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동안 무탈하셨는지요? 며칠 전 한 차례 비가 내린 뒤 말간 하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교차가 큰 탓에 공방과 집 오가는 요즘 저는 대체로 롱패딩을 챙겨 입습니다. (요즘이라고 하기에는 겨울 동안 롱패딩과 저는 한 몸과 같았기에 머쓱하네요. 종일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는 날도 있는걸요!) 따수운 게 최고예요. 모쪼록 건강 챙기자고요! 요즘 허리와 무릎이 동시에 아파 옴짝달싹 못 하는 제가 할 말 아니지마는.
본래 이번 주 글감은 '계절'이었습니다. 잔잔하게 동서남북 흘러가는 이야기를 쓰던 중 불쑥 알림 울리더라고요. 지난주 전해드렸던 레터에 댓글 달린 것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댓글의 주된 내용은 위로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글 읽어주시는 분들께 내가 무언가 드리려 했던가? 그렇다면 그건 위로였나? 내가 그런 걸 줄 수 있는 사람인가?' 하고요. 면구하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교훈이나 위로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애초에 그런 재능도 없고요. 그럼에도 그렇게 여겨주신다면 갑절로 감사한 일입니다. 쓰는 건 저지만 읽어주시는 분들로 인해 글이 완성돼요. 제각각 느끼시는 것들로 제 글은 채워집니다. 든든한 동료가 생긴 기분이군요.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8년 전이었어요. 취미로 블로그에 적던 것에 출판이라는 타이틀 단 것이지요. 독립출판으로 몇 권의 단행본을 만들었는데, 그중에는 <아빠와 나>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어요. 책의 부제는 '마흔일곱 아빠와 스물일곱 나'이었더랬죠.
겨우내 만들어 봄 무렵 인쇄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봄가을이면 광화문 세종 문화회관 뒤뜰에서 열리는 마켓에 자주 나갔는데요. 그곳에서 <아빠와 나> 본 어르신께서 "아버님이 일찍 자네 낳으셨나 보네."라고 하셨지만 그렇지는 않았고, 마흔일곱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였습니다. 더 이상 나이 먹지 않는 아빠와 서서히 아빠의 나이에 다가가는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좋아해 줬어요. 그리고 글 읽은 사람들은 공통으로 제 이야기를 통해 본인 아버지를 떠올리시더라고요. 저는 그것이 이야기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개체가 되는 거예요. 저는 저의 이야기로 화두를 던질 뿐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건 독자의 몫이었죠.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앞서 제 글이 완성되는 순간과 매개체로 숨을 이어가는 이야기. 맥락이 같지요? 이걸 기조를 잘 유지했다고 해야 할까요, 성장이 더디다 해야 할까요?
<아빠와 나> 책의 머리말에 쓴 한 단락을 적어볼게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걸 보고 듣고 싶은 걸 들어요. 이 순간 느끼고 싶은 걸 느끼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최근에는 여기저기서 그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셔서 이렇게 작업 이어갈 힘이 생기시나 봐요' 같은 이야기요. 그러면 저는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할 줄 아는 걸 해요' 같은 답을 합니다. 곱씹어 보면 좋지 않은 답이었어요.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하고요. '하지만 나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기 위해 있는 사람은 아닌데!' 싶다가도 '굳이 그들 마음 흔들 이유는 또 뭐야' 싶기도 합니다. 전생에 저는 갈대였을까요?
오래전 친구와 대화하던 중 '재능'에 관해서 말한 적이 있어요. 당시 우리는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남들보다 덜 노력해도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저는 스스로 맛있게 잘 먹는 것이 재능! 이라고 말했습니다. 웬만하면 불평불만 없이 정말 잘 먹거든요.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 셈이지요. 지금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행복을 잘 느끼는 것이 재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재능을 쉽게 여기면 스스로 꽤나 멋진 사람이 되는 기분입니다. 모든 게 어려웠다가도 이내 행복해지기도 해요. 여러분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나요?
덧+) 최근 생일 때 받은 망고 한 박스가 어제부터 말랑말랑해져서 먹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이렇게 망고를 잘 깔 줄은 상상도 못 한 거 있죠. 또 하나의 재능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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