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버라 리비의 『살림 비용』 44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당시엔 몰랐지만 나는 그 헛간에서 세 권의 책을 완성하고 말 터였고, 그중 하나가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책이기도 하다.”
데버라 리비는 이혼 후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작업실을 얻게 된다. 그곳은 지인의 남편이 작업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헛간이었다. 나는 이제 막 그 헛간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장면을 읽고 있었고 위의 문장을 맞닥뜨렸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 세 권의 책을 완성한 곳. 당시엔 몰랐지만,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책을 완성한 곳. 당시엔 모르는 게 당연한 건데 궁금하다. 모르는 채로 하는 것의 추진력과 동력은 무엇이 있을까. 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쓰면 책이 되어 나온다는 사실, 많은 독자를 만나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을까. 확신이고 전망이고 그것뿐일 수밖에 없는 갈망과 절박함이 추동으로 작용했을까.
지금 내게 그것이 있는지 요즘 계속 묻고 있다. 물론 이 과정들을 이미 지나왔지만 다시 또 하고 있다. 아마 수없이 반복하지 않을까. 이 반복이 끝나는 날은 글쓰기를 접은 후거나, 너무 많은 인정으로 고민이 필요없어질 때가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지금 ‘당시엔 몰랐지만’이라는 전제에 기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모르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내가 이렇게 쓰고 있다는 것. 고민하고 있다는 것. 지금은 헛간에서 쓰는 일이 나의 유일한 욕망을 해소할 방법이라는 것.
같은 책 108페이지엔 “나이팅게일은 자정이 되기 바로 직전에 울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 집에도 나이팅게일이 있다. 23시 58분이면 알람인 듯한 기계음이 어딘가에서 들린다(아마 알람이겠지만 집에 있는 모든 시계의 알람을 해제해도 매일 23시 58분이면 삐빅 삐빅 삐빅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자정이 가까웠구나,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를 자각한다.
자정이다,라는 자각보다 자정이 가까워져 온다,라는 자각이 나쁘지 않았다. 2분 정도는 오늘을 좀 더 생각할 수 있다는 감각이 여유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새, 어느샌가 시간이 흐르고 다음 날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생각하며 오늘 안에서 오늘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이들의 책은 이런 알람 같은 역할을 한다.
나도 당시엔 몰랐어. 그런데 그곳에서 3권의 책을 펴냈어. 나도 막막했어. 그런데 됐어. 나도 안 될 것 같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버텼어.
내일이 온다는 걸 알려주는 알람.
그때가 되어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거라는 걸, 다 와 간다고 말해주는 소리.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결말을 알고 보고 있기에, 정상에 오른 모습을 알고 있기에 때론 막막하다. 그들과 나 사이에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저들은 됐지만 난 안 될 것 같아 두렵다.
그래서 말해본다. 제안한다.
불안하고 두려운 당신에게,
불안하고 두려운 내가 먼저 걸어가 볼게요.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그러니 함께 걸으면 좋겠다.
함께 걸으며 다 와 가네, 다 와 가는 것 같아,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가 서로의 알림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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