제한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은 박해일X백은하 인터뷰도 놓칠 수 없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연구이지만, 마치 잘 만든 잡지처럼 어느 페이지를 펴도 금방 집중하게 됩니다. 박해일 배우의 영화 여정을 망라하는 듯 오래된 필름 카메라 사진부터 <헤어질 결심>의 비하인드 컷까지 풍성합니다. 신연철 일러스트레이터와 정멜멜 포토그래퍼의 박해일 배우에 대한 특별한 해석도 재미의 한몫을 단단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비트!

[인터뷰&레터]의 10월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다시 집어든 『배우 박해일』에서 새롭게 눈에 들어온 건 ‘BEATS(비트)’ 챕터입니다. ‘비트’는 ‘연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행동의 조각’으로, 스타니슬랍스키가 정의한 '연기 행동의 최소 단위'입니다. 액톨로지 시리즈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을 신, 숏 대신 ‘비트’로 분석하며, 배우가 표현하는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합니다. 목소리의 높낮이, 말끝의 길이와 몸과 눈동자의 방향이 어떤 효과를 이끌어내는지 추적하는 글을 읽으며 배우의 육체성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니라 연기 도구로서의 몸에 관해 말입니다. 배우는 눈물, 미소, 얼굴의 미세한 주름부터 크고 작은 몸짓, 때론 솜털 한올까지 총동원하여 수많은 사인을 발신하고 관객은 그 신호를 기쁨과 슬픔, 우울과 분노 등의 형태로 수신합니다. 이것이 연기의 묘미일까요? [인터뷰&레터] 10월 모임에서는 모임 속 미니 코너로 백은하 소장님과 함께 영화 장면 속 배우의 ‘비트’를 뜯어보는 시간도 가져보겠습니다.
아주 깊이, 아주 멀리

책을 통해 박해일 배우를 말하는 협업자의 목소리들은 참 살뜰하고 다정합니다. 박해일 배우에게서 귀감이 되는 선배의 태도를 배웠다는 김고은 배우, 그와의 묵묵한 교감을 통해 서래로서 좀 더 확장할 수 있었다는 탕웨이 배우, 실존하는 박해일로부터 허구의 장해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는 박찬욱 감독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내밀한 성품이 배우라는 외부와 연결되는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역할이라는 가면을 썼을 때조차 그 일부는 반드시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치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연기란 허구와 실존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가는 일 같습니다. 그 경계에서 피고 지는 수많은 미스터리에 영화와 관객이, 배우 그 자신조차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요?


10월 모임 - 백은하 작가와 함께

[인터뷰&레터] 시리즈: 시즌1 🎬영화와 책✍️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작가와 독자가 함께 하는 소규모 [인터뷰&레터 모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2년의 인연, 1년 4개월간 12번의 만남, 144시간의 인터뷰”로 쌓아올린 『배우 박해일』에 관해 백은하 배우 연구소 소장과 만납니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배우연구소 사무실로, 상세 주소는 신청자들께 개별적으로 전달 드릴 예정입니다.
- 연기라는 예술, 박해일이라는 배우
- 한국 영화라는 장르
- 인터뷰라는 대화
- 여성 영화인/작가/기획자로서의 일과 생활
- 출판인과 유튜브 크리에이터
- 베니스, 토론토 영화제 비하인드 스토리
10월 모임에서는 백은하 소장을 관통하는 모든 주제를 환영합니다. 『배우 박해일』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액톨로지 시리즈, 넥스트 액터 시리즈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책에 관한 질문도 가능하니, 많이 신청해 주세요.
INFO!
모임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1부: 인터뷰
모임의 1부는 ‘인터뷰’라는 타이틀의 북토크입니다. 사전에 제출한 참가자들의 질문이 그날 북토크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독자와 책, 독자와 작가의 드물고 귀한 만남을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기획입니다.
👩💻2부: 레터
모임의 2부는 ‘레터’라는 타이틀로 진행됩니다. 가볍게 기록하는 정리의 시간, 작가와 독자가 서로를 알아가는 공유의 시간을 갖습니다.
🧵모든 참여자께 레터북을 증정합니다.
[인터뷰&레터] 월별 주제에 따라 제작되는 워크북입니다. 사전에 취합된 질문을 키워드별로 묶고, ‘인터뷰’ 시간에 오간 이야기를 마인드맵처럼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레터’ 시간을 위한 빈 페이지도 포함됩니다. 이날 함께 나눈 시간과 통찰, 영감을 한 권으로 묶어 보관할 수 있는 책입니다.
이번에도 10인 안팎의 소규모 인원으로 모임을 진행합니다. 자기만의 질문을 반드시 제출하셔야 하구요, 질문이 어색하거나 어려우시다면 두 번째 레터로 소개될 '질문 구름'을 통해 무엇을 듣고 싶은지, 혹은 무엇을 털어 놓고 싶은지 고민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한 가지 홍보🌛
9월의 모티브였던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독서 모임을 지식 공동체 그믐에서 열어보았어요. 제가 모임지기고요, 처음 해보는 온라인 독서 모임이지만 이미 재밌어요. 관심 있는 분들 많이 참여해주세요. 도서 증정 이벤트도 있답니다!
이렇게 시월의 첫 번째 레터를 마무리합니다.
이번 달에도 자주 만나요.
여기와 저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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