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인생의 3분의 2를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에 오기 전까지는 '쌓인 눈'을 본 기억이 한 손에 꼽네요. 중학교 3학년 때, 살면서 처음으로 눈이 녹지 않고 쌓여서 눈사람을 만들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보통은 눈이 와도 쌓이지 않고 금방 녹아버렸거든요.
서울에 오고 나서는 눈을 지겹도록 봤습니다. 초반에는 하늘에서 굵은 눈송이가 내려오는 게 아주 신기했는데 이젠 익숙해졌네요. 심지어 2018 평창올림픽 때,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는 오랜 로망을 이뤘습니다. 눈 밭에서 뒹구는 건데요. 정말 무릎 위로 쌓인 눈더미에 그대로 누워서 대(大)자로 도장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런 추억을 뒤로 하고 이젠 눈오는 날 당장 출퇴근 길만 걱정하는데요. 눈을 봐도 예전처럼 설레고 몽실거리는 기분은 덜 들더라고요. 그래도 조건반사적으로 눈이 내리면 카메라는 듭니다. 멀리서 눈을 잘 못보고 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죠.
어제도 눈이 많이 왔습니다. 사진 몇 장찍고 감흥없이 앉아있는데 옆자리 동료분께 메시지가 오더라고요. 눈 많이 올 때 실내에 있으니 꼭 오르골 안에 있는 기분이 들지 않냐고요.
와!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었는데 참 로맨틱한 상상이지 않나요? 그 말을 듣자 사무실이 근사한 오르골 속 세상으로 보이더군요. 혹은 스노우볼 안에 있는 작은 마을로요. 사무실에 '갇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연주를 하면서 하나의 오르골 음악을 만들고 있는가 싶기도 했고요. 너무 멀리 나간 상상일까요?
세상을 어떤 각도로 보는가에 따라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니. 그 말 한 마디에 그날 오후 기분이 내내 좋았답니다. 구독자님은 눈을 좋아히시나요, 싫어하시나요? 다음번에 눈을 보실 때는 한번 스노우볼 속 오두막에 있다고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한결 기분이 산뜻해지더라고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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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저는 고향이 강원도라 비교적 눈에 대한 추억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오히려 서울에 와서 20년 이상 살고 있지만, 눈 다운 눈은 그렇게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울이란 도시가 눈이 와도 가만두질 못하는 곳이라 그런 것 같아요. 내리고, 쌓인 눈을 그냥 두고 바라볼 수 없는... 서울에서 눈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1990년대 중반,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스키장에서 내리는 눈은 <돈>으로 표현될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돈이 내린다!" 눈이 없으면 눈을 만드는 일을 해야하는데 그 과정을 생략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개인적으로도 스키장에 맞이하는 눈은 꽤나 설렙니다. 직장인으로서 눈을 대하는 공통된 생각과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출/퇴근길>, 저도 다르지 않아서 제일 먼저 그 걱정을 하고는 합니다. 그래도 어제 지인들과의 저녁 술자리에서 "눈이 딱 적당히 내렸다!"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살짝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눈으로 오리를 만드는 도구를 꺼내고 싶었습니다. ^^
조잘조잘 (317)
오히려 서울에서 눈다운 눈을 못보셨다니! 저도 짧지만 평창에 살아본 기억을 더듬자면 충분히 그러실 것 같아요 ㅎㅎ 살면서 본 모든 눈을 합친 만큼이나 눈이 내리더라고요. 스키장에서 내리는 눈은 '돈'..! 생각못해본 관점입니다 ㅎㅎ 눈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스키장이나 눈썰매장처럼 눈이 많은 곳에서 맞는 눈은 또 감흥이 남다르더군요. 아직 겨울이 많이 남은 만큼 또 눈을 볼 날이 많겠죠? 다음에 내리는 눈은 좀더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야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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