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잘조잘은 객원필자가 보내는 편지입니다.
안녕하세요. 수성못입니다. 평소 독자로서 재밌게 즐기던 조잘조잘에 객원필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감개가 무량합니다. 모쪼록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최근 오래 준비했던 시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살면서 실패와 고난, 역경을 모르고 자라서인지 인생 첫 실패의 경험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특히 무력감과 패배감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정말 온 힘을 다했는데도 역부족이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다시 도전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7전 8기 오뚝이라는 게 말이 쉽지 저는 KO 한 번만으로도 다시 일어나기 벅차더라고요.
이런저런 잡생각이 가득했던 머리를 비우기 위해 주로 만화를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별생각 없이 읽던 만화에서 저는,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혹시 구독자님은 만화 <원피스>를 아시나요? <원피스>는 몸을 고무처럼 늘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루피’가 바다를 모험하는 이야기입니다. 루피가 바다를 모험하는 이유는 <원피스> 독자라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루피가 아주 밥 먹듯이 말하거든요.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라고.
아니, 우습지 않나요?
번개를 조종하는 능력자, 지진을 일으키는 능력자, 바다를 얼려버리는 능력자 등 수많은 강자들이 즐비한 바다에서 고작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능력 가지고 해적왕이 되겠다니요. 제 몸이 고무처럼 늘어났다면 해적왕은 고사하고 자기 전에 불 끄는 데에나 능력을 썼을 겁니다 분명.
그런데 <원피스>가 연재된 지 약 20년이 지난 지금, 해적왕이 되겠다는 루피의 말은 더 이상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해적왕이 되기 위한 모험.’ 이 짧은 문장으로 요약되는 루피의 지난 20년은 전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해적단이 궤멸당하고, 해적선이 부서지고, 수많은 싸움에서 져도 루피는 항상 다시 일어났고, 결국 해적왕을 넘볼 수 있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모든 만화의 주인공은 대단합니다.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는 주인공에게 끝없는 시련이 닥쳐야 하고, 주인공은 매번 그 시련들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아예 없거나, 주인공이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만화를 생각해보세요. 루피가 해적왕이 되겠다고 마음먹자마자 적들을 다 때려눕히고 해적왕이 되었다면 재밌었을까요? 혹은 루피가 패배한 후 ‘아 해적왕은 내 길이 아니구나!’ 포기했으면 <원피스>는 지난 20년 동안 인기리에 연재할 수 있었을까요?
즉,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모든 주인공의 덕목입니다.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저에게는 이 모습이 참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는 루피가 결국 해적왕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이니까요. ‘주인공 버프’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이 결국 시련을 이겨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루피는 자기가 <원피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모를 텐데도 자신은 반드시 해적왕이 된다고 믿습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그 반면에 저는 어떻습니까? 저는 제 인생이라는 만화의 주인공이 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재밌는 만화에는 시련이 있고, 주인공은 결국 그 시련을 이겨낸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추측하건대 제 목표는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인 해적왕이 되는 것보다는 이루기 쉬울 겁니다. 그런데 저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겨워하고, 저를 믿어주지 못했던 걸까요? 저도 ‘주인공 버프’를 받는 제 인생의 주인공일뿐더러, 제가 뭐 해적왕이 되겠다는 것도 아닌데요.
제 인생이라는 만화에 시험 준비라는 챕터가 있다면 기승전결 중에 ‘전’까지 온 것 같은데, 이 챕터의 ‘결’을 볼 때까지 힘내야겠습니다. 주인공이 포기하면 만화는 끝나는 걸요. 저도 이 이야기의 끝에 반드시 성공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구독자님도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유독 힘에 부칠 때가 있다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뭐, 해적왕이 되는 것보다야 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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