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담이 통신] 처음

당신의 처음은 어땠나요?

2024.03.08 | 조회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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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담이 통신

목수의 아무런 이야기

안녕하세요. [작담이 통신]의 통신원 김용홉니다.

 

처음이로군요. 긴장과 염려와 설렘과 기대를 모두 품을 수 있는 낱말이에요. 그리하여 [작담이 통신]의 첫 이야기 주제는 '처음'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순간이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이 순간 저의 가장 큰 감정은 염려입니다. 다름 아니라, 글 전해드리는 금요일 아침. 높은 확률로 저는 꿈나라에 있을 거라 예약 발송의 성능을 짙게 의심하고 있거든요. 꿈속에서도 의심하고 있을 테야...  첨단 기술을 견제하는 인류인가 싶다가도 결국 기계 다루기에 미숙한 인간임을 깨닫고는 철퍼덕 주저앉고 맙니다. 절레절레... 부디 여러분과 제 하루 시작이 원활하길 바라봅니다.

 

세상의 수많은 처음 속 여러분이 겪은 처음. 기억에, 마음에 남아있는 처음은 무엇인가요?

 

제가 겪은 수많은 처음 중 하나를 꺼내보자면요.(이 나이쯤 되니 겪은 처음이 꽤 많아서 흠칫 놀랐습니다) 저는 호작담이라는 목공방을 운영 중인데 역시 이 일에도 처음이 있었지요.

본래 그래픽 디자이너로 5년 차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목공을 시작했냐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로요. 나무라는 재료가 가진 성질에 관심 가져본 일 없었고요. 손으로 빚어내는 물성에 경외를 느낀 적도 없었어요. 그저 하나의 계기만 있었습니다.

바보 같게도 남들처럼 지내면 좋은 어른이 될 거라 믿었어요. 초, 중, 고 사고 없이 다녔고, 적당히 좋은 학점으로 대학 다니며 졸업 전에 취직을 했지요.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으쓱했어요.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거예요. 게다가 저는 남들처럼 사는 게 뭔지도 몰랐어요. 그들이 가진 고민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뤄내는 성장, 안정과 불안을 오가며 좋아하는 일과 돈 버는 일 사이의 괴리 등에 관해서는 가늠조차 못한 채 하품 쏟으며 출근하는 아침과 커피 마시며 산책하는 점심, 늦은 밤 패잔병처럼 귀가하는 퇴근만이 전부라고 생각한 거죠. 나도 그걸 하고 있으니 곧 좋은 어른이 되겠지!(어림도 없다 요놈아)

디자이너 시절엔 이런 맥락의 작업도 했지요 
디자이너 시절엔 이런 맥락의 작업도 했지요 

 

스물일곱에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스물여덟에 목공을 시작했어요. 늘 모니터 속에서 만들어내던 것이 손에 잡히면 좋겠더라고요. 그게 나무일 필요는 없었고요. 다양한 공예를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들렀던 서점에서 목공 관련 책을 봤어요. 가구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고 '저길 한 번 가볼까?' 싶은 마음 정도였는데... 미쳤지... 바로 전문가 반을 등록해 버렸지 뭐예요? 저는 절대 그런 쾌남이 아닌데 말이에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분명해요.

제 특징 중 하나는 하기로 정한 것을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꾸준히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수업은 주 2회였지만 전문가반에게는 24시간 오픈이라 매일 갔어요. 아무것 안 해도 일단 갔고, 1시간밖에 작업할 시간이 없어도 인천에서 서울 향하는 지하철에 일단 몸을 실었습니다. 역시 나무가 좋아서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굉장히 멋없어지는 순간 아닌가요? 이토록 신념 없는 작업자라니.

몇 년 전 어느 영상 인터뷰에서 제게 작업자의 신념에 관해 물어온 일이 있는데요.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을 듣고 고민했어요. 멋진 말을 하고 싶어서.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신념이 없더라고요. 처음부터 신념을 가질 필요는 없지 않나. 어설프게 가진 신념이 오히려 부담되거나 해가 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서 작업을 좀 더 잘 이어갈 수 있을 때. 그냥 보기 좋게 끼워 맞춰도 괜찮지 않을까. 큰 신념 없이 작업을 이어서 하는 편입니다." 라고요.

처음 대팻날 갈았던, 베이고 때 끼고 난리난리였던
처음 대팻날 갈았던, 베이고 때 끼고 난리난리였던

 

영상 녹화 이후 매체의 높은 분이 오셔서 모니터하시며 신념 없다는 말에서 동공 지진 일으키셨던 순간은 지금도 아찔합니다. 물론 이후 설명 듣고는 수긍해 주셔서 다행이었지요. 신념의 부재는 처음과 다르지 않네요.

어떤 처음은 이렇게도 맥 빠지는 모양새입니다. 나쁠 거 있나요? 처음을 지나 끝없이 이어가면, 그것대로 멋진 일 아닌가요?

제가 처음 만든 가구예요. 스툴이지요. 실제로 앉아보면 아주 불편합니다. 호호.
제가 처음 만든 가구예요. 스툴이지요. 실제로 앉아보면 아주 불편합니다. 호호.

 

뜬금없지만, 가수 성시경의 <처음>이라는 앨범을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태양계'를 오랫동안 듣고 있지요. 잘 밤에 한 번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작담이 통신]의 처음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가끔 오래 보는 친구가 되어주세요. 시작되는 주말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길, 다음 주 내내 행복하길 바랍니다!

다시 뵙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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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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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희

    0
    2 months 전

    처음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련해지기도 돈독해지기도 안쓰러워지기도 대범해지기도 하네요. 그래서 너무 소중하고요. 작담이 통신의 처음이 되어서 기쁘네요

    ㄴ 답글 (1)
  • jiniwoni

    0
    2 months 전

    늦었지만 처음을 맞이합니다. 저도 성시경님의 태양계를 좋아해요.

    ㄴ 답글 (1)
  • 이안디

    0
    about 2 months 전

    처음은 처음이라서 그 특별함이 기억이 짙게 남는 것 같아요. 글을 읽고 최근 저의 처음을 곱씹어보니, 긴장을 하기도하고 서투르고 부족하고 잘하고 있나-하는 의심이 있어도 참 애틋하고 소중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앞으로의 기대를 꿈꾸게 되는 시작이기도 하고요 ☻ 글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감사히 읽고 꾸준히 뵙겠습니다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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