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장와서 용인 수지 우리 어무이 댁에 머무를 때면 나는 어김없이 주말에 도서관엘 가서 책을 빌려온다. 내가 읽을 책을 빌리기도 하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권수의 책을 우리 어무이 혼자 사시는데 심심하시지 않도록,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다고 하니 한 번 읽어보시라고 빌려와 권해드린다.
그렇게 빌려드린 책 중에 20세기 중반 미국의 소설가가 펴낸 한 권의 소설이 있는데요, 출판 당시엔 거의 빛을 못 보다가 21세기 들어서 재조명 받기 시작해 우리나라에도 몇 년 전부터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품이에요.
빌려온 그 책은 내가 바빠 어무이 먼저 읽으시라고 했지. 그리곤 며칠 지나 여쭤봤습니다.
그래 읽을만 합디까?
'이 이 남자가 농부 아들이덩만. 부모가 농과대학 가라는 걸 말 안듣고 다른 학교로 가부렀네.'
아 흥미롭군요.
며칠 지나 또 여쭤봤지. 그 아들은 어찌 되었는가요?
'아들이 인자 교수가 되었덩만. 결혼도 하고. 글고는 인자 바람을 피우네, 못된거이.'
아 이런, 내가 뭐 한다고 여든 노인네한테 불륜 소설을 빌려드렸을까.
며칠 지나 소설의 전개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궁금해 어무이한테 또 여쭤볼 참이었어.
다만 아쉽게도 나의 출장은 그 즈음 끝이나 불륜남의 말로를 확인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도쿄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습니다. 나리타 공항에 내려서도 궁금증이 가시질 않아, 아 교수된 그 남자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 체류 중엔 거의 잊고 있었던 담배까지 생각나 공항 터미날 흡연실에서 한 대 꺼내 근 한 달만에 피우면서 고뇌에 잠겼었지요. 주인공에게, 비난의 시선보다는 같은 남자로서 동정의 마음으로 그의 인생 해피 엔딩을 소설적 결말로 기원하며.
여기까지 읽고 아, 나 이 소설 뭔지 알겠어! 답 맞추신 분께 제가 스타벅스 커피 한잔 사 드릴게요.

궁금해하던 그 소설은 제가 일본 돌아와 동네 도서관에서 원문을 빌려 오늘 아침 다 읽었습니다. 이제부터 소설 내용과 리뷰를 얘기할 것이니 스포일러 싫은 분은 건너뛰세요. 그러나 한가지, 요것만은 말씀드리고 싶어. 이 소설 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지 알겠어요. 그 얘기를 듣고 싶으면 밑으로.
교보문고에서 보면 이 소설, 연간 베스트셀러 12위 입니다.
아침에 소설 다 읽고 나서 영 마음이 찝찝하길래 내 기분 왜 이런지 ChatGPT에게 이유를 물었어요. 먼저 주인공 William Stoner는 어떤 인물로 그려졌는가. GPT의 답입니다.
와 두세 개만 빼면 그냥 내 얘기네. 아냐, 한 몇 개 빼면 다 우리들 얘기지 뭐.
GPT는 특히 소설의 제일 마지막 장면에 주목하라고 귀띔해 줍니다. 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스토너의 침실을 묘사하는 마지막 구절. 그의 손에 쥐어진 책이 스르르 힘을 못이기고 바닥에 떨어지며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이게 뭘 암시하는가.
사랑, 명예, 결혼, 양육 면에서 성공과 행복을 보지못하였으니 일면 비참하게도 비춰질 수 있는 인생을 살다 간 주인공의 마지막을, 제대로 쥐어지지 못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책으로 비유한 것이지요.
그럼 떨어지는 책을 보는 우리는 그의 제대로 펼쳐지지 못한, 읽혀지지 못한 인생에 대해 서운해하며 동정의 눈길을 보낼 것인가.
그러지 말기로요, 그것도 하나의 인생이니까. 저자가 일부러 주인공의 성(姓)을 Stoner와 같은 평범한 이름 지은것도 이런 맥락일지라. Williams Professor, Williams Academia, Williams Lover에 걸맞은 성이 아니고요.
이렇게 희극도 비극도 아닌 결말로 소설을 마감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다각도의 사유를 끌어내려했던 저자의 의도를, 출판 당시인 1965년엔 독자들이 파악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근 반 세기를 도서관 창고에 묻혀있던 이 책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겐 의미하는 바가 컸는지 이제와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이죠.
한편 책 내용 중에 주인공이 캐서린이라는 제자와 열애에 빠지는 부분이 나옵니다. 우리 어무이가 농부 아들 부모뜻 어기고 다른 학교 가더니 결국 바람나고 말았네의 구조로 이해하고 계신, 소설의 큰 줄기 중 하나입니다.
GPT의 우아한 해석을 공유해 드리지요.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요, 견디기 불편한 결혼 생활에 갈증 달래듯 한 줄기 쏴하게 소나기처럼 내렸다가 지나간 로맨스를 두고, 독자들이여 돌팔매질 하려면 하라(Stone at Stoner!)며 해석의 여지를 각자 취향 나름으로 돌리는 GPT는, 나보러 Hey Kevin 너같이 두나라를 왕래하며 짬짬이 책읽기 좋아하는 인터내셔널 지식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 생각한다며 입바른 소리를 찍찍 해대는 바람에 나는 얼른 지갑열어 Open AI 사장 샘 알토만이한테 금일봉 꽂아줄까 망설이고 있어요.
오늘 글 정리하면서요, 일부 독자들에겐 내용 불편할 수 있으니 너그러운 시선 부탁드린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사실 이와 비슷한 주제를 놓고 재작년인가, 10여 년 만에 해외의 어느 도시에서 만난 여사친과 토론을 벌이다가 경멸의 눈초리로 한 소리 듣고 난 후, 다음에 또 보자고 헤어지고 나서는 카톡 인사말 보내도 1씹(읽씹)된 경험이 있어 이번 글 뉴스레터에 쓸까 말까 망설였었는데, 나의 신조는 이렇거든: 할까 말까 망설일 일 있으면 해라. 그리고 몇 주 전에 소개드렸던 4 hours저자 팀 페리스의 조언에서도:

번역: 인생의 성공은 불편한 대화를 얼마나 많이 하고자 하는가로 판가름 난다.
맺음말: To the feminists, conservatives and Kevin haters, let the novel be the novel, mind nothing more or less than that plea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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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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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감사합니다. 따님에게 너희 아빠는 소설 주인공과 완전 다르단다고 꼭 알려주세요 ㅎㅎ 그리고 저한테 자꾸 선물주시는데 어느덧 금액이 삼계탕 하나 값 정도 되니 다음에 한국가면 저랑 점심 드실래요? 어디 사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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