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재재상점]
인터뷰를 위해 경기상상캠퍼스에 갔을 때는 8월의 뜨거운 볕과 짙은 초록 속에서 매미가 울어 대고 있었다. 과거 서울대 농업 생명 과학 대학 농원예학관 건물은 생활1980로 이름이 바뀌고 손살이공방 입주 단체들이 자리하고 있다. 손살이공방 1호 재재상점에서 인터뷰이들을 만났다. 보통 인터뷰를 할 때는 사전에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질문을 준비해서 간다. 하지만 재재상점 창업가들에 대한 정보는 학부모 공동체로 만나 창업을 했다는 정도였다. 함께 창업을 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일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어떤 모습인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했다. 개개인의 이야기보다 함께 일하는 공동체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재재상점은 ‘다시 쓰고, 거듭 쓰다’라는 뜻을 가진 제로 웨이스트 숍이에요. 쓸수록 가치 있는 물건들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이 재재상점의 모토입니다. 저는 재재상점의 쉼표라고 하고요. 옆에는 랄랄라이고 오늘 참석하지 못하신 별사탕님까지 세 명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개를 부탁하자 유쾌한 목소리로 서로를 별칭으로 부른다며 자신들을 그렇게 불러 달라고 했다. 쉼표, 랄랄라, 별사탕이라는 닉네임만 들어도 함께 일하면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동업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극구 말리고 본다. 그런 통념을 깨고 함께 하는 모습이 부러운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 세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쉼표) 저희는 수원 칠보산 자유 학교 학부모예요.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생일 때 만났는데 어느덧 랄랄라 님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별사탕 님 아이는 졸업하고 유학 중이네요. 학교 수익 사업을 위해 모인 작은 학부모 공동체 ‘작당’에서 인연이 되었는데요. 작당에는 음식을 잘하는 사람,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 사람,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등 다양한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손으로 만들어 쓸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고 배웠어요. 면 생리대도 같이 만들어 쓰고 음식도 같이 만들어 나누고 마을 사업도 같이 했어요. 제로 웨이스트라는 용어도 쓰지 않을 때부터 오랜 시간 함께 친환경적인 활동을 해 온 거죠.
- 학부모 공동체로 만나서 함께 사업까지 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랄랄라) 작당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공간이 너무 필요한 거예요. 하지만 학교 수익 사업으로는 상가 임대는 꿈도 꿀 수 없었어요. 경기상상캠퍼스를 알고는 있었지만 사업자도 있어야 하고 상근해야 하는 조건이 직장인이나 아이 키우는 주부에겐 부담이 되니까 지원하지 않았죠. 그런데 우연히 별사탕이랑 쉼표랑 셋이 상상캠퍼스 그루버(입주 단체) 지원을 제안 받고 보러 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우리 셋이 한 번 해 볼까? 우리가 먼저 시작해 본 다음에 작당 친구들도 같이 일할 수 있도록 해 보자! 그렇게 셋이 사업자를 내서 창업을 하게 된 케이스예요.
작당에서 마을 사업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지원을 받아서 일을 해 보는 건 좋은데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기에는 제약이 있고, 영역을 확장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어요. 상상캠퍼스에 입주하면 3년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동안 돈을 못 벌더라도 마을 사업에서 눈치 보며 못 했던 것, 꿈만 꾸던 것을 원 없이 해 보고 3년이 됐을 때 성과가 없으면 흩어지기로 하고 사업자를 낸 거예요. 쉼표가 기꺼이 대표직으로 많은 책임을 맡아 줘서 2021년 3월에 함께 창업을 하게 된 거죠.
- 창업하고 1년 반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하셨나요?
(랄랄라) 저희가 월경에 대한 행사를 하고 싶었는데, 상상캠퍼스 연계 사업을 통해 영화도 만들고 연령대 별로 인터뷰도 하고 완경 파티, 초경 파티도 정말 크게 하고 월경 토크 쇼, 전시도 했어요. 그리고 미술을 하는 별사탕이 재능 있는 청소년 친구들이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같이 작업해서 재재상점에 전시 판매할 수 있도록 섹션 하나를 만들었어요. 그 친구가 그린 그림으로 굿즈를 제작하고 연말이 되면 여기서 전시를 해서 팬들과 함께 토크 쇼 형식의 파티를 열기도 했죠. 그 사이에 뭔가 많이 했네요.(웃음) 기본으로 하는 일은 직접 만들거나 일부 들여오는 제로 웨이스트 제품 판매 외에도 유치원부터 노인 복지 회관까지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외부 기관에서 진행해요.
- 단시간에 규모 있는 일까지 많은 일을 하셨어요.
(쉼표)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세 명이어서 창업이란 걸 할 용기도 생겼고요. 각자 재능이 다 달라서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고, 의지하고, 부탁하면서 함께 해 나가는 과정이 있어 많은 일들을 해냈죠. 혼자였으면 정말 못 했을 것 같아요.
- 창업을 하고 일의 규모나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쉼표) 마을 사업이나 학교에서 활동할 때 만나는 사람들은 이미 친환경적인 삶에 관심이 있고 친환경적인 물건을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함께 배우고 아나바다도 참여하는 분들이었어요. 창업을 하면서는 제로 웨이스트 활동에 대해 모르는 분들도 굉장히 많이 찾아 주시고, 단체에서 우리를 불러 주기 시작했어요. 창업 초반에는 손님이 오시면 거의 재재상점 안을 투어하며 설명을 해 드려야 했어요. 모르는 물건이 많으니 다 궁금해하셔서 도슨트처럼 일일이 다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많이 알고 오세요. 재재상점을 알고 찾아오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기업이나 국가 전반적으로 환경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제로 웨이스트가 많이 알려져서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수입이 없어서 상상캠퍼스의 교육, 연계 사업으로 유지를 했었는데, 지금은 선물 세트도 많이 구매하시고 친환경 교육 키트도 많이 찾아 주세요. 제로 웨이스트 제품을 예전엔 관심 있는 소수만 찾았다면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제로 웨이스트의 영역이 확장된 것이 달라진 점이예요.
- 외부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랄랄라) 환경 교육을 하고 있어요.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1인칭 시점에서 환경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해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작은 습관 하나를 바꿔 환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라 생각해요. 저희가 하고 싶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들기, 미술 워크숍을 얹어 가는 수업을 해요. 유치원에서부터 노인 복지 회관까지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학교와 기관에서 요즘에 요청을 많이 하고 있어요.
- 3년 후에 안되면 접겠다고 하셨는데, 점점 수익도 생기고 3년 후를 위한 다른 계획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쉼표) 이제는 “늙을 때까지 해 보자! 정말 아파서 못할 때까지 하자.”라는 말을 하고 있어요. 싸우지만 말자.(웃음)
- 세 분이 다툰 적은 없나요?
(쉼표) 다투기도 하죠. 오해도 하고 일이 많으면 예민해지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해결을 잘 해 왔어요. 다들 중간 역할을 잘해 주세요. 저는 일을 하다 보면 쉬지도 않고 막 달리는데 누군가는 “너 좀 나갔다 와~”, “산책하고 와.”라고 브레이크를 걸어 줘요.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한 공간 안에서 같이 하는 일이 있고 각자의 영역에서 하는 일이 있어요. 바빠서 눈앞의 것만 신경 쓰고 있을 때 안에만 있으면 정체된다고 워크숍 가서 배우러 다니라고 북돋아 주는 역할을 랄랄라와 별사탕이 잘해 줘요. 넓게 보시는 두 분 덕분에 어우러져서 잘 지내고 있어요. 혼자 하면 고민을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데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에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평생 같이 가자고 말하고 있어요. 지금 생각으로는 우리가 건강하고 재재상점의 규모가 커지든 현상 유지되든 공간이 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 주면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로 웨이스트는 환경에 대한 이슈가 시급해서 생겼고 평생을 지속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상상캠퍼스는 초기 창업자들에게는 매우 좋은 여건이라, 나갔을 때 어려움을 위해 돈도 모으고 있고 어떤 장소가 좋을지 고민하며 조금씩 대비하고 있어요. 여기서 3년이라는 시간의 반이 지났으니 남은 시간 동안 나가서도 잘 꾸려 나갈 수 있게 준비하고 싶어요.
- 재재상점이 ‘작당’이라는 커뮤니티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도 영향을 주고받나요?
(랄랄라) 재재상점을 만들 때 모토가 자연과 사람에게 이로운 상점이 되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시장을 개척하고 사업이 커지면 우리처럼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파이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뜨개 장인 할머니와 청소년 작가와 함께 하는 것도 그런 상생의 일환이고요. 그런데 정말 좋았던 건 ‘작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엄마들이 저희가 나와서 일을 하는 걸 보고 꿈틀거리는 거예요. 모임이 있는데 그분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배우러 다니신다고 모임을 못 나오고 계세요.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 나눠야지 했는데, 그들 스스로 뭔가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그때 우리가 나오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당이 우리를 많이 도와줬어요. 일이 많으면 도시락을 싸와서 같이 먹으며 포장도 해 주고요. 우리가 뭘 많이 알겠어요. 저희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들이고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이 업이 된 거잖아요. 서로가 힘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 창업을 하고 가정생활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쉼표) 아들이 밖에 나가면 “저 재재상점 아들이에요.”라고 해요. 신랑이 가게를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아들이 “아빠가 어디서 식당을 해요.”라고 했는데 이제는 “재재상점 알아요?”라고 물어요.
(랄랄라) “우리 엄마 대푠데!”(모두 웃음)
(쉼표) 학교에서도 연계해서 친환경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가서 샴푸바 만들기 수업도 하고 선생님께서 비건 쿠키 만들기도 기획하고, 동물 복지나 제로 웨이스트 관련 교육 등 이미 아이들도 잘 알고 있어요. 일반 학교와 달리 엄마 아빠들도 다 실천하고 계시고요. 아이 입장에서는 항상 집에 오면 엄마가 있었는데 이제 엄마랑 늦게 같이 들어오는 것이 달라졌지만 잘 적응하는 것 같아요. 너무 어리지 않아서 다행인 부분인데요. 계속 일을 이어 온 맞벌이 가족들을 보면 ‘아이가 너무 어릴 때는 정말 어렵게 아이를 키웠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새로운 일을 찾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용기를 못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랄랄라) 나이가 많다, 무얼 시작하기에 빠르거나 늦었다 등 사회적 통념들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46살에 시작했는데, 내가 너무 늦었나? 싶어 마음이 조급했어요. 그런데 1년을 일하고 보니 이 나이가 창업하기 좋다고 느껴요. 내가 좀 모른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고 배울 수도 있는 마음의 평안함이 있어요. 무언가를 일궈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없고 어디 나가도 쫄지 않을 수 있는 담대함이 있어요.(웃음) 뒤에서 쫓아와도 느긋하며, 앞으로 치고 나가도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지.’ 하는 여유로움도 있고요. 20대, 30대일 때는 직장도 돈을 따라갔는데, 늦은 나이에 창업을 하게 되면서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어요. 돈을 벌어서 취미 활동에 쓸 생각만 했지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 못 해 봤는데 말이죠.
망설이지 말고 빨리 시작하라고 말해 드리고 싶어요. 지금 나이가 딱 좋아요.
(쉼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요즘에 창업을 지원해 주는 곳이 많아요. 이전에는 청년층에 지원이 몰려 있었다면 요즘에는 연령대가 넓어졌거든요. 지역마다 창업 지원 센터가 있고 지원해 주는 공간을 찾으면 큰돈 들이지 않고 작게 시작해 볼 수 있어요. 수익도 조금씩 늘어서 월급을 조금씩 가져갑니다. 3~4개월은 도시락 싸서 다니며 일만 하다가 그 이후부터 수익이 났죠.
- 나에게 커뮤니티란 어떤 의미인가요?
(랄랄라) 작당은 나에게 숨통이다. 대안 학교는 일반 학교와 완전히 다른 곳이라 처음에는 그 문화에 익숙해지기가 힘들 거라 생각했어요. 밀접한 공동체거든요. 아이들과 연결된 곳이라 여기서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등 궁금했어요. 그런데 커뮤니티라는 건 내가 관심 있고 하고 싶은 일, 가치가 맞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대화가 통해서 숨통이 트였어요. 자연스레 일을 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많이 배웠어요. 아이 키우는 데도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고 환경 문제에 관한 것도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쉼표) 제2의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작당이 없었다면 이런 삶을 아예 몰랐을 거예요. 창업의 기회, 배움의 기회 또한 없었을 거고요. 새로운 환경에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고 두드려 보세요.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도 관심사이고 함께하면 힘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 관심 있는 커뮤니티에 주저하지 말고 문을 두드려 보세요.
인터뷰를 마치며
쉼표, 별사탕, 랄랄라는 제로 웨이스트 제품 판매를 넘어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 문화를 전파하고 있었다. 창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지향하는 가치는 같고 각자의 재능은 다 달라서 잘 되겠다고 응원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자신이 잘하는 일에 대한 말은 아끼고 대신 내가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가 채워 주고 서로 의지한다며 함께여서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서로에 대한 믿음과 감사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함께 잘해 나간다는 건 동지가 성장하도록 도우며 자신도 같이 키우는 모습이라는 걸 재재상점 3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겠다고 하면 그건 환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취미가 업이 되면 싫어질 것 같아서 취미는 취미로 남기고 싶다고도 한다. 하지만 취미가 일이 되고 늦은 나이에 창업을 하게 되면서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하는 랄랄라의 이야기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것 같다. 혼자가 막막하다면 함께 시작할 수도 있고 비슷한 업을 하는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서로 응원하고 도우며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는 없었지만 다른 공간에서 별사탕을 만나 대안 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대안 학교를 선택한 그녀들은 아이들이 사교육보다는 행복하고 자유롭게 크기를 원했다. 부모들도 아이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행복한 삶을 산다고 했다. 그 속에서는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자라는 공간이라고 했다.
대안 학교가 모두에게 답은 아니지만 대안적인 삶을 위해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사는 부모들이 모였기 때문일까? 여느 아이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길을 찾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자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끝까지 함께 하자며 늘 곁에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나도 그런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게 된다.
인터뷰어 이주영
라이프 아트 북 살롱 <아티스트웨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과 예술을 매개로 삶이 예술이 되는 콘텐츠를 기획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편견을 하나씩 부수어 나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응원이 필요할 때 곁을 내어 줄 수 있는 삶에 관심이 갑니다.
저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인터뷰로 묻고 글쓰기로 답하다》,《다시, 시작합니다》, 《1YEAR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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